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 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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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포레스트 검프(Foest Gump)」를 보고
인터넷 상에서 ‘명작 영화를 추천해 주세요.’라는 글을 보면 꼭 빠지지 않고 올라왔던 작품, 즉 불후의 명작이라고도 불리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포레스트 검프’였다. 톰 행크스 주연의 1994년 작으로, 7년 전에 ‘장애’를 테마로 다룬 영화가 명작으로 뽑힌다는 사실에 꼭 보겠다는 생각을 한지가 무척이나 오래전의 일 이었었지만, 이번 과제를 계기로 드디어(?)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바보는 그저 지능이 조금 낮은 것뿐이에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맴돌았던 말이다. 옛 말에도 ‘바보와 천재는 그저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라는 말이 실제로 틀리지 않은 것임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영화의 도입부는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이하 포레스트)’가 정류장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포레스트는 어릴 적부터 신체적 장애와 자폐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때문인지, 포레스트의 어머니는 포레스트가 사회 속에서 장애로 인해 힘든 삶을 겪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 강인한 아이로 키운다. 후에 포레스트가 ‘바보는 그저 지능이 조금 낮은 것뿐입니다.’라는 입버릇을 가지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어머니의 강인함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던 것이었다.
포레스트의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미식축구부에 들어간 것도, 베트남 전쟁에서 살아남고 무공훈장을 받은 것도, 후에 재능을 발견해 탁구 국가대표 선수로 우승을 한 것도, 새우 잡이와 동료의 투자로 백만장자가 된 것도, 무턱 대고 뛴 미국 국토 종주로 인해 유명인사가 된 것도, 행운의 연속 이였던 인생인 것이었다. 이런 사건 하나하나를 겪을 때마다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마냥 탐탁지 많은 않았다. 그는 거의 평생을 ‘바보’라는 꼬리를 달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과연 ‘바보’였을까. 포레스트와 비교하기 위해 설정해 놓은 인물(비장애인)이, 그의 첫 번째 친구이자, 첫사랑인 ‘제니’였었는데, 이렇게 비교를 하고 영화를 감상하면 시각이 조금 달라진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지만, 일생이 남부럽지 않은 행운의 연속인 포레스트와, 장애는 없지만,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라기 시작했기 때문인지, 점점 사회의 어두운 면에 들어서게 되어 힘들고 지친 삶을 살아가는 제니와의 차이는 너무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렇게 놓고 보았을 때,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마냥 ‘불운’이며 비장애가 ‘정상’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정류장을 스쳐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을 마무리 지어가며, 영화는 끝을 맺어간다. 서로 다른 방향의 삶을 살아가던 포레스트는 제니와 결혼식을 올리게 되지만, 결국엔 불치병으로 죽게 된 제니의 무덤을 뒤로하고,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1994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2011년인 지금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것이 다소 씁쓸하게 느껴졌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은 역시, 장애우를 바라보는 비장애인들의 편견 실린 시선이 가장 큰 문제다. 극중에서도, 정류장에 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포레스트를 ‘허풍이 지나친 바보’라고 생각하며 무시할 수 있었던 점이 참 씁쓸했다. 왜 그들을 장애인이라는 점과 더불어 ‘무능력하고 하등한 존재’들로 간주하는 것일까. 이는 명백하게 잘못된 생각이다. 어쩌면 그들은 장애라는 단점을 가졌음에도, 비장애인들 보다 더 멋지고 뛰어난 삶을 살 수도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장애우들이 비장애인들을 도와 줄 수도 있다. 만일 극중 포레스트의 군선임으로 나온 ‘댄’이 후에 포레스트를 다시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는 그저 불편한 두 다리를 평생의 단점으로 끌어안은 채 죽어야 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레스트가 그랬던 그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었고, 결과적으로 ‘댄’은 전역 후에 더 멋진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 국토 종주를 하는 동안에도 많은 이들을 도와주었던 것이다.
625전쟁에서 약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어느덧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어 ‘선진국’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의식수준은 한참은 모자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장애우가 주변으로 온다는 소식에 눈에 핏발을 세우며 반대하고 있을 우리나라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노라면 참 슬프기가 그지없다. 이번 학기에 ‘특수교육학 개론’수업을 듣는 중에도, 기관 조사 과제로 전남대학교 장애인 지원센터에 갔었을 때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의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애우들을,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편견을 실어 바라보아야 할 것이 아니라, 장애라는 조금 특별한 무언가를 가진 이들로 바라보는 게 올바르지 않을까? 또, 이러한 의식수준의 개선과 더불어 중요시 되어야 할 것이 국가차원의 지원이라고 본다. 제발 쓸데없는 지나친 수준의 조경 사업이나, 대기업 살리려 돈을 마구 퍼준다던가, 국고를 털어서 사저매입을 한다던가, 시청률 나오지도 않는 채널을 새로 만든다거나, 할 필요도 없는 삽질 등의 헛된 짓 좀 그만 하고, 어려운 이들과 함께 더불어 나감으로써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대한민국으로 나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부디, ‘내가 꿈꾸는 대한민국이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 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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