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일본 문화 이해의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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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9 / 201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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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일본 문화 이해의 고전 ‘국화와 칼’
우린 일본과 관련된 많은 일화를 접할 수 있다. 그 중엔 우리의 의식구조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는 반면 세계 2차 대전 후의 서구인들의 의식구조와 세계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들이 많다. 아마도 서구인들은 같은 동양 문화권에 속하는 우리나라보다 더욱 일본 문화와 일본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루스 베네딕트는 세계 2차 대전이라는 상황으로 인해 일본에 가보지도 못하고 그저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일본인들의 증언과 기록 들을 토대로 일본 문화와 일본인의 사고방식에 대하여 상당히 설득력있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본인들의 문화와 사고를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는 각자 알맞은 자리 매김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은 그 어느 나라보다 계층 구조적 문화와 삶에 분명한 나라이다. 메이지 유신으로 계급은 완전히 타파되었지만 일본은 분명 계급, 성별, 연령, 세대 등 여러 면에서 분명한 계층 구조를 가지고 있고 이를 엄격히 추구하고 있으며 이에서 벗어나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무사는 다이묘(大名:영주), 쇼군(將軍:막부의 지도자)에게 예를 다하고 충성을 다하며, 여자는 남자에게 깍뜻한 예의를 지키고, 어린 사람은 윗사람에게 예를 다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모습이나 당연히 서구인들에게는 연구가치가 있는 대목이다.
근대 일본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메이지 유신의 과정과 특징을 살펴보는 것이다. 메이지 유신은 원래 쇼군 중심의 권력체제를 벗어나 왕정으로의 복고, 쇄국이라는 보수 회귀적 혁명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그 반대였다. 하층 무사 계급과 상인계급의 결탁 속에 키워져온 새로운 정치가들은 이전 일본 땅에서 도저히 본 적이 없는 엄청난 개혁을 지속적으로 이뤄냈다. 모든 계급적 차별을 철폐했고 천민 해방과 같은 파격적인 과업들을 진행시켰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은 근본적으로 일본 사회를 지탱해온 계층 구조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쇼군을 제거하긴 했지만 유신은 천황 중심제로의 복고가 그 기본목표였다. 그리고 정치와 종교 등 거의 모든 면을 개혁했지만 다시 만든 것은 아니었다. 천황 중심적인 국가 관리의 영역과 기존 세력이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으로 정치, 사회 구조를 이원화해 여전히 사람들이 자신들의 알맞은 위치와 자리를 인식하며 살도록 했다. 종교적으로는 신도(神道)에 충성하도록 해 종교에 있어서의 국가적 영역을 설정하고 그 이외의 종교에 대해서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자치적 역할을 인정해 중앙의 힘과 지방의 힘이 미치는 영역을 구분했다. 산업에서도 국가는 중공업 중심으로 개발을 주도했고 경공업은 순수하게 국민들의 영역이었다. 개혁을 해도 모든 것은 나름대로의 알맞은 자리매김이 있었다.
일본인들의 삶과 사고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무보다는 의리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의무가 절대적이고 선천적인 성격을 갖는다면 의리는 훨씬 사회적이며 후천적이다. 그리고 천황과 부모, 스승에게 하듯이 자발적인 것과는 달리 강제적 성격이 강하다. 의리와 관련해 꼭 알아두어야 할 사항은 일본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로부터 의리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면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일본인들에게는 내가 어떻게 하느냐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자기 의리를 다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나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의 눈에 대한 의식. 이것이 일본인의 사고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여기까지 오게 되면 우리는 일본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타인의 존경과 인정임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패전 후에 모든 이들의 예상을 깨고 일본인들이 미국을 비롯한 승전국에 그렇게 호의적으로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관련된다. 그들은 그들의 확신에 기초해 전쟁을 한 것이라기보다는 이 전쟁이 다른 나라의 존경과 인정을 받을 수 길이라 믿어 전쟁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그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일은 선진국을 따라 평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기에 이전과는 다른 삶을 과감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베네딕트의 분석은 어딘지 단순화된 면이 많다. 다른 나라의 존경과 인정을 위해 전쟁을 한다는 나라가 그렇게 무분별한 학살과 만행을 저지를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마도 베네딕트는 이런 일제의 만행과 학살, 압제에 대한 자료는 잘 살펴보지 못한 상태에서 글을 쓴 것 같다.
일본인들의 세계관에서 아주 독특한 것으로 선과 악의 관념도 빠질 수 없다. 일본인을 성악설과 성선설 둘 중 하나에 놓으라고 한다면 성선설 위에 놓아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선천적으로 악한 인간은 없다. 절대적인 악이라는 관념도 없다. 단지 인간은 자기수양을 게을리 하거나 자제력을 잃어 더러워질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더러워진 것은 언제나 노력에 의해 선해질 수 있다. 보통 서구에서는 물질과 정신, 육체와 영, 천상과 지상의 이분법적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이러한 대립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들은 욕심과 욕구 등이 서구처럼 악한 것으로 취급되지는 않는다. 단지 즐겁게 누리되 훈련을 통해 절제하고 어떤 한계를 두고 이를 지키는 것을 중요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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