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문학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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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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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문학 답사
‘만 무 방’
*
차 례
김유정 문학작품의 배경
시대적 배경
성장 배경
주변 인물
김유정 문학작품의 경향
만무방 작품 분석
김유정 작품의 문학적 의의 및 비평
*
김유정 문학의 배경
문학적 특징
시대적 배경
성장 배경
주변인물
*
먼저 김유정 문학에 영향을 미치는 배경에 대해 시대적배경과 , 성장배경과 그리고 주변인물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시대적 배경
시대적 배경
- 1910년 토지사업과 1920년 산미증식계획의 명목으로 식량공급을 강요당함
- 1930년대 식민지에 대한 억압과 수탈 및 작품의 창작도 제약을 받게 됨
조선총독부
일본의 미곡수탈
*
일본의 군국주의정책은 식민지조선의 농촌경제를 파탄지경으로 내몰았습니다. 1930년대는 일본이 만주를 강점하고 다시 중국에 진입하여 결국은 태평양 전쟁으로 확대되는 도화선을 만든 시기여서, 식민지에 대한 억압과 수탈은 더욱 가혹해져 작품의 창작도 그에 따라 크게 제약을 받게 됩니다.
이시대는, 작가로 하여금 현실에서 외면하여 순수 문학의 이름 아래 사회성이 거세된 예술성 위주의 작품 활동으로 돌아가게 하거나, 또는 멀리 역사적 소재를 택해서 거기에 작가 의식을 상징적으로 반영하게 했으며, 한편으로는 농촌의 현실에 눈을 돌리는 소극적 항거의 방향으로 변모하게 만들었습니다.
성장 배경
유년기
-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우울
유년시절의 김유정
실레마을의 신남역
*
김유정은 1908년 1월 11일 서울에도 1백여 칸의 집을 지닌 춘천 천석지기의 막내아들로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7살 때 어머니가 병사하고, 그 2년 후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 김유정은 외롭게 자라면서 모성 결핍의 아이로 성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훗날 명창 박녹주에게 열렬히 빠져든 배경에는 이러한 불우한 가정 환경이 바탕에 깔려 있었습니다. 즉, 어려서 여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결핍의 감정이 그로 하여금 연상의 여인에 대한 병적인 사랑으로 몰아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울하고 내성적인 그는 생애에 단 한 번도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난봉꾼인 맏형이 가계를 맡으면서 화목했던 집안은 급격히 기울어 갔는데 당시의 모습은 자전적 소설 「형」에 슬프고도 섬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심약하고 예민했던 김유정은 이때의 충격 때문인지 오랫동안 말더듬이 증상에 시달리기도 했으며, 후에 휘문고보 2학년때 말더듬이 교정소에 다녀 이를 고치긴 했으나 늘 그 일로 과묵했다고 합니다. 김유정은 12살까지 실레마을에서 성장하며 울창한 숲과 맑은 냇물이 흐르는 자연 환경을 접하였습니다.
성장 배경
청소년기
- 서울로 상경
- 1923년 휘문고보 입학
- 1930년 연희전문 중퇴
*
그는 1919년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를 거쳐1923년 휘문고보에 입학하게 되는데 이때 단짝친구이자 훗날 월북한 안회남을 만나게 됩니다. 김유정의 조카 김영수에 의하면, 휘문고보 시절의 유정은 여러 운동과 바이올린 배우기, 영화감상, 소설 읽기등에 열중하느라 일기 쓸 틈도 없이 지냈으며, 하모니카 연주 실력이 뛰어난 소년이었다고 합니다. 1926년 4학년 때 휴학을 하게 되었는데, 형의 방탕한 생활로 인해 가정적인 이유도 있지만 연상의 기생 박녹주에 대한 짝사랑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유정은 22세인 1930년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했으나, 체 석달이 되지않아 곧 중퇴하였습니다. 그리고 봉익동 삼촌집에서 조카 영수와 같이 기거하며 춘천을 왕래하다가 더 있을 수 없어 삼촌의 집에서 나와 둘째 누이 유형과 같이 지내게 됩니다. 누이는 시집에서 소박을 맞고 돌아와 피복 공장을 다니다가 노동자를 상대로 밥장사를 하여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이 가난한 시기의 생활이〈따라지〉〈연기〉〈슬픈 이야기〉〈심청〉〈생의 반려〉등에 반영되어 나타납니다.
성장 배경
청년기(1)
-낙향, 들병이, 금광
- 금병의숙 설립
김유정과 누이, 조카 김영수
*
김유정은 1929년 치질이 1930년에는 늑막염이 발병하여 아픈몸으로 춘천 실레 마을로 내려갔습니다다. 그때 이미 형은 10년의 방탕 끝에 천석지기 재산을 거의 탕진하고 먼저 고향에 내려와 있었습니다. 유정은 실레에 와서 한동안 집시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됩니다. 들병이와 방탕에 빠지기도 하고 광산에서 일하며 허황한 꿈을 꾸기도 합니다. 이 체험이〈金따는 콩밧〉〈만무방〉〈총각과 맹꽁이〉〈아내〉등의 작품의 배경이 됩니다. 하지만 그의 건강은 나날이 나빠져 갔습니다. 형과의 불화, 잦은 폭음이 그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너뜨려 가고 있었고 그의 몸 속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치명적인 질병인 폐결핵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1932년은 유정은 생애에서 가장 활발하고도 의욕적인 기간이었습니다. 조카인 김영수와 문우인 조명희 등과 함께 고향 실레에서 농우회, 부인회를 조직하는 등 농촌 계몽활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유정은 자비를 털어 학용품을 사다 나누어주며 동네아이들에게 문맹퇴치운동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형님집 사랑을 이용했으나 형님의 호령으로 불가능해지자 집앞의 언덕받이에 움막을 파고 가르치기를 계속했습니다. 나중에는 야학당 금병의숙을 세웠습니다. 유정은 고향에서의 생활을 불과 1년 7개월만에 접어야했습니다. 이미 가세가 기울어 형 유근이 가산을 완전히 정리하고 조상 무덤까지 파 화장해 버렸고, 판 재산 중 일부를 그에게 나누어주는 식으로 해서 그를 다시 서울로 쫓아 보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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