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작품세계의 특성과 그전개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5.06.27 / 2015.06.27
  • 7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8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본문내용
상허 이태준은 1904년 11월 4일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서 부친 이창하와 모친 순흥 안씨 사이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장기 이씨 가승”에 의하면 이태준은 소실의 자식이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소실의 자식으로서의 자의식을 나타낸 부분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마 그런 의식을 느낄만한 나이가 되기도 전에 고향을 떠났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부친 이창하는 字를 문규, 호를 매헌이라 하였고 철원공립보통학교 교원과 덕원감리서 주임을 역임하였다. 구한말의 개화파적 지식인이었던 상허의 부친은 당시 의병들에 의해 친일파로 오해받았고, 이는 고향을 떠나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주하는데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던 듯하다. 그러나 부친은 1909년 가을 35세의 나이로 병사하고 만다.
가장을 잃은 일가는 이듬해 고국으로 향하는데 어머니가 배 안에서 둘째 딸 선녀를 낳게 되어 예정을 바꿔 가까운 포구인 함북 배기미(梨津)에 내려 인근 소청거리에 정착하게 된다. 여기에서 어머님이 음식점을 경영하여 얼마간의 안정을 찾게 되자 이태준은 서당에 보내져 공부를 하게 된다. 1912년 어머니마저 죽자 세 남매는 졸지에 고아가 되었다. 상허 나이 9살의 일이다. 이들은 외조모 손에 이끌려 고향에 돌아와 친척집에 맡겨진다. 하지만 당연히 부모가 없는 고향은 결코 안식처가 되지 못했고, 주변 어른들의 동정과 양자로 간 친척집에서의 괄시는 어린 이태준에게 깊은 상처를 남겨 주었다.
1918년 사립 봉명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는 한달 후에 가출해 여러 곳을 방랑하다 원산 객주집에서 사환으로 정착한다. 2년 가량을 그렇게 보내던 상허는 다시 서울로 와 고학을 하다 1921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습작생활에 몰두한다. 21살 되던 24년에는 학예부장으로 활동하여 ‘휘문 제2호’에 동화 <물고기 이야기> 등 6편의 글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6월에 동맹휴교의 주모자로 지적되어 4학년 1학기에 제적당하고 만다.
이어 휘문고보 친구인 김연만의 도움으로 일본에 건너가 신문, 우유 배달 등을 하며 궁핍한 생활 속에서 나도향과 교우했고, 1925년에는 한 시골여자의 문란한 성생활을 치밀한 필치로 그린 <오몽녀>를 『조선문단』에 투고하여 입선함으로써 문단에 처음으로 나서게 된다. 1927년 4월에 동경 상지대에 입학하지만 어려운 고학생활을 이기지 못하고 그 해 가을 자퇴한다. 귀국해서는 모교와 여러 신문사 등에 취직을 알아보지만 실패하고 한동안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데뷔작 이후 그의 글이 다시 지면에 선보이는 것은 1929년 <개벽사>에 입사한 뒤이다.
1930년 5월에 이화여전 음악과를 갓 졸업한 이순옥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다. 작가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은 이 시기부터인데 1931년 중외일보 기자로 입사하면서 그 후 이 신문의 폐간과 함께 조선중앙일보에 학예부장이 되었고, 이화여전 등에 작문교사로 출강한다. 이 시기는 이태준 문학의 전성기로 그의 대표작 대부분이 이 때 창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구인회』 구성에 앞장서는 등 사회적인 위상도 함께 드높아지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그는 매년 한편 꼴로 장편도 발표하여 경제적 안정도 얻는다. 이를 바탕으로 1933년에 성복동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지속적인 작품활동을 전개한다.
1933년부터 19378년에 이르는 시기가 이태준에게는 작가로서 가장 왕성한 필력을 보여줄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여유있는 시기로 보여진다. 이 시기에 이태준은비경향문학이 낳은 최대의 작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1937년에 접어들면서 시국은 급변하고 그 영향을 받은 그는 지금까지의 작품을 습작이라고 평가하면서 새로운 경향의 작품을 창작할 것을 다짐하기도 하였다.
1939년 『문장』지의 창간에 관여하고 책임편집을 맡으면서 이태준은 식민지 말기 우리 문학을 지키는 일에 남다른 공헌을 한다. 『문장』은 1930년대 초반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이른바조선주의 문화운동‘의 영향권 속에서 활동했다. 이 잡지를 중심으로 이태준은 이병기의 주도 아래 고전의 부흥에 진력하면서 의고주의적 예술 작품의 표현에서, 고전적 작품의 양식을 본뜨려는 주의. 상고주의(尙古主義). 고전주의(古典主義).
취향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1940년대로 접어들면서 이태준도 몇몇 친일적인 글을 발표한다. 그 때의 심정은 해방 이후 발표한 <해방전후>에 비교적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그러다 1943년 이태준은 고향인 철원 근처로 낙향하였다가 거기에서 해방을 맞는다.
해방 이후 이태준은 민족의 단결을 적극 주장하면서 스스로 좌익 작가들이 주도하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하여 부위원장을 맡고, 이후 1946년 7월경 월북하여 8월에는 소련을 방문하고 이 체험을 <소련기행>이라는 글을 통해서 발표한다.
월북 이후에도 작품을 활발히 창작하던 이태준은 1953년의 남로당 숙청 시에는 화를 모면했지만 1956년 소련파의 몰락과 함께 숙청당하고 만다. 숙청 이후의 행적에 대해선 현재까지 명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일설에 함흥 콘크리트 블록 공장의 파고철 수집 노동자로 배치되었다가 66세 즈음에 강원도 장동탄광 노동자 지구에서 사회보장으로 부부가 함께 살다가 사망했다거나, 50세 때 남로당파의 숙청이 끝난 가을 자강도 산간 협동농장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1960년대 초 산간 협동농장에서 병사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한다.
Ⅱ. 작품세계의 특성과 그 전개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현대문학사] 1920년-1930년대 초반 문학 소설, 희곡, 비평
  • 1920년 ~ 1930년대 초반 문학 - 소설, 희곡, 비평< 목차 >Ⅰ. 머리말 Ⅱ. 1920년 ~ 1930년대 초반 소설 1. 시대적 배경과 문학의 흐름2. 작가와 작품세계 1)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의 두 지평-염상섭과 현진건2) 세계 인식의 두 대립과 분화 - 주요섭, 최서해, 이익상, 나도향3) 교조적 마르크시즘 대 통속소설4) 농촌 현실에 대한 두 시각 - 이기영, 조명희, 이무영, 심훈5) 동반과 순수의 비화해 - 이효석, 이태준, 유진오, 채만식Ⅲ. 1920년 ~ 1930년대 초반 희곡1.

  • 이태준의 작품세계 -해방전후
  • 국어교육과 이태준 『해방전후』 Ⅰ. 이태준의 연보Ⅱ. 해방직후 문학1. 해방 직후의 문단의 조직2. 해방 직후의 문학Ⅲ. 이태준의 작품세계1. 이태준 문학의 전개과정2. 이태준 문학의 특징Ⅳ. 작품분석1. 서지사항2. 줄거리3. 구성4. 배경 5. 현실반영 6. 시점과 서술자7. 인물분석 8. 표현상 특징9. 제목 의미와 주제Ⅴ. 평가1. 학계ㆍ문단의 평가2. 우리들의 평가Ⅵ. 임용고사 문제(1999)Ⅶ. 참고문헌Ⅰ. 이태준의 연보1904년( 1세) 11월 4일 강

  • [현대소설] 30년대 한국 농촌의 풍속도-김유정론
  • 작품만의 독특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굳이 심각하게 현실의 부조리와 그러한 현상이 일어난 원인을 묻지 않으며, 굳이 직설적으로 섣불리 계몽을 부르짖지도 않고, 우리민족의 향토성 짙은 언어와 해학과 풍자로 작품을 가득 채웠던 것이다. ✿참고문헌✿이주일. 한국현대작가연구. 국학자료원. 2002.김용성.우한용 공편. 한국문학연구4. 제3판 한국근대작가연구. 삼지원. 2001.홍문표. 동천문학연구총서5. 한국현대문학사. 개화기에서 광복

  • [현대문학입문] 이상의 작품세계와 시대상
  • 세계>, 김용운의 , 오광수의등으로 대표된다.이 시대의 특징은 작품의 미시적 분석을 비롯하여 수학자, 미술평론가 등의 조명아래 이상문학이 놓이게 되는데, 그만큼 이상 문학이 수학, 미술, 건축, 그리고 정신 분석 등으로 확산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80년대는 그 동안의 논의를 더 심화시킨 시기라 볼 수 있다. 새로운 범주를 개척하기 보다는 그 동안의 논의를 더 심화시키는 작업이었다고 보여진다.

  • 소설의 작품 세계와 문제의식
  • 개화 지식인들은 나라에서 수용되지 못하고 잉여로 전락하면서 많은 갈등을 겪게 되었다. 현진건은 이러한 상황들을 관찰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염상섭과 함께 당대 사실주의 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소설가로 평가받는다.시기별로 그의 작품세계를 두 가지로 나누어 보자면, 먼저 초기 작품들로써 잉여 지식인의 갈등을 다룬 소설로 「빈처(貧妻)」, 「술 권하는 사회」 등을 들 수 있고, 그 이후, 소외된 하층민의 비극과 계층의 양극화 모습을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