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섬김 야훼의 영을 받은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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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섬김
이것은 너무 큰 은혜입니다.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는가? 그러나 주님은 장래에도 여전히 우리를 섬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한 번 주님께 빚진 자로서 값없이 은혜를 받은 자가 되었고, 또한 영원히 주님께 빚 진자로서 영원히 은혜를 누리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 그리스도의 섬김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는가? 많은 경우, 우리에게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섬겨야 한다는 그릇된 관념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섬김을 원하는가? 어떤 형제는 자기의 기도가 너무 냉담함을 느끼고는 어떻게 해야 기도가 뜨거워 질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는 그러한 일에서 그리스도께서 그를 섬기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목적은 우리를 섬기게 하기 위함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부터 영원까지 그리스도는 우리를 섬기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잘 깨닫지 못하더라도 누려야 합니다. 베드로같이 사양하지 말고 요한처럼 주님의 품속에 누워서 주님께서 섬기시도록 하라.
A. 야훼의 영을 받은 예수
예수는 야훼 하나님의 영을 받고 그의 사역을 시작 한다: “주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눅 4:18a).” 여기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가? 이들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곤경에 빠진 이들과 예수가 예로 언급한 옥에 갇힌 사람들, 눈먼 이들 그리고 억눌린 사람들(눅4:18b)의 총칭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예수는 가난 자체에 복이 있다고 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한 사실이다(눅 6:20). 예수는 그의 선포와 행위 속에서 늘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한다.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눅 12:16이하)와 부자청년 이야기(마 19:16이하) 그리고 부자와 가난한 나사로 이야기에서(눅 16:19이하)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에 대해 예수는 말한다. 반대로 가난한 사람들은 예수 따르기가 더 쉽다(막 4:19; 10:21)고 한다. 예수는 또한 물질이 목숨을 얻게 할 수 없다고 주지시킨다(마16,26). 또한 예수를 따라가는 이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한 염려로 영향 받아서도 안 된다(마 6:19이하)고 한다. 더욱이 마지막 남은 동전을 헌금으로 바치는 가난한 과부의 믿음이 풍족한 가운데 쓰고 남은 것을 바치는 부자들의 것보다 더 크다고 말한다(눅21:1이하). 결국 예수는 건강한 사람, 의인, 부자들이 아니라 죄인, 가난한 사람들, 병든 이들에게 그의 나라를 약속한다.
죄인들과의 식탁공동체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당파적 행위 그리고 귀신축출, 치유행위 등, 예수의 섬김은 포괄적이고 전체적이다. 즉 예수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을 무조건 사랑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무제한적으로 신뢰 한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 9:22).” 또한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섬김으로 이미 현실이 된다.
초기 예수 공동체에 속한 이들의 섬김과 예수의 섬김 그리고 야훼 하나님의 관심은 일치한다. 야훼의 영을 받은 예수는 그의 전권을 제자들에게 위임하고 동시에 그들에게 전적인 섬김을 요구한다. 또한 이러한 섬김을 위해 제자들을 부르는 예수의 언명은 구약성서에 상응하여 나타난다.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눅 6:36).” 또는 “너희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마 5:48).” 동시에 예수자신과 관련하여 제자들에게 요구 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또한 섬김을 위한 파송 명령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아버지가 나를 보낸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 20:21).” 즉 자비하고 완전한 야훼의 섬김을 예수는 자신이 몸으로 살아내고 이를 제자들에게도 요구한다.
B. 예수 - 섬기는 이
그리스도교 교회의 초기 형성기에 교회로 하여금 전적인 새로움과 세상을 변혁케 하는 힘을 가져오게 한 요인은 바로 섬기는 자(Diener, Diakon)의 교회로 태동되었다는 점이다. “누가 더 높으냐?” 예수는 계속해서 묻는다. “밥상 앞에 앉은 사람이냐? 시중드는 사람이냐? 밥상 앞에 앉은 사람이 아니냐? 나는 시중드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와 있다(눅22:27).” 말 그대로 “… 섬기는 이로.” 바로 섬김의 표식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한다고 예고된다. 하지만 예수의 제자들은 그들 자신의 머릿속에 상정한 메시야 상에 대한 혼란을 겪는다. 제자들은 그들 중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에 대한 논란을 벌인다. 제자들은 영광의 주(主)의 교회가 되기를 원했지, “시중드는 이 같이” 여겨지는 주의 교회를 바랬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주께서 영광 받으실 때에 예수의 왕좌 오른편과 왼편에 앉기를 원했다. 하지만 예수는 단호히 말한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한다(막 10:43).” 즉 섬기는 자만이 큰 사람이고, 섬기는 이가 주다. 많은 종교지도자나 정치 지도자가 예나 지금이나 다음과 같이 말하기를 즐긴다. “나는 섬기는 자다. 하지만 지배자로서 나는 섬기는 자다.” 이를 통해 그들은 자신의 지배권을 장식하려 하고 변장한다. 하지만 예수는 정반대로 말한다. 이 세상의 지배자들은 섬기지 않고 지배하려 한다. 하지만 나는 너희 가운데 섬기는 자로 와 있다.
로마의 발덴저 대학 신학과 교수 파오로 리카(Paolo Ricca)가 1992년에 행한 강연에서 시중드는 자 예수에 관하여 도발적인 표현을 한 적이 있다. 신약성서 안에는 예수에 관한 많은 명칭이 있다. “놀라운 것은 예수 자신이 ‘섬기는 자’, ‘시중드는 자’ 라는 명칭으로 유일하면서도 명백하게 자신을 ‘규정’했다는 사실이다." “왜 누가복음 22장 27절에서 예수는 ‘시중드는 이처럼’이라고 말 하는가…시중드는 이처럼 그는 주(主)요 스승이다.” 이것은 놀랍고도 충격적인 사실이다. 예수 안에서 커다란 전환, 신적인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다. 지배의 방법과 양식이 ‘섬기는 것’, ‘시중드는 이’로 전환 되는 것이다. 시중드는 이로 되는 것이 스승 됨의 ‘방식’이 된다. “예수에게 있어 섬기는 것은 그 자신의 삶의 하나의 역할이 아니라 그의 삶 존재 자체이다. 동시에 그의 오심의 근거요 내용이다(막 10:45). 예수는 ‘섬기는 자’(Diakon, Diener)가 되기 위해 왔다.”
섬김을 사회 윤리적 측면에서 연구하는 독일 뮌스터 대학의 기독교사회학 연구소를 기초한 벤드란트(H. D. Wendland)는 1962년에 발표한 그의 논문 “그리스도-섬기는 이, 그리스도-종(Christos Diakonos, Christos Doulos)”에서 섬김의 성서 신학적 근거, 특히 섬김의 기독론적 근거를 서술한다. 사회 윤리학자이자 동시에 성서신학자인 그는 “신약 성서적 원 역설”을 바울에게서와 마찬가지로 복음서보도안에서 드러낸다. 즉 왕적이고, 신적이고, 미래 세계와 우주의 심판자 그리고 구원자는 ‘섬기는 자’와 ‘종’으로 서술된다. “이로 인해 예수는 종말론적 구원자 그리고 해방자 특히 섬기는 자가 된다. 그리고 그의 전 삶을 통해 이러한 섬김이 포괄적으로 드러난다. 다시 말해 구유 안의 아기 때부터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존재로서 그의 모든 행위와 모든 말씀 속에 섬김이 내재하여 있다.” 벤드란트는 고대사회의 전체 가치체계가 이러한 기독론적 혁명으로 인해 붕괴되었고, 결국 고대의 전체위계질서와 가부장적 사회질서가 와해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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