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례 역사문화연구회 답사기 한성백제사 풍납토성과 백제의 왕성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5.06.27 / 2015.06.27
  • 2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8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본문내용
3.기루왕 : 다루왕의 맏아들, 지진, 가뭄, 태풍 등의 기상이변 발생, 정치, 사회적 불안
4.개루왕 : 기루왕의 아들, 북한산성을 쌓음, 신라와의 전투
5.초고왕 : 개루왕의 맏아들, 신라와의 공방전, 말갈의 침입에 대비
6.구수왕 : 초고왕의 맏아들, 키가 2미터 이상의 거구, 고이왕과 형제라고 전해지나 신빙성이 떨어짐
7.사반왕 : 너무 어려서 고이왕이 그를 폐위함.
8.고이왕 : 왕권을 거머쥠, 왕조의 성립을 하늘과 땅에 알리는 의식 거행, 중앙 집권
9.책계왕 : 중국군현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 정략결혼
10.분서왕 : 낙랑군의 서쪽 현을 공격해 차지했으나 자객에 의해 암살
11.비류왕 : 구수왕의 둘째 아들이라고 하지만 시대적으로 보았을 때 신빙성이 떨어짐, 신라와 화친을 맺음
12.계왕 : 분서왕의 맏아들 우복의 난을 평정함, 재위 3년 만에 사망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풍납토성, 하남위례성, 위례성, 백제건국, 도성] 풍납토성과 하남위례성, 백제 건국지로서의 위례성, 두 개의 위례성, 풍납토성을 통한 하남위례성 고찰, 백제 초기 도성의 방위체제, 풍납토성과 위례성의 의의 분석
  • 풍납토성은 어떠한 조사도 이루어지지 못한 채 서울특별시의 대규모 성장과 함께 급속한 개발의 시련을 겪게 된다. 그러나 1997년 선문대학교 李亨求가 풍납토성 실측조사 도중 토성 내부 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에서 백제토기 등 유물을 발견하고,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긴급 발굴조사를 실시한 것을 계기로 풍납토성에서는 백제 한성시대의 역사를 새로 장식할 만한 중요한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게 되었다.Ⅱ. 백제 건국지로서의 위례성백제 도성

  • [사회인문학] [지리]역사적시점에서 바라본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 백제의 역사와 같이하는 몽촌토성라. 토성의 목조방식마. 발굴된 유물바. 성내부 시설물1) 수혈주거지 2) 온돌건물지 3) 저장공 4) 해 자 5) 목 책 사. 현황 및 전망Ⅳ. 몽촌토성이 왕성으로 위치하기에 불합리한 점Ⅴ. 미궁에 빠진 왕성의 위치와 떠오르는 풍납토성1. 풍납토성의 위치와 규모2. 풍납토성이 알려지기 시작한 계기3. 백제 사람들의 우수한 토목기술을 보여주는 성벽4. 수준 높은 문화를 보여주는 유물5. 백제시대 가장 빠른 유적6. 왕

  • 백제의 u 왕도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 풍납토성은 백제왕성으로 비정될 수 있는 가능성을 잃어 버렸다. 이후 이렇다 할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이에 방치되고 있다가 1970년대에 와서 서울시의 도시개발과 더불어 풍납토성 내부가 시민의 주거지로 변모해 갔다. 그런 가운데 1997년 1월 초, 풍납토성의 실측조사를 실시하던 선문대학교 역사학과 학술조사단(단장 : 이형구)이 풍납동 231-3번지 일대의 현대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백제토기 등 유물다수를 발견한다. 이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 도시와 문화콘텐츠 -풍납동, 바람드리 마을
  • 풍납동에 자리하고 있는 풍납토성에 대한 문화재적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재개발이 아닌 문화재보존과 활성화에 대한 논의가 어려운 편이다. 그래서 텃밭에 대한 계획와 함께 풍납토성의 역사적 가치를 홍보하고 보존의식을 고양하여 주민들이 문화재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려 한다. Ⅱ. 본론1. 풍납동의 문화재적 가치① 풍납토성 사적 제 11호 지정 등록일 1963.01.21 문화재청 홈페이지초기 백제 시대의 토성으로 백제 21대 개로왕(

  • 일본문화 원류로서의 백제문화
  • 백제문화Ⅰ 백제의 숨결1. 일본이 숨쉬는 곳 - 백제부여에서 외국인이 묵어갈만한 숙소는 부여 유스호스텔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도 부여는 오래 전부터 일본인 관광객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곳이다. 부여 유스호스텔 계단과 복도에는 여기를 다녀간 수학여행단의 단체기념사진이 죽 걸려 있는데 그들은 무엇 때문에 불편한 교통과 숙박시설을 마다 않고 부여를 찾아오는 것일까?그것은 일본인들이 그들 문화의 원료(源流)로서 백제문화라는 역사적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