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송 팔대가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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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
그들은 누구인가
[한유(韓愈, 768~824)]
생애: 한유의 생애는 4개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대종(代宗) 대력(大歷) 3년(768)부터 덕종(德宗) 정원(貞元) 7년(791)으로 사회의 불안이나 집안의 변고로 인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곤궁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고문을 연구하고 세상을 다스릴 공부를 하여서 일생동안 노력해야 할 방향을 정한다. 두 번째 단계는 정원 18년부터 정원 18년까지로, 이 시기에는 벼슬길이 여의치 않아 회재불우(懷才不遇)의 정서가 많이 나타난다. 다음으로 정원 19년부터 헌종원화(憲宗元和) 10년까지로, 항상 환관의 권력에 대항했으므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마지막 시기는 목종(穆宗) 장경(長慶) 4년로, 반란의 토벌을 하고, 그는 결국 장안에서 병사하게 된다.
한유의 정치경향: 한유의 정치사상은 대부분 유가에서 유래한다. 그는 ‘공자를 높이고, 왕도를 귀히 여기고 패도를 천히 여기는 것’을 지지한다. 또한 상앙(商)의 법으로 진나라가 부유해졌다고 생각하여 형정(刑政)을 중시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백락(伯樂)이 인재를 선발하고, 불합리한 제왕 세습 문제를 지적하는 등의 주장을 펼쳐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문학적 특징, 경향: 유가 윤리를 바탕으로 하여 형식만을 중시하는 변려문을 반대하고 고문을 쓸 것을 주장했다. 그가 말한 고문은 단순히 한대 이전의 옛 글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유가적인 도가 담겨있는 것을 말한다. 요순, 우, 탕, 문왕, 무왕을 거쳐 공자에게로 전해진 道가 맹자에게 전해지고 끊어졌다고 주장하며 고문과 함께 유학의 도통도 부활시키고자 했다. 반면 당시의 불교와 도교는 생산 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착취를 확대한 것 등의 이유로 반대한다. 대표적인 문장으로 <원도>,<사설>,<간영불골표>등이 있다.
[유종원(柳宗元, 773~819)]
생애: 자는 자후(子厚)으로 그는 산서성 하동군에서 태어났다. 유종원은 가문 있는 관리지주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덕종(德宗) 정원(貞元) 9년에 그는 진사과에 급제한다. 그러나 그 해에 그의 부친 유진이 사망한다. 그 후 유종원은 빈주 빈현의 군대에서 일하던 숙부를 찾아가 그 곳에서 2년을 머무른다. 이 때 그는 하층 병사들과 교류가 많았고, 자연히 교병장수들의 부패를 알게 되어 그의 작품에 애민사상(愛民思想)이 반영 된다. 그 후 정원 19년에 감찰어사이행직을 맡아 한유와 같은 진보적인 인물들과 교유(交遊)한다. 그러나 영정혁신(永貞革新)에 실패하여 영주에서 유배지내면서 사망하게 되는데, 이 유배지에서 그의 작품 중 대다수가 만들어진다.
유종원의 정치경향: 유종원은 중당(中唐)시기 사람이므로 그 시기에는 관료들이 부패하고 사회 질서가 문란하여 백성들의 생활이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백성들이 편에 서서 귀족 관료에 반대하는 정치개혁을 주장한다. 또한 스승 육질(陸質)의 영향을 받아 전통학술을 회의하고, 여러 사상을 서로 통하게 하는 학문에 심취하고, 이의 영향으로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사상을 갖게 된다. 게다가 당나라는 국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외국 문화나 다양한 종교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
문학적 특징, 경향: 그의 문학관은 기본적으로 한유와 일치한다. 그러나 道(문장의 내용)와 외형을 모두 중시하는 절충적인 입장을 취하는 점, 유가 사상에 근간을 두면서도 불교와 노장 사상등 제자백가의 학설도 수용한다는 점, 한유의 문장은 웅대하고 기특한 느낌을 주는 반면, 유종원은 우아하고 깨끗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글은 현실에 대한 관심이 뚜렷하면서 변려체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의 대표적인 문장으로는 <단태위일사장>,<종수곽탁타전>,<포사자설> 등이 있다.
[구양수(歐陽修,1007~1072)]
생애: 구양수는 아버지는 3세에 여의고 어머니를 따라 숙부의 집에서 자랐다. 집이 매우 가난해서 모래 위에 갈대로 글씨 쓰는 연습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030년 진사 시험에 장원급제하였고, 매요신 등과 사귀면서 문장의 간결성, 명료성을 중시하게 된다. 게다가 한유의 작품을 읽고 고문체에 크게 감명 받아 이후 고문체 부흥의 지도자로 활약하면서 새로운 문학운동의 전기를 마련한다. 또한 1057년 지공거에 임명되어 당송8대가로 불리는 소식, 소철 형제와 증공 등을 합격시킨다. 산동의 지방관으로 있을 때는 자신이 배출한 인물인 왕안석이 제정한 신법 가운데 농민에게 낮은 이자로 대출해주는 청묘법에 특히 반대하였고, 1071년 은퇴한다. 그는 취옹정이 있는 안후이성에서 은퇴 후의 생활을 보낼 작정이었으나 그곳에서 몇 달 살지 못하고 66세를 일기로 생을 마치게 된다.
구양수의 정치경향: 구양수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에 있었다. 역사가로서 구양수는 지방 근무 중에 신오대사(新五代史)를 편찬하고, 중앙에 복귀하여 송기 등과 신당서(新唐書)를 편찬하였는데, 이는 춘추 학문적 색채가 강한 근엄한 스타일을 견지한 책으로서 평가됐다. 또 금석문의 수집을 좋아하여, 집고록(集古)을 정리, 사료 편찬의 방법으로서 금석문의 활용을 확립하는 송대의 역사수법(특히 금석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문학적 특징, 경향: 그는 고문운동을 전개하였는데, 그의 고문론은 명도와 치용을 근거로 한 석개 등의 이론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문통도 중시하여 도통과 문통을 합일 시키려 하였다. 대표적인 문장으로 <상고사간서>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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