전통사회와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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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1877~1910) - 아름다운 희생이 남긴 참 의술
2.친일파에 독살당한 여걸, 최초의 미국 학사 하란사 (河蘭史 , 1875 ~ 1919)
3.조국을 위해 폭탄을 던진 어머니 안경신 (1894(?) ~ ? )
4.상록수의 꿈과 희망 최용신 (1909~1935)
본문내용
추계 최은희는 1904년에 태어나 16세 때 삼일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렀고 1924년 21세 때 조선일보 `부인기자(여기자)`가 되었다. 우리나라 첫 여기자의 탄생이다. 그는 먹물화장에 남루한 옷을 입고 행랑어멈으로 변장, 인권 없는 설움을 체험하고 그 기사를 3일간 연재하기도 했으며, 1926년 순종의 장례식이 계기가 된 6월 사건에 관한 특종을 따내 ‘신문계의 황제’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고, 무선전화 시험 공개방송에 나가 전파에 목소리를 실어 보냄으로써 그 분야에서 최초의 여성이 되기도 하였다. 또, 1927년 신용인이 고국 방문 비행을 할 때는 신문기자 신분으로 동승, 비행사가 아닌 사람으로 맨 처음 서울 상공을 날아본 여성이 되었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으로 남자 동료들과의 술자리가 있을 때면 반드시 자기 몫의 기생 한명을 곁에 두도록 했으면서도 새로운 패션유행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걸쳐보고 둘러보는 화려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기자직에 이어 최초의 여성운동조직인 근우회 활동, 서울보건부인회와 대한부인회 등 여성 계몽운동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이후 여성해방 및 국민계몽운동에 앞장을 섰다.
추계는 말년에 이러한 자신의 역사와 함께 동시대 다양한 분야에서 이름을 알렸던 이른바 `개화여성`들에 대한 사필가적인 접근을 자신의 역사와 함께 동시대 다양한 분야에서 이름을 알렸던 이른바 `개화여성`들에 대한 사필가적인 접근을 시도한 방대한 저술을 남기고 있는데, 그것이 <1905~1945 한국여성활동비화, 조국을 찾기까지>(전 3권, 1973년 탐구당)이다. 이 기념비적인 저술과 1982년 3월부터 시작하여 타계 전해인 1983년 7월까지 <여성중앙>에 연재한 `도큐멘타리 개화여성열전`이 <여성을 넘어 아낙의 너울을 벗고>의 원전이 된다. 이 책은 한말과 일제강점기 속에서 선구적인 여성상을 보여준 각 층 - 왕비, 사대부가의 여인, 서구식 교육을 받은 신여성, 독립운동을 도운 여성, 민중계몽에 힘쓴 여성, 무수리, 기생, 백정의 아내 - 의 여성 33인에 대한 기록이다. 기자다운 날카로운 필치와 세밀한 검증, 취재가 바탕이 된 생동감 넘치는 서술이 압권인 추계의 저술은 이 분야에서 가히 독보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학계와 여성계의 `개화여성담론`에 불을 댕김으로써 후학들이 쌍은 학문적 성과의 밑받침이 되었다.
이제 이 여걸들 중 4인을 집중 조명하여 여성의 울타리를 넘어선 시대의 선구자로서의 모습을 살펴보겠다.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1877~1910) - 아름다운 희생이 남긴 참 의술

한국에 서양의학이 들어온 지 100여 년이 넘었다. 지금은 감기라도 걸리면 당연하게 가는 곳이 병원이지만 100여 년 전 만 하여도 양의사들은 민간 백성들에게 그다지 환영 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일반 백성들은 양의사들을 주사바늘과 칼을 휘두르며 사람을 잡는 도깨비쯤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한방이고 양방이고 아무런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했다. 여자들의 경우는 더욱 심했다. 아픈 부위를 의사에게 보이기는커녕 진맥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여성들은 병이 걸리면 무당의 굿 몇 번에 유명을 달리하곤 하였다. 그러한 시대에 여성 환자들을 위해 살아간 한국 최초의 여자 의사가 있었다. 박에스더. 그녀는 많은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혹사하다가 스스로의 명을 단축하고 만 봉사 정신에 투철한 참된 의사였다.

박에스더(1877-1910)의 본명은 김점동이다. 그녀는 당시 한국에 나와 있던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의 집안일을 돕던 광산 김 씨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서양 선교사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만큼 김점동의 집은 비교적 일찌감치 서양 문물에 눈을 뜰 수 있었다. 김점동은 10세에 정동에 있던 이화학당에 네 번째 학생으로 입학한다. 당시 백성들은 서양인이 학교를 차려 아이들을 유괴해 간다는 소문을 믿고 특히 여자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 했다. 선교사들이 일일이 집을 돌며 부모를 설득했다. 아펜젤러의 집에서 일하며 스스로도 조금은 개화 되었다고 생각하던 김점동의 아버지조차 처음에는 김점동의 이화 학당 입학을 반대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총명하고 영리했던 김점동은 우여곡절 끝에 이화학당에 입학 하게 되고 곧 이어 학업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특히 어학에 뛰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영어를 능통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세례를 받고 이름을 에스더로 바꾼 뒤 자신의 어학 실력을 십분 발휘하여 한국인들과 서양 선교사들 사이에 의사소통의 다리를 놓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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