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永郞김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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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영랑(永郞) 김윤식
1. 영랑의 생애
1903년 1월 16일 전남 강진에서 5백석 지주인 김종조의 2남 3년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열 세 살의 나이인 1916년에 결혼을 하였지만 다음 해에 사별한다. 1916년 상경하여 휘문의숙에 진학하게 되는데,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봄에 31 운동에 가담한 죄로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고, 결국 중퇴하기에 이른다.
1920년 영랑은 일본 동경에 있는 아오야마 학원에 편입학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뒷날 그의 문학적 동반자이자 최대의 후원자가 되는 박용철을 이때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영랑’이라는 아호를 지었는데 일본 유학 전에 가 보았던 금강산 영랑봉과 고성 땅의 영랑호가 마음에 들어 그들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1921년 잠시 귀향한 영랑은 음악을 전공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으나 거절당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는데 그때부터 문학서적을 읽기 시작하였다. 주로 키츠와 셸리 등의 낭만주의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체에 걸쳐 서구에 나타난 문예사조를 총칭하며 위고, 워즈워스, 바이런, 셸리, 키츠 등의 작가가 대표적이다. 특징은 감정과 상상력을 마음껏 표출하고자 하는 감정제일주의, 무제한의 상상력으로 현실을 재창조하는 능력을 갖춘 천재론, 자유분방한 감정을 마음껏 펼쳐내는 도구인 상징과 암시에 의한 표현의 중시 등이 있다.
시인들에 경도되어 있던 영랑의 동경 유학 생활은 1923년 관동대지진의 여파로 중단되고 이듬해 귀국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영랑은 1924년 훗날 최고의 무용가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최승희와 교제하였지만 결혼에는 실패하고, 1년 뒤 루시아여고에 근무하고 있던 안귀련과 재혼하였다. 고향에 돌아온 이후는 간혹 음악회를 들으러 서울에 올라가는 것 외에는 고향집에서 머물면서 시작에 전념했다. 1930년에는 박용철과 함께 <시문학파>를 구성, ‘시문학’과 ‘문학’등의 잡지에 언어미와 서정성이 뛰어난 순수시들을 많이 발표하였다. 그는 특히 음악에 조예가 깊어 거문고와 북을 즐겼고 서울음악회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찬석하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으며, 고향집 뜰에 정자를 세워 모란을 완상하면서 시회를 열고 명창들의 판소릴 즐기는 등 유유자적한 삶을 보냈다.
그러나 일제 말기에는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흰 한복만을 입는 등 민족적 지조를 지키고 일제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시세계 또한 초기의 언어미와 서정성에 집착했던 것과는 달리, <독을 차고>(문장, 1권 10호,1939,11), <춘향>(문장,2권, 7호, 1940.7) 등의 시들을 통해 시대나 사회적 상황에 대한 인식과 자아 확립의 틀을 보여 주었다. 해방이 되자 그는 대한 독립 촉성회 단장을 역입하였으며 초대 민의원 선거에 출마하였다가 낙선, 1948년 가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가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 무렵의 그의 시는 초기의 4행시를 위주로 한 서정적 리리시즘의 시나 일제 말기 선비적 절개나 지조를 바탕으로 한 민족의식이 강한시와는 달리, 새 역사창조의 포부나 혼란된 시대상황에 대한 절망을 노래하는 보다 사회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활달함을 보여주게 된다.
그러나 1950년 6ㆍ25동란이 터지자 피난을 가지 못한채 서울에 머물다가 날아온 파편으로 복부에 부상을 입고 9월 29일 작고하고 말았다. 시집으로는 1935년 박용철이 편집ㆍ간행한『영랑시집』(시문학사)과 1949년 서정주가 편집한 『영랑시선』(중앙문화사)이 전해지고 있다.
2. 김영랑의 시세계
1) 시세계의 변모
영랑이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한 것은 1930년 박용철, 정지용, 신석정 등과 <시문학>동인으로 참가한 이후부터 이다. 이 때부터 약 20여 년에 걸쳐 시작을 하였는데, 이를 구분하여 보면 1930년 등단 이후 1935년『영랑시집』까지가 초기, 또 3년간의 공백기 후 다시 활동을 시작한 1938년에서 1940년까지가 중기, 그리고 영랑은 또다시 7년간의 오랜 문학의 침묵기를 거친후 1946년부터 창작활동을 해나갔는데 이시기가 말기이다. 박두진은 영랑의 시를 그 주제에 따라 개성적 서정의 세계를 다룬 시, 민족적 정한의 시(저항시), 그리고 개인적 비애나 민족적 한까지를 승화시킨 인생적인 달관의 경지인 인생시로 나누었는데 이는 영랑의 시의 변화 흐름인 앞의 시대구분과도 어느 정도 일치하고 있다.
2) 영랑의 시적자세 : 내마음과 <촉기>
서정시에서 ‘나라는 일인칭 화자는 서정시의 장르적 특질이며 출발점이다. 김영랑의 초기시는 서정시의 가장 기본적인 ‘나’의 화법을 취하고 있다. 일인칭 화자인 ‘내’가 그의 초기시의 대다수를 이룬다는 것은 그의 시가 지나칠 정도로 ‘화자지향적’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자기애적 상상력에 압도되어 철정하게 주관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초기시는 ‘세계’와 어떤 관련성을 맺지도 못하며, 오직 고립되고 소외된 내적 자아의 모습만을 노래하게 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 참고문헌
윤병노(2000), 한국근ㆍ현대문학사, 명문당.
이숭원(1997), 20세기 한국시인론, 국학자료원.
조동구(1991), ‘김영랑 연구’, 부산공업대학교.
최희연(1984), ‘김영랑 시 연구’,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최미정(2001), ‘영랑시에 나타난 언어미’, 숭실어문학회.
허윤회(2007), 한국의 현대시와 시론, 소명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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