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의 남자를 보고 왕과 공길과 장생의 삼각관계와 의문점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5.06.27 / 2015.06.27
- 2페이지 /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800원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1
2
추천 연관자료
- 본문내용
-
어릴 적에 누구나 한 번쯤 ‘왕자와 거지’라는 동화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유치원 다니던 시절에 그 동화를 텔레비전 인형극으로 먼저 접했는데 처음에는 왕자의 심리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왕자가 뭐가 부족해서 거지가 되려고 하지? 나라면 그냥 살 텐데.’
하고 생각했다. 거지를 부러워하는 왕자의 모습이 사치라고 생각했던 나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조금씩 왕자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도 가끔씩 왕자처럼 나의 모든 것들을 떨쳐 버리고 잠시 다른 삶을 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곧 현실을 직시하고 다시 현재의 나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영화 ‘왕의 남자’는 그동안 국사 교과서에서 갑자사화를 일으킨 대표적인 폭군으로만 묘사되던 연산군의 인간적인 면을 재조명했다. 폐비 윤 씨의 죽음을 본 연산군은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것이 트라우마가 되는데, 광대들이 그 사건을 경극형식으로 재현함으로써 연산군은 자극을 받아 그 자리에서 선왕의 여자들을 칼로 베어버리고 만다.
또한 공길을 불러다 놓고 대뜸,
“놀자.”
라고 말했을 때 관객들은 모두 폭소를 터뜨리지만, 나는 그 말에도 왕의 애환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왕자의 신분으로 태어나 모두들 자기를 떠받들고, 친구라곤 없이 왕실의 법도에 맞게 살아온 연산군은 진짜로 공길과 함께 ‘놀고’ 싶었을 것이다. 처음에 왕은 공길을 그저 놀이상대로 여기다가 나중에는 공길에게 벼슬을 주고, 공길과 놀이상대 이상의 관계가 된다. 처음에 공길은 광대놀이도 하고, 양반을 상대로 본인의 의지라기보다 돈을 벌어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몸을 파는 광대였다. 그런데 여기서 공길의 캐릭터가 좀 불분명하다. 양반에게 했던 것과 달리 왕에게 애정을 느껴 스스로 자신의 성을 상납한 것이라면 나중에 장생을 택하지 않고 왕 옆에 남았어야 하는데 엔딩장면은 공길이 장생과 다른 광대들과 함께 다시 길을 떠나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난다. 또한 왕의 어머니 얘기를 듣고 마음이 흔들릴 정도로 여리고 감수성이 풍부한 공길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 입체적 인물이라고 보기에는 입체적 인물 나름대로의 일관성이 없다. 공길은 결국에는 왕을 버리고 자신을 진정으로 위하고 사랑하는 장생을 따라간다. 사랑에 있어서 승패를 나눈다는 것이 의미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승자는 비록 두 눈은 잃었어도 공길을 얻은 장생이 될 것이다.
영화 중간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공길이 포주(?)를 낫으로 죽이고 장생과 단둘이 한양에 올라와 광대놀이로 돈을 많이 버는데, 왜 그전에는 공길이 양반을 상대로 몸을 팔아야 겨우 입에 풀칠할 돈을 벌 정도의 돈벌이 밖에 되지 않았냐는 것이다. 시골이라서 판이 작았을 수도 있겠고, 왕이 사냥터를 만들기 위해 도성 밖 사람들을 내쫓아 한양 내에 큰 놀이판이 없어졌다고 해도 전국 팔도에서 내로라하는 광대들이 모이는 한양에서 그 정도의 실력을 발휘할 정도라면 조선 어디에서든지 충분히 돈을 벌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영화 ‘왕의 남자’는 사극 고유의 말투 대신 현대 구어를 사용해 보는 이로 하여금 사극의 답답함을 적게 했다. 드라마에서는 허준, 대장금 등 사극으로 성공한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영화에서 사극은 비주류였는데, 이렇게 현대식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사극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자료평가
-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