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이사도라 던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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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도라 던컨
이사도라 던컨(1877~1927)은 발레가 주도하던 서구의 무용무대에서 자유로운 움직임, 내면의 박동에서 우러나오는 힘을 외치며 무용무대는 물론 현대예술에서 가장 격정적인 혁명세력을 주도한 예술가 중의 한 사람이다. 20세기 무용무대에서 그녀의 존재와 위상은 철학의 니체, 심리학의 프로이드 만큼이나 혁명적인 것이었고, 그들의 업적과 마찬가지로 이사도라 던컨의 예술은 당대의 무용무대를 뒤흔든 거센 회오리바람이었다. 또한 그녀는 동시대에 활동한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후대의 여러 예술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이사도라 던컨의 자서전을 옮긴이는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으로써 무용무대와 무용가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써 그녀를 ‘불멸의 자유인 이사도라’라고 칭하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19세기 세기말을 넘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인류는 그 이전시기에는 상상할수도 없었던 많은 변화를 겪었다. 정치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예술과 문화 분야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스스로 쌓아 올린것을 허물기도 하고, 때로는 완전히 변형시켜 버리기도 했다. 오늘날에야 자고 나면 세상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시대이지만 19세기 이전 세상은 비교적 완만히 흘러가며 앞날을 예측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말을 거쳐 20세기가 시작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전 인류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 버린 제1차 세계대전, 극심한 경제적 계급 분화, 사회주의의 대두와 소련의 등장, 이런 정치적 급변은 예전에 믿어왔던 것들을 믿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새로운 것이 요구되었고 새로운 시도가 싹트는 시기였다. 이 시기 무용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시작됐다. 이전에는 발레리나가 짜여지고 정형화된 동작을 고통스럽게 표현하던 것과는 달리 춤추는 사람 스스로의 내면을 표현하고 관객과 공감하는 새로운 무용이 나타난 것이다. 그 새로운 무용을 만들어 낸 사람이 바로 이사도라 던컨이었다.
내 인생은 오직 두 개의 동기를 가지고 있다. 사랑과 예술 이 두가지다. 이들은 끊임없이 싸운다. 왜냐하면, 사랑도 예술도 나의 전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사도라 던컨의 삶은 자신의 말대로 치열하게 자신을 요구한 ‘사랑’과 예술‘에 생명의 전부를 바쳐진 생애였다. 1877년 5월 26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그의 이야기, 네 아이를 데리고 이혼한 그의 어머니는 그녀를 임신했을 때 어려운 가정형편과 정신적 고통으로 귤과 샴페인만 먹었다고 한다. 그의 자서전에 던컨은 이렇게 썼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부터 나는 춤췄다. 귤과 샴페인은 아프로디테의 음식이었으므로... 삼류 무용수로 살다 22세때 가축 수송선을 타고 유럽으로 건너간 그녀에겐 새 세상이 열렸다. 엄격한 격식에 따른 전통발레에 익숙해 있던 유럽에서 그녀의 춤은 충격이었다. 님프처럼 거의 옷을 걸치지 않고 맨발로 춤을 추는 그녀를 보려고 군중이 쇄도했다.
던컨이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에게 “당신의 머리와 나의 몸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면 완벽하겠죠?”하고 말을 건넸다가 “그 반대의 경우는 생각해 보셨나요?”하고 면박을 당했다는 일화는 멍청한 미인과 못생긴 천재에 대한 유머로 오늘날까지 회자된다. 던컨은 멍청한 미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하나의 단순한 동작을 만들기 위해, 수년간의 노동과 조사를 거듭했다. 스스로 ‘내 춤의 스승은 니체’라고 말하며 인간의 영혼을 가장 자유롭게 표현하는 고도의 예술로 춤을 확립했다. 그녀는 사랑에서도 그의 전부를 던지는 정열적인 사랑을 추구했지만 행복하지는 못했다. 강열한 그의 개성이 춤과 사랑 두 가지 모두를 흡수하지는 못했나보다. 그래서 그녀는 독신을 고수하면서도 연인들과의 사이에서 두 아이들을 두었지만 1913년 보모와 함께 나들이 가서 교통사고로 동시에 잃어버리는 비극도 맞았다. 슬픔을 딛고 일어선 그녀는 러시아에서 15년 연하인 시인 세르게이 예세닌을 만나 1922년 결혼했다. 그러나 3년 뒤 예세닌마저도 권총 자살로 던컨의 곁을 떠났다. 지상의 삶과 끝내 화합할 수 없었던 이 “아프로디테”는 죽음까지 극적이다. 1927년 드라이브를 하려고 친구의 스포츠카에 탔다가 목 뒤로 넘긴 빨간 스카프의 끝자락이 차바퀴에 끼는 바람에 목이 졸려 숨졌다.
『나의 예술과 사랑』이라는 이사도라의 자서전을 읽고 보니, 어쩌면 그녀의 그런 희한한 죽음조차도 그녀의 색다른 삶의 일부분으로서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만큼 이사도라의 인생은 드라마틱하다. 대개의 이름난 예술가들이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던 것처럼 이사도라 던컨의 일생도 마치 한편의 소설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그녀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비단 그녀의 굴곡 많았던 삶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사람의 몸 즉, 육체를 보는 전혀 새로운 시선을 가지고 무용을 창조했다. 그 시대만 해도 무용은 부르주아를 위한 일종의 아름다움의 전시에 불과했다. 거기에 반기를 든 이사도라는 비인간적이고 혹독한 훈련을 강요하는 발레가 최고의 무용으로 여겨지던 시대의 낡은 관념을 깨고 자유무용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해낸 것이다. 그녀는 육체를 춤추기 위한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영혼이 깃들여있는 아름다움 그 자체로 승격시켰으며,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한 무용가였다. 지금 우리가 대하는 현대 무용은 그녀의 자유로운 정신에 덧붙여진 부단한 노력의 소산인 것이다.
-권력과 리더십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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