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기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프랑스혁명과 계급투쟁 사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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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인간은 자기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자기마음대로, 즉 자신이 선택한 상황하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려받은 상황 하에서 만든다. 맑스 이후 맑스 주의를 표방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변혁을 꾀했던 사회주의 운동은 오늘날 실패했다고 하고, 이런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맑스주의는 완전히 쇠퇴해 버렸다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된 현실은 오늘날에도 엄연히 존재.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착취와 억압이 계속되는 한, 소외된 현실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형태는 다르더라도 이에 저항하고 이런 사회체제를 변혁하려는 운동은 계속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역사의 흐름이라고 해얄지 불교에서 말하는 제행무상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로 모든 것은 다 변하기 마련이다.
진정으로 인간다운 사회로의 변화를 위해서는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새로운 전망을 모색을 해야 하는데 그런 의미면에서도 마르크스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만만치가 않다. 용어들도 낯설고 개념들은 쓰는 사람에 따라 왜 그렇게 다 다른지, 책읽을 여유조차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내용파악도 더디고 사회학적 글쓰기의 어려움을 실감한다.
프랑스 혁명은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 점령부터 1871년 파리 코민이 실패할 때까지의 기간, 즉 시민혁명이 프랑스 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혁명과 반혁명이 반복되면서 진행된 모든 시기를 가리킨다. 마르크스가 분석하고 있는 1848년의 2월 혁명과 6월 혁명, 루이 보나파르트의 집권, 그리고 파리 코민 사건은 프랑스 혁명의 흐름 속에서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1830년에 성립되었던 7월 왕정이 붕괴되는 1848년 2월 혁명과 혁명의 결과를 부르조아지가 독점한데 불만을 품은 프롤레타리아의 6월 혁명이다.
7월 왕정, 즉 부르봉 왕정복고 체제를 무너뜨리고 오를레앙 왕조의 입헌군주제를 이끌어 가던 루이 필립 치하의 왕정을 맑스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7월 왕정은 대부르조아지에게 처음부터 의존해 있었다. 7월 왕정은 프랑스의 재산을 착취하기 위한 주식회사에 지나지 않았다. 주식지분은 장관들과 24만에 불과한 유권자들에게 나뉘어져 있었고, 루이 필립은 주식회사의 관리자였다. 금융귀족은 생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미 있는 다른 사람들의 부를 가로 채므로써 자신들의 재산을 늘려가고 있었다.
3일간의 시위와 소규모의 시가전에 의해서 1848년의 2월 혁명은 성공하였다.
2월 혁명의 결과로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고, 여러계급들 사이의 이익이 서로 적대적으로 대립하고 있었는데, 그중 부르조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이익이 가장 적대적으로 맞서고 있었다. 부르조아지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프롤레타리아의 요구를 거부하고 그들을 억누를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노동자들에게는 더 이상 다른 선택이 없었다. 프롤레타리아들은 거대한 폭동으로 대답하였다. 이것이 바로 6월 혁명이다. 이것은 유럽 시민전쟁사에서 가장 놀라운 사건이었으며, 근대 사회를 찢는 두 계급 사이의 최초의 거대한 싸움이었다. 이 부르조아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거대한 투쟁은 부르조아 질서를 보존하느냐 아니면 폐기시키느냐의 싸움이었다. 노동자들은 지도자, 공통된계획, 무기 등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상자를 내고 패하고 말았다. 이로써 부르조아지들은 2월 혁명을 통해 불완전한 형태로 획득하였던 부르조아 공화국의 진정한 탄생을 완전하게 획득한 것이다.
1848년 12월 대통령 선거로부터 1851년 12월 쿠데타까지의 루이보나파르트의 집권과정을 보면 그당시 프랑스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1848년의 사회적격동기에 보나파르트 나폴래옹 1세의조카라는 것 외에는 주목을 끌만한 점이 없는 루이 보나파르트가 초대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사건은 매우 놀랄만한 일이었다. 국민의 2/3이상을 차지하는 농민이 2월 혁명과 6월 혁명기간 동안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공포와 부르조아 공화파의 지배에 반발을 느끼고 루이 보나파르트에게 기대를 걸고 농민의 보호자로 선택했던 것이다.
이후 1851년 12월 1일밤과 1852년 12월 2일 보나파르트는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공화국이라는 간판을 내리고 제국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루이 보나파르트, 즉 나폴레옹 3세의 권력은 두 차례의 쿠데타에 힘입은 것으로 계속적으로 경제적 번영과 외교적 성공을 거둠으로써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음은 1871년에 있었던 파리 민중들의 봉기, 즉 파리 코민의 72일간이다. 파리 코민은 72일만에 단명으로 끝난 사건이다.
마르크스의 논지에 따라서 그가 주로 분석대상으로 삼았던 1848년 2월 혁명, 6월혁명, 보나파르트의 집권과정, 파리코민 이러한 상황들을 현실 분석에 적용되면서 다른 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사회계급과 사회운동, 그리고 정치체계를 분석하는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정치적 사건을 분석할 때, 언제나 한사회의 경제구조를 분석의 기초로 삼는다. 또 그는 정치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회운동을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사회계급들 사이의 이익갈등과 대립이 정치적 차원에서 표출된 것으로 나타난 것으로 본다. 그리고는 각 계급들 사이의 이익갈등의 대립에 따라서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의 정치투쟁과 사회운동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계급분석은 마르크스 사회 이론의 핵심이라고 할 만 하다. 베버에게 합리성의 개념이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듯이 마르크스 저작에 있어서는 계급 개념이 핵심이 되고 있다. 마르크스가 보여주고 있는 부르조아지,쁘띠 부르조아지,프롤레타리아등 다양한 사회계급은 봉건사회로부터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고 있는 격동기의 프랑스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매우 복잡한 사회계급들이 얽히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맑스가 사회운동을 설명할 때 언제나 한 사회의 기층구조로서 경제구조를 분석의 기초로 삼으며 경제적 이익관계의 대립갈등이 정치적 차원에서 표출된 것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주목할 것은 사회학자로서의 맑스는 사회혁명과 정치혁명을 하나의 이론체계 속에 통합하여 체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프랑스혁명과 계급투쟁을 공부하면서 학생운동, 여성운동, 노동운동에 참여해 토론과 논쟁을 일삼던 때가 생각났다. 한쪽에서는 혁명적인 사고방식으로 무조건 밀어 부쳐야 한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아니다 너무 급진적이다 그러면 희생이 나올 수 밖에 없으니 혁신적인 방법으로 점진적으로 가야 한다는 등 옥신각신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사회운동이라는 것은 사회적 조건이 변화함에 따라서 상호연합과 복잡한 갈등과정을 거치면서 전개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방법만 쓴다는 것은 무리겠구나 라는 걸 느낀다. 또한 묘하게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들로 인해 합리적이면서 어느 누구도 손해 보지 않는 방법을 찿는 다는 것은 여전히 쉽지만은 않은 일인것 같지만 반면 맑스를 공부하면서 뭔가 획기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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