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소설 칼의 노래 를 읽고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5.03.29 / 2015.03.29
  • 5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9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본문내용
소설 ‘칼의 노래’를 읽고
이순신 장군의 칼에 쓰여진 글로써 染자가 장군의 공업적인 이미지를 나타내준다. 소설‘ 칼의 노래’는 이순신의 백의종군을 시작할 무렵부터 그가 물러가는 적의 전면에 자신의 육신을 내던져 전사하기까지 이순신의 삶과 임진왜란 당대의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순신의 조정능멸과 임금기만, 조정의 기동출격 명령을 따르지 않음에 대해 의금부에 압송되러 온갖 문초를 받던 도중 아군의 침몰로 인한 정세불안으로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명하게 된다. 도원수 권률이 이순신을 찾아와 전쟁의 승리를 당부하였으며 임금 역시 이순신에게 전쟁의 종결을 부탁하는 글을 보내기 일쑤였다. 왜군의 침입으로 백성들은 피난길에 올랐으며 미처 피난을 못한 백성들은 왜군에게 죽음을 면하지 못하였다. 잔존해 있던 백성들은 황폐해진 전쟁의 흔적으로 생활의 궁핍함과 전쟁의 포로가 되기 쉬웠다. 하지만 관리들은 부패해져만 가고 피난길에는 늘 조정이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임진왜란 당대 백성들 사이에는 역질 등의 병이 전염되어 갔으며 지방 관리의 횡포로 백성들의 삶은 점점 암흑화 되어갔다. 이에 이순신이 군사력을 모으고 전쟁준비를 하면서 안전한 지역이라 생각되는 백성들이 하나둘씩 모이더니 이순신의 수영은 무기제조창과 전쟁지휘소외에 백성들의 피난처가 되었던 것이다. 이순신은 전선 12척을 시작으로 관군을 모으고 무기를 제조하여 전쟁준비를 확실히 하였다. 명량해협에서 이순신의 전술은 적은 병력으로 밀물과 썰물을 이용하여 적의 적선 133여척을 완파하여 전쟁의 승리를 하게 되었다. 이순신의 전술은 현장 지휘관으로서의 판단을 중요시하여 조정의 무분별한 전술을 일정 무시하기도 했다. 해전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육상지역에서는 왜군이 지속적으로 북으로 전진하여 끝내 한양이 무너지고 임금은 북으로 도피를 하여야만 갔다. 이에 명나라 천군이 등장하여 조선지역 전체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조정에서 임금은 전쟁의 종결을 바라는 염원의 서찰을 이순신에게 전달하였으며 이순신은 ‘ 신의 몸이 아직 살아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는 문구로 임금을 안정시키고 자신은 더욱 자신의 칼을 갈았다. 이순신은 적선에서 얻은 군량과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왜군 역시 적선을 증가시키며 해상육상을 점령하면서 전쟁의 기미를 내비치게 된다. 전쟁에 명나라가 투입되면서 왜군은 남쪽으로 후퇴하게 되었으며 조정은 강화도에 명나라를 입성시키고 한영을 되찾게 된다. 왜군은 남해안 일대 육지와 해상에 집중되었으며 이순신에게는 더욱더 전쟁을 조여오게 되었다. 이순신은 목수들을 불러 함선제작을 하게 되었고 숙영지를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농민들의 농사일에 전념하게 하여 전시 중 5일장도 열리게 되었다. 물론 전쟁 중이었지만 명과 일본의 강화조약으로 잠시 소강상태였기에 가능했다. 왜군은 다시금 전쟁에 박차를 가하였으나 통치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으로 사망하게 되자 왜군은 남해안으로 퇴각하고 철수를 하려고 하였다. 전쟁의 종결이 다가오고 왜군의 철수준비는 한창이었다. 조정과 명나라도 이에 대해 전쟁의 종결의 의미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더 이상 전쟁을 요구하지 않았으나 이순신은 달랐다. 이순신은 전쟁종료를 원하는 것보다 자신이 반드시 왜군을 전부 함락시키겠다는 의지로 마지막 전쟁을 준비한다. 그리하여 이순신은 명나라 진린장군의 엄호하에 자신의 52척의 함대를 이끌고 노량해협에 도달하여 철수를 하고 있는 왜군을 모조리 함락시키고 만다. 철수통로를 겨우 개척한 500여척의 적선 가운데 50여척만이 철수를 하였고 나머지 450여척은 모두 함락되었던 것이다. 학익진과 일자진 등 전술에 타고난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자신의 죽음으로 나라를 구한 것이다. 이순신은 적의 총탄에 맞고도 자신의 죽음보다는 전쟁의 승리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이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이 세상 전체를 겨누는 칼, 한 남자의 일인 대 만인의 싸움에 뒤엉킨 세상, 전쟁과 죽음, 칼을 든 자의 외로움 등 이순신의 칼은 소설에서 인문주의로 치장되기를 원하지 않는 칼이었고 정치적 대안을 설정하지 않는 칼이었다. 그의 칼은 다만 조국의 남쪽 바다를 적의 피로 ‘물들이기’ 위한 칼이었건 것이다. 그의 칼은 칼로서 순결하고, 이 한없는 단순성이야말로 그의 칼의 무서움이고 그의 생애의 비극이었다. 이순신은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토록 자연사를 바랐던 그에게 죽음은 절벽처럼 확실했다. 그는 정치에 아둔하였으나 적에게는 분명한 무인이었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적과 무수한 개별적인 죽음 앞에서 그는 다만 무력할 수 있는 무인이기를 바란다고 되뇌인다. 혈육과 백성, 여자와 부하들을 향한 가여워 하는 마음과 임금을 정점으로 하는 사직이라는 헛것의 무 내용 앞에서 이순신은 운명에 대한 전율에 식은땀을 흘리며 죽음을 향해 돌진한다. 절망을 긍정하는 죽음의 힘으로 무의미와 언어, 물살과 피의 아수라를 돌파하는 한 고독한 무인의 실존적 고투는 서럽도록 아름답다.
이순신은 이정의 네 아들 중 셋째이며 서울 건천동 태생이다. 이순신은 문반 가문으로 이돈수의 12대손이 된다. 이순신이 태어날 쯤에 할아버지의 일로 인해 가세가 많이 기울고 이순신은 문반 집안에도 불구하고 무인전발시험을 치르고 관직을 얻게 된다. 이순신이 조산보만호가 되었던 그해에 중앙에서 국방강화를 위해 군사를 더욱 더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그는 적은 군사로 야인들의 침입을 막을 수 없다는 이유로 군사를 보내지 않았다. 이 일로 그는 조정의 문책을 받게 되었고 급기야 삭직되어 백의종군을 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 후 다시 전라도 관찰사 이광에 발탁되어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여 왜군의 침입에 대비하여 전선을 제조하고 군비를 확충하였고 원균의 급보로 전쟁이 발발되어 이순신은 일단 임전태세를 갖춘후 옥포에서 첫 해전을 하였고 다음날 고성의 적진포에서 전추를 아고 사천에서 처음으로 거북선을 진출시킨 가운데 왜군을 전멸하면서 왼쪽 어깨에 총상을 입기도 하였다. 이후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한 이순신은 1593년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한산도에 본영을 서리하고 왜군을 수차례 격멸하여 그들의 서해안 진출을 완전히 봉쇄하였다. 그 후 3년 동안 명과 일본의 강화회담으로 전쟁의 소강상태에 이순신은 군사훈련, 군비확충, 피난민 생업보장, 산업장려들에 주력하여 일본군의 재침에 대비하였다. 강화회담의 결렬로 일본군이 다시 재침하였으나 이순신은 원균의 상소와 서인세력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히는 몸이 되고 만다. 당이 영의정인 유성룡과 이원익 등의 상소에도 불구하고 선조는 이순신을 삭직시켜 백의봉군을 하게 되었다. 이순신이 백의종군하자 삼도수군통제사는 원균이 맡았다. 하지만 전술이 뛰어나지 않았던 원균은 수군과 함대를 모두 잃고 자신도 전사하게 된다. 이에 선조는 다시 이순신을 통제사로 임명하게 도니다. 이에 이순신은 12척의 함대로 명량해협에서 적함 133척을 맞아 싸우고 백성을 모집하고 군량미를 위한 둔전 경작을 하며 다시 전쟁에 대비하였다. 이순신이 병영에 돌아오자 조선 수군의 주위에는 장병들이 모여들고 난민들도 줄을 지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군진의 위용은 전에 비해 10배를 능가해고 단시일에 제해권을 되찾고 수군을 회복할 수 있었다. 1598년 11월 퇴로를 찾던 왜군은 드디어 500여척의 함대를 이끌고 노량으로 밀려나오면서 적은 겨우 50여척만이 퇴로를 열고 도주하는데 성공할 뿐 나머지 450여 척의 적선들은 전부 몰살당하게 되었다.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이었다.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자신의 나이 54세에 왜군의 유탄에 맞아 생을 마감하게 된다.
소설에서 이순신이 백의종군 후에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어 가는 길에 전쟁의 흉터가 심각하게 잔존해 있음을 발견한다. 전쟁은 백성들의 삶의 터전인 농토를 짓밟아버렸으며 아낙네, 어린이, 늙은이 할 것 없이 모조리 죽여서 자신들의 위대함을 느끼곤 했다. 심지어 백성들의 귀를 잘라서 본토에 보내 자신들의 업적에 보탬이 되도록 하였으며 현재에도 일본에는 그 당시 귀들을 모아 무덤을 만든 것이 잔존해 있다고 한다. 전쟁으로 농촌은 급격히 몰락해 갔으며 하루 한끼 식량조차 없었다. 도적질과 어린아이를 먹는 등 농촌사회 내에서도 반인륜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6년간의 전쟁 내내 농촌사회가 피폐해진 것은 아니었다.
즉 명과 왜군이 강화조약을 협상하는 전쟁의 소강상태에서 이순신이 거쳐하고 있던 숙영지부근에서는 다시금 농업의 부활이 일어나고 있었다. 정유년 가을 물 건너 진도에서는 아직도 맑은 땅이 있었고 백성과 농토가 온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도로 흘러들어온 피난민들은 섬의 서쪽 연안을 따라 움막을 짓고 모여 살았다. 원주민들이 피난민들에게 마을 앞 어장을 나누어주고 묵은 밭을 내주었다. 피난민이 들어간 지역은 누런 땅이 어느새 푸르게 바뀌었다. 겨울에도 무, 배추, 대파가 새파랗게 들을 덮었다. 보름달이 뜨는 저녁이면 진도 여자들이 바닷가 언덕에 모여서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춤추고 뛰며 노래했다. 스스로 살아가는 백성들의 생명이 모질고도 신기하게 느껴져 칼 찬 이순신은 쑥스러워 했다. 이처럼 이순신은 피난민의 생업보장과 산업육성에도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하지만 다시금 전쟁이 발발하고 농촌은 피폐해지고 농토로 돌아온 피난민들이 다시 흩어지고 늦여름에도 그들이 버리고 떠난 논밭은 그대로 바랬다. 가을에 적들은 그 수확을 차지할 것이다.
국토의 삼분의 이가 황무지로 변하였다. 이는 극심한 인구의 이동과 감소에 따른 것이다. 평안도 북쪽과 함경도, 강원도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거의 자기 고장을 떠나 피난을 다녔다. 이순신이 잠시 전라우수영 근방에 주둔했을 무렵 피난 다니는 배 300여 척이 몰려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산골에는 유랑민이 더 많았다. 이들은 자기 고장에서 농사를 짓지 못하고 떠돌이생활을 했다. 조정에서는 일이 있을 때마다 백성들에게서 양곡을 염출했고 일본군과 명군 가릴 것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양곡을 약탈했다. 명군은 압록강을 건너오자마자 관아와 민간의 양곡과 마소를 마구 거두어들였다. 심지어 농사지을 소마저 잡아먹었다.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보니 곡가가 뛰어올라 다른 물건 값이 땅에 떨어졌다. 지봉유설에 따르면 1593년의 경우 무명 한 필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바른글 좋은글을 읽고 줄거리 요약 및 감상문, 느낀점, 독후감, 나의 견해, 나의 소감, 시사점, 총체적 조사분석
  • 를 써야 한다면 동의어(同義語)로 바꾸는 게 좋다.․ 다음 문장에서도 앞 문장에서 썼던 말은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같은 단어뿐만 아니라 같은 어구도 마찬가지다.․ 표현이 달라도 같은 내용, 같은 의미의 말을 자꾸하면 잔소리가 된다.가) 같은 말 반복 사용의 예외․ 소위 강조를 위한 수사(修辭, rhetoric)가 바로 그것이다. 같은 말을 되풀이함으 로써 강조의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예외 「칼의 노래」가 있다.나) 명문과 같은 말 반복 사용․

  • [독서감상문]독후감상문모음
  • 를 벌여 화합을 다진다든지 하는 일들을 시행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는, 이 글에서는 이런 사람들, 즉, 이기적인 마음에 사로잡혀서 물질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급변하는 시대에 주체성을 상실해버렸으며 유리한 편에 붙어 빌어먹는, 비굴한 현대 자본주의 지식인의 모습을 이인국이라는 인물로 비유하여 비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쓴 작가는 이러한 사람들이 사회에 끼치는 폐단을 꼬집어서 풍자적으로 구성하였다. 이 글을 읽고 나

  • 독후감 모음집[A+, 98권] -] 작가의 의도 분석, Summary, 느낀점, 자아성찰(교훈) 및 시사점, 적용 계획, 인상깊었던 문장 등
  • 칼럼리스트, 방송 토론 진행자, 국회의원, 장관 등 여러 직업을 거쳤다. 지금은 역사와 문화 관련 에세이를 쓰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예전에는 5년 넘게 같은 일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작가 말고 다른 직업은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보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며,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시나 소설이 아니라 논리적 글쓰기를 잘하고자 하는 사람

  • 독후감 모음집(A+ 자료, 102권) -] 작가의 의도 분석, Summary, 느낀점, 자아성찰(교훈) 및 시사점, 적용 계획, 인상깊었던 문장 등
  • 독후감 모음집(102권)순서목 차순서목 차굿라이프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대한민국이 우리에게소중한 이유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도시의 패배살인자의 기억법말투 하나 바꿨을 뿐인데인어가 잠든 집조선 직장인 열전우아한 관찰주의자지혜의 기술지적자본론(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는 미래)하버드 새벽 4시 반철학의 힘아주 작은 습관의 힘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태도의 품격가면 사축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최

  • [서평] 고등학생이 쓴 독후감 40개
  • 고등학생이 쓴 독후감 40개 3목차1. 세계사 편력2. 수학콘서트3. 원미동 사람들4. 아프니까 청춘이다5. 암호낙서의 비밀6.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7. 에밀8. 우주전쟁9. 장정일의 공부10. 젊은 날의 초상11. 정의란 무엇인가12. 광장13. 뇌 과학14. 그대를 사랑합니다15. 나무16. 동사형 인간17. 무지가 만든 원자력 반대 사상18. 조선 과학수사대, 별순검19. 세계를 가슴에 품어라20. 성냥팔이 소녀21. 오바마처럼 연설하고 오프라처럼 대화하라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