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과 한국사회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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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족, 만족, 등과 같이 조선족은 중국의 56개 종족중의 하나로 통칭되는 공식 명칭이다. 중국에는「토착민족」과「이주민족」이 있는데 조선족은「이주민족」에 속한다. 중국조선족은 6단계에 거쳐 이주해 온 <이주민족>이다.
제1단계는 1620년부터 1677년의 명말(明末) 청초(淸初) 시기이다. 소위 <강제 이민시기>이다. 1619년 조선조 광해군은 명나라의 요청에 의해 후금의 누루하치 군대를 치기 위해 12,000명의 군대를 파견하는데 이들이 후금에 투항하며 잔류하게 되고 1627년 <정묘호란>과 1636년 <병자호란>때에 조선을 침공한 청군들에 의해 납치된 수만 명의 조선 군대와 백성들이 정착하게 된다. 이들은 청조의 팔기군에 편입되기도 하고 청조의 왕공 귀족 등의 전리품으로 농노 혹은 뽀이(包衣,가내노예)로 전락된 조선족이다.
제2단계는 1677년부터 1881년까지의 범월잠입(犯越潛入)시기이다. 당시 백두산 부근은 청조의 만주 민족의 발원지로서 신성시하여 백성들의 거주, 경작이 금지된 <봉금정책>에 따라 원시림의 옥토로 남아있었다. 이때 조선 북부의 농민들이 몰래 이주해 깊은 산 속에서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짓거나 만족이나 한족의 부자들에게 농노로 <끼살이>하면서 정착하던 시기이다.
제3단계는 1882년부터 1910년까지의 <이민초간시기>이다. 이때는 「러시아」가 영토를 확장하던 시기라 이를 막기 위해 청조는 군대를 파송하였으나 중원으로부터 식량보급이 어려워지자, 당시 이미 월경 잠입하여 농사를 짓는 조선족과 한족들을 이곳에 정착시켜 군량미를 생산케 하였다. 1881년 <봉금정책>을 폐지하고 조선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연변을 개간하고 1885년 연변을 조선족의 <전문개발지역>으로 확정함으로서 연변이 공식적인 조선족 거주지역이 된다. (약 5,900세대)
제4단계는 1911년부터 1920년까지의 <자유이민시기>이다. 1910년 일제의 조선합방이후 일제의 조선농민농토수탈로 파산된 농민과 <망국노>가 되기 싫어서 많은 독립투사들이 이주해온다. 1922년 동북의 조선족 인구는 51만 5,865명으로 급증하게 된다.
제5단계는 1921년부터 1931년 <9.18>사변 전까지의 <이민제한시기>이다. 한일합방 후 일본 정부가 조선족을 보호한다는 빌미로 군대파견을 검토하자 중국정부는 조선족을 박해하고 이민을 금지하고 1927년 전후하여 귀화 입적할 것을 강요하게 됨으로 많은 사람이 조선으로 돌아가던가 북만주로 이사하게 된다.
제6단계는 일제에 의한 <강제이민시기>라고 하겠다. 일제의 대륙 침략의 병참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일본인 100만 명을 이주시키고 조선인 1만 세대를 이주시켜 압록강, 두만강, 동북의 토지를 개발시키는 시기이다. 해방 당시 중국조선족 인구는 215만 명에 달했고 해방 후 조선 반도로 귀환한 동포를 제외한 조선족은 1949년 중공정부 창건당시 120만 명 선이었으며 그 후 약 200만 명으로 자연 증가한 상태다.
중국 동북 3성인 헤이룽장(黑龍江흑룡강), 지린(吉林길림), 랴오닝(遼寧료녕) 등지에 2백만명에 가까운 중국 동포가 살고 있다. 특히 자치주로 분류된 옌볜(延연변) 지역에는 많은
동포가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정책 틀 안에서 우리의 언어. 역사. 풍습을 유지해 왔다. 한민족이 동북 3성 지역에 살기 시작한 것은 멀게는 고조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재 거주자들은 구한말 이후 이주해 간 사람들이다. 특히 1930~40년대 경제. 정치적 이유로 대거 이주했다. 이들은 황무지를 개척해 경제를 발전시키고, 일본 제국주의와 맞서 중국 내 소수민족으로 인정받았다. 이 과정에서 한민족의 문화는 유지하면서도 중국과 운명을 함께 하는 이중성을 갖게 된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중국 동포 사회는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를 맞았다. 젊은 층이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입국하거나, 중국 내 대도시로 빠져나가면서 인구가 점점 줄고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동북 3성을 떠난 중국 동포가 2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중국 동포들의 한국 내 법적 지위는 한국과 중국, 어느 곳에도 완벽하게 속할 수 없는 이방인이다.
Ⅱ. 조선족 생활현황
한중수교 이후 조선족은 재외동포 중에서도 수적으로도 가장 많은 동포였고, 한국기업이 중국에 진출할 때 많은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연변에는 한국바람이 일며 많은 수의 조선족이 부푼 기대를 안고 한국으로 건너 왔다. 그러나 조선족은 막노동을 하는 가난한 동포,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더럽고 힘든 일을 하는 불쌍한 동포로 전락하게 된다.
▶ 지역적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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