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월 木月 박영종 朴泳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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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목월(木月) 박영종(朴泳鍾)(1916~1978)
Ⅰ. 생애
박목월(朴木月)은 1916년 1월 6일 경상북도 월성군 서면 건천리의 모양이란 마을에서 박준필의 4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본명은 영종(泳鐘)이며, 소국(素國)이란 아호로 불리기도 하였다. 목월의 부친은 대구 농업학교를 나와 경주 수리조합 이사로 근무하고 있었고 모친은 열렬한 기독교 신앙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에 입각하여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보살폈다. 목월은 1933년 대구 계성중학교 2학년 재학시 17세의 나이로 동시 「통딱딱통딱딱」을 《어린이》잡지에, 「제비맞이」를 《신가정》지에 발표함으로서 목월은 영종이라는 본명으로 동요작가로서 데뷔한다. 1935년 계성중학교 4년제를 졸업한 후 경주금융조합에 취직해 있다가 1938년 유익순과 결혼했다. 1939년 경주금용조합에 재직중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지 9월호에 「산그늘」, 「그것은 연륜이다」가 1회 추천, 12월 호에 「산그늘」이 2회 추천되었다. 그 후 1940년《문장》지 9월호에 「가을 어스름」과 「연륜」이 정지용에 의해 3회 추천 『북에는 김소월이 있었거니 남에는 박목월이가 날만하다. 소월의 톡톡 불거지는 삭주 구성조(龜城調)는 지금 읽어도 좋더니 목월이 못지 아니 아기자기 섬세한 맛이 좋다. 민요풍에서 시에 진전하기까지 목월의 고심이 더 크다. 』 정지용, 「시선집」(《문장》, 1940, 9), p94
됨으로써 문단에 정식 데뷔를 했다. 목월(木月)이란 아호 겸 필명은 이때 자신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1년에는 금융조합을 휴직하고 두 번이나 일본으로 공부하러 갔으나 문학은 홀로 공부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믿음 끝에 귀국하고 말았다. 그는 귀국 후에도 암흑기로 평가되는 시대에 계속적으로 시를 창작한다. 해방이 되면서 목월의 시작 활동은 본격화되기 시작하였으며 1946년에는 조지훈박두진과 함께 『청록집靑鹿集』 박목월 15편, 조지훈 12편, 박두진 12편 등 총 39편의 시가 수록
을 간행했다. 이 무렵에는 동시의 창작에 더욱 힘을 기울인바, 1946년 『박영종동시집』과 『초록별』을 펴냈다. 한편 1946년 4월 김동리, 서정주, 유치환, 조지훈, 박두진 등과 함께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 그 준비위원으로 일하기 시작해서 <조선문필가협회>를 결성하는 데 적극 참여했고, 그 상임위원직을 맡았다. 목월은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던 해 서울로 이사하여 이화여고, 서울대 음대 강사를 역임했으며 1949년 12월에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민족문학 단체의 단일화를 기하기 위하여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통합 <한국문학가협회>를 만들고 그 사무국장이 되었다. 1950년에는 시지 《시문학》을 편집발행했으며 625 전쟁이 일어나자 <한국문학가협회>의 별동대를 조직해서 사무국장직을 맡았다. 1951년에는 대구에서 창조사라는 출판사를 경영했으며 1953년에는 서라벌 예술대학, 홍익대학 등의 강사로 출강한 바도 있다. 625 전쟁 후인 1955년 12월에는 첫 개인시집 『산도화(山桃花)』를 간행하였다. 1956년에는 수상집 『구름의 서정시』를 펴내고 1958년에는 수상집 『토요일의 밤하늘』을 펴낸다. 1960년에는 『세미동시집』이라는 번역시집을 내었으며 1975년에는 선시집 『백일편의 시』을 내었고 1978년에는 원효로 효동장로교회에서 장로 안수를 받았다. 그러던 중 같은 해 3월 24일 새벽 산책길에서 돌아온 뒤 지병이던 고혈압으로 영면, 용인 모란공원에 안장되었다. 사후인 1979년 1월에는 미망인 유익순 여사에 의해 신앙시들만을 모아 유고시집 『크고 부드러운 손』이 간행되었고 다시 1984년에는 목월의 대부분의 시가 『박목월시전집』으로 묶어 간행되었으며 1987년에유고시만을 모은 박목월 유고시집 『소금이 빛나는 아침에』가 간행되었다.
Ⅱ 시적 세계의 변모 양상
제1기 -『청록집』(1946) 『산도화』(1955)-환상적 자연 이미지 추구의 시기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환상적이고 관념적인 자연 공간의 창조라고 할 수 있다. 시인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이 이 시기의 시에 나타나는 환상성은 다분히 시대상황과 관련된 것이다. 일제 말기라는 암울한 시대 현실은 시인으로 하여금 자신만의 안주할 땅을 필요로 하였고 이러한 필요는 자신의 마음속에 “마음의 지도”를 그리게 한 것이다. 여기에는 현실적인 자연과 삶의 공간이 일제에 의해 수탈당하는 상황에 대한 도피라는 의미가 강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이 시기에 나타나는 주된 이미지들도 ‘자하산’이나 ‘청노루’, ‘청운사’와 같이 지극히 관념적이다. 또한 이 시기는 독특한 음색을 가진 말과 방언의 빈번한 사용 양연희(2009), 목월시에 나타난 방언 연구,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p53,54
시집
제목
어휘(방언-표준어)
청록집
박꽃
참고문헌
Ⅵ 참고 문헌
홍희표(2002), 목월시의 형상과 영향, 새미출판사
조창환 외(2005), 한국현대시인론, 한국문화사
박승준(1999), 박목월시에 나타난 기독교적 시의식, 배화여자대학
허숙희 (2005) 박목월 중기시 연구, 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
김성연(1998) 박목월 시 연구: 시의 변용 과정을 중심으로, 명지대학교 사회교육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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