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설史4대 사건 제1차《유양 잡죠》사건~제3차《명기집략》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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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제 1차 《유양잡조》사건(성종24년, 1493)-“괴탄하고 불경스러운 책이옵니다”
제 1차 《유양잡조》사건은 김심의 상소로 비롯되었다. 당시 이극돈과 이존준이 《유양잡조》등을 인쇄하여 성종에게 바치자, 성종이 김심 등에게 이를 풀이하여 바치라 명한다. 그러자 김심 등은 이 같은 책이 “괴탄하고 불경스러운 책”이라며 주해하기를 거부하였다.
《유양잡조》가 소설적 내용이 있다고 하나, 김심등이 주해를 거부한 이유를 보면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유양잡조》가 治道와 聖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였는데, 이는 임금에게만 방해가 된다는 뜻이다. 만약 백해무익하다면, 어찌하여 그런 책을 외부에 내보내려하는가? 둘째, 이러한 책을 인쇄하여 바치는 것이 아첨하는 길인가? 셋째, 성종이 말했듯이 이미 불가함을 알았다면 왜 말하지 아니했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사림과 훈구의 대립으로 발생한 정치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같이 책을 인간했던 이종준은 김심 등과 같은 사림파로 탄핵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은 이 사건의 성격을 명확히 드러낸다.
2.제 2차 《설공찬전》사건(중종 6년, 1511)-“채수의 죄를 교수형으로 단죄하소서”
제 2차 《설공찬전》사건은 사헌부에서 〈설공찬전〉을 칭탈하여 채수를 탄핵하며 시작되었다. 〈설공찬전〉은 일종의 빙의담으로, 청계 설공찬의 이야기다. 사헌부에서는 〈설공찬전〉이 사회윤리 기강을 해친다고 상소하며, 〈설공찬전〉을 불태우고 요서은장률(妖書隱葬律)까지 들먹인다. 그러나 〈설공찬전〉은 이미 사회에 널리 퍼져있었으나,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헌부는 왜 채수를 탄핵한 것인가?
채수는 〈설공찬전〉의 문제 전에도 여러 번 탄핵을 받았다. 이것은 《유양잡조》사건과도 비슷한 예로,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으로 파악할 수 있다. 채수는 무오사화에 연루되었으나 스승인 김종직을 비방하고 석방되었으며, 기록을 통해서도 사림과 좋은 관계가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따라서 훈구파인 채수를 탄핵하기 위해 사림파인 남곤, 김수동, 황여헌이 〈설공찬전〉에 좌도난정률(左道亂正律) 조선 시대 유교(儒敎) 이외에 도교나 불교 따위의 다른 종교로써 유교의 가르침과 법도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하여 백성들을 현혹시키거나 나라의 정치를 문란케 하는 일을 뜻함.
을 들이대며 교수형을 언급한 것이다. 이에 같은 훈구파인 김수동은 기양론(技)을 들어 소설저작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채수를 비호한다. 결국 〈설공찬전〉문제는 채수가 파직되었다가 5개월 만에 복직되는 것으로 일단락된다. 결국 제 2차 《설공찬전》사건은 사림과 훈구세력의 정치적 역학관계에 〈설공찬전〉이라는 소설을 적절하게 꼼수로 이용하였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3.제 3차 《명기집략》사건(영조 47년, 1771)-“효시하여 강가에 3일 동안 머리를 달아두어라”
제 3차 《명기집략》사건은 주린이 쓴 《강감회찬》의 내용에 대한 박필순의 상소에서 시작된다. 영조는 이에 대해 격노하여 주린의 책이 유입된 경로를 조사시키고 대책을 의논하게 된다. 조사 중에 주린이 지은 책의 정확한 이름이 《명기집략》이며, 그 내용에 조선 왕실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이 들어있음을 알게 된다. 이에 주린의 책을 인용한 책이나 주린이 지은 모든 책의 유입을 조사하게 되었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책쾌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죄를 쓰게 된 것이다.
<《명기집략》사건의 진행과정>
수입과 관련된 의주목사 서종벽(관직 삭탈)☞책쾌 배경도와 그에게《명기집략》을 산 이희천 효시, 같이 걸려든 책쾌 여덟 명(고수인, 고득관, 김덕후, 박사억, 박사항, 조득린 등)은 흑산도로 유배☞죽은 이현석이 《명사강목》에 주린의 평을 첨가하여 관직 추삭 ☞주린의 호가 청암(靑菴)임이 밝혀짐☞옥호가 청암이던 정득환이 걸려듬☞오촌당숙 정임이 심문을 통해 손님이던 윤혁을 끌어들임☞정득환, 정임, 윤혁 모두 효시, 처자는 노비가 됨
이 사건은 18세기 당시 책쾌들의 수가 많은 것을 보아 소설의 유통이 활발했음을, 그러나 이 사건으로 소설의 유통이 크게 위축되었을 것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영조는 조선 왕 중 가장 소설을 즐겼던 왕으로, 이 사건은 소설 그 자체에 대한 탄압은 아니었다. 오히려 영조시절에 소설은 궁궐에서조차 자유롭게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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