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계 박인로논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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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노계 박인로논
1. 노계의 문학사적 위치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는 조선시대 명종, 선조, 광해군, 인조의 4대에 걸쳐서 생존했던 문인 중의 한 사람이다. 조선 시대의 역사를 임진왜란을 분수령으로 해서 전기와 후기로 구분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는데, 그렇게 본다면 박인로는 조선 시대 전기에서 후기로 넘어오는 과도기를 살다간 인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박인로(1561-1642)가 살다간 시기는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을 겪었던 시기이니 만큼, 사회적으로 혼란하기 이를 데 없었고, 경제적으로 궁핍하기 이를 데 없었던 시기였다. 이처럼 험난했던 시절에 그는 직접 전쟁에 참가하여 전투를 하는 무부(武夫)생활을 했고, 전쟁 후에는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미관말직(微官末職)을 지내었고, 은퇴 후에는 사서삼경과 성리학에 잠심하는 유자(儒者) 생활을 했다. 특히 그의 유저(遺著) 《노계집(盧溪集)》 제3권에 있는 국문시가(國文詩歌)들은 그 양적인 면이나 질적인 면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아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과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와 더불어 조선시대의 3대 시인이란 칭호를 듣게 되었다.
그의 유저(遺著) 『노계집(盧溪集)』 제3권에 있는 국문시가(國文詩歌)로 말미암아 국문학사상 길이 방명(芳名)을 떨칠 존재가 되었으니, 시대적으로는 정송강과 윤고산의 중간에 개재(介在)하여 그들과 더불어 시가문학의 삼고봉(三高峰)이라 일컬을 만하다. 그는 가사에 있어서 송강 보다 다작(多作)이요, 시조도 육십팔 수나 남겨 놓아 그 양과 질에 있어서 어엿한 가객(歌客)임을 과시(誇示)해준다.
-이상찬(李相寶), 『개고 박노계연구(改稿 朴老溪硏究)』, 1962.
이상 삼자(三者)의 모든 작품에 대하여는 물론 각편에서 상술하겠지만, 이 모두가 한국 근세 시가문학사상 주옥(珠玉)같은 존재로서 빛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국문학사상 근세라는 시대적인 개념을 말해 두어야 하겠는데, 필자는 이조초부터 갑오경장 이전까지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조윤제 박사의 『국문학사』에서와 같이 선조(宣祖) 임란(壬亂)때부터 갑오경장까지라 하더라도 이 삼대시가인의 연대는 이에 해당되는 것이다. 물론 이 삼시가인(三詩歌人) 외에도 작품을 개별적으로 볼 때, 질적으로 우수한 작품이 있고, 또한 양적으로 장편이 없는 바 아니나, 시조(단가)와 가사(장가)를 겸행하고 작품의 양과 질이 빼어나고, 진지한 그들의 작가적 생활을 볼 때, 아무리 하여도 이 삼자를 근세 삼대 시가인으로서의 위치는 양보할 수 없을 것이다.
-박성의(朴晟義), 『송강노계고산의 시가문학』, 1966.
박인로는 이처럼 상당수의 국문 시가를 남기며 일찍부터 송강 정철, 고산 윤선도와 함께 주목 받아왔으며 그의 문학적 성과에 대한 평가는 대개 이들과의 비교를 통하여 이루어졌는데, 가사와 시조의 어느 면에서도 탁월한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박인로와 정철, 윤선도를 평면적으로 비교, 평가하는 것은 각자의 정치적, 사회적 처지가 상이했음을 생각할 때 거의 무의미하다. 정철, 윤선도는 당대의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몇 번의 정치적 좌절을 체험했다 하더라도 중앙 정계에 깊이 관여한 전형적 사대부(士大夫)임에 반하여, 박인로는 몰락한 향반(鄕班)으로서의 체험과 내면적 갈등 위에서 그의 작품 세계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렇듯 박인로는 몰락한 향반으로 궁벽한 지방에서 평생을 곤궁하게 살면서 자신이 신봉한 유가이념과 그 실천을 제약하는 현실 사이에서 심각하게 고민한 한 인간이라 할 수 있다.
2. 노계의 생애와 업적
박인로의 본관은 밀양, 휘(諱)는 인로(仁老), 자는 덕옹(德翁), 호는 노계(蘆溪) 또는 무하옹(無何翁)이라 하였다. 1561년(명종16년) 음력 6월 21일에 경북 영천군 북안면 도천리에서 출생하였고, 1942년(인조20년) 음력 11월 6일, 그의 나이 82세에 돌아가셨다. 그의 생애에 대한 자세한 내력은 『노계집(盧溪集)』 권2에 실려 있는 <행장>과 <묘갈명병서(墓碣銘幷序)>에 수록되었는데, 시조는 신라의 박혁거세이고 박인로는 그로부터 52대째가 된다. 이처럼 멀리 시조는 박혁거세로부터 비롯하였으나, “世代侵遠故以中祖(세대침원고이중조) 晋祿爲一世(진녹위일세)”라 하여 제 사십 삼 세손인 진녹(晋祿)으로 중조(中祖)를 삼았다. 다시 말해, 진녹(晋祿)으로부터 다시 1세를 삼았던 것이고 진녹(晋祿)은 고려 때 벼슬이 대제학(大提學) 전사령(典祀令)에 이르렀다고 한다. 노계의 가계를 살펴보면 아주 선대에서는 높은 관직을 지낸 조상들이 있었으나, 가까운 조부나 부친 대에 와서는 미관말직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니 그의 가정환경이 관계의 진출이나 출세의 길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고 본다.
(1) 제1기, 성장기(成長期) 또는 수학기(修學期) (출생~31세)
노계는 천성적으로 글공부를 잘했다는 것이 정규양(鄭葵陽)이 쓴 <박공행장(朴公行狀)>에 나타나 있는데 “어머니가 임신 중에도 이상한 징후가 많았으며, 자랄 때는 사리에 밝고 통달함이 신들린 것 같았다. 그리고 문자를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이해했으며, 남들이 서사(書史)를 읽으면 한번 듣고 바로 기억했다.”라고 적고 있다. 이처럼 그가 천부적으로 문학에 소질이 있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한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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