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전상인 편의점 사회학 - 소비주의,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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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인 ‘편의점 사회학’
언제부터인가 편의점은 우리 주변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한 동네 한 거리에만 해도 2~3개의 편의점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사람 -나를 포함하여- 들이 하루에 몇 번씩 편의점을 들락거린다. 이렇게 편의점은 우리 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한 생활공간이 되었고 ‘편의점 사회학’이라는 책은 사회학도인 나에게 흥미를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우선 책의 내용을 살펴보자면 작가는 소비주의, 근대 합리주의, 글로컬리제이션, 신종 도시 인프라, 사회 양극화와의 공존의 측면에 맞추어 우리 사회에서의 편의점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였다. 위의 내용처럼 여러 가지 측면이 있었지만 나는 ‘사회 양극화와의 공존’이라는 부분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고 읽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흥미로웠으며 즐거웠던 것 같아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심층적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우리 사회는 아주 빠른 속도로 이루어진 자본주의로 인해 갑-을 관계나 사회 양극화가 매우 심각하다고 생각해 왔던 나에게 편의점이 사회 양극화와 공존한다는 이야기가 매우 참신하게 들렸다. ‘88만 원 세대의 밥집’이라는 소주제에서는 편의점이 2~30대의 밥집이 되어가는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88만원을 벌어야 하는 이들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인생을 살아가야한다. 이런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사회적 양극화의 해소 현장이 편의점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삼각김밥(800원), 컵라면(1,000원)으로 끼니를 해결해나가며 생을 편의점에 맡겨 살아간다. 또, 담배가 이들 소비의 대부분으로 부상함과 동시에 최근 이루어진 담배 값 인상이 편의점 인생의 88만원 세대에게 엄청난 타격을 불러옴을 깨닫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식으로 사회 양극화가 심화 되는데 88만원 세대의 프레임이 깨지지 않는 이유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작가는 이를 ‘혁명과 일탈’이라는 소주제에서 어떻게 이러한 프레임이 유지 될 수 있는 지를 설명한다. 이에 대한 원인으로 우리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인지하고 이를 변혁하고자 하는 집합적 노력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고 있다는 점을 든다. 이 과정에서 편의점은 어떤 역할을 하기에 구조적 모순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고 ‘갑-을 관계’, ‘88만원 세대’ 등의 프레임을 오히려 단단하게 하는가? 이는 ‘소비 조작의 관료 사회’로 설명이 되는데, 편의점의 소비주의, 소비의 심미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을 소비로 탕진하면서 삶의 의미를 사소한 데서 찾게 만든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이러면서 사람들은 어떠한 의심도 없이 편의점의 삶에 길들여지고 체제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간다. 이에 나 역시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도 을중의 을에 속하는 평범한 시민이고 수백 개의 선택권이 주어진 편의점에서 소비의 심미화에 빠질 수밖에 없는 시민임은 쉽게 부정 할 수 없었다.
이어서 흥미로웠던 내용은 베버와 맑스의 비교 내용이었다. 편의점을 통하여 ‘계층’과 ‘계급’을 설명한 부분에서 나는 정말 기가 막힌 사회학적인 편의점 분석이라는 생각을 했다. 작가는 ‘생산’의 관점에서 계급 문제로 사회적 불평등을 인식했던 맑스의 한계를 지적했던 베버를 들어, 같은 계습 내에서도 ‘소비’ 양식에 따라 사회적 불평등이 다양하게 분화한다고 주장함을 분석했다. 맑스가 말했던 계급간의 투쟁에 의한 계급혁명은 편의점 안에서 이루어 질 수 없었던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소비 조작의 관료 사회’와 아주 비슷한 맥락에서, 편의점 안에서 개인들이 자율적인 판단과 선택을 통해 자신의 생애를 나름대로 의미 있게 재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러면서 계급은 점차 상쇄하고 중화하며 오히려 계층이라는 부분이 부각되어 한 계층 안에서 아주 다양한 선택들이 가지를 뻗게 되어 동일한 계급적 위치에 속하더라도 편의점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적 취향의 분화에 의해 사회적 약자들의 단결은 점차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나는 편의점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 편의점은 중산층이나 경제적 약자에게 적당한 안식처가 되어준다. 그리고 이들은 그저 한 끼는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 넣고 어떠한 투쟁도, 어떠한 혁명도 할 수 없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한 끼는 먹을 수 있다는 생각, 이렇게 세상의 ‘을’들은 빠져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지고 우리는 한 평생 사회 불평등의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우리는 이 프레임을 깨부수고 나와야 한다.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겠지만 ‘갑’은 이미 ‘소비 조작의 관료 사회’와 같은 내용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모든 사회가 그들의 조작 하에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한다. 어장 속의 물고기들에게 너무 부족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너무 많지도 않은 떡밥을 던져주며 생을 부지시키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혁명적 발상으로 이를 탈피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단, 이런 혁명이 맑스가 주장했던 폭력적 계급혁명이 전부는 아니다. 우선 국가는 복지혜택을 늘리고 보편적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그 국민은 이에 책임을 느끼며 진취적인 자세로 경제 민주적 혁명에 동참해야 한다. 이에 대한 노력의 예로 공부를 열심히 한다든지, 창업을 한다든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혹자는 창업이라는 것이 편의점처럼 다시 슈퍼갑-을 관계로 연결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여기서 큰 국가의 역할이 전제로 있기 때문에 단적으로 창업이 해답이 될 수 있다는 데에 쉽게 비판을 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편의점은 이렇게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많은 문제가 존재하고 많은 장점 역시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존재한다. 그럼에도 나는 편의점의 수를 축소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는 편의점 인생을 깨부수고 나와야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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