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 - 문인 답사 보고서 - 시인 -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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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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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답사보고서- 시인 <구상>
<목 차>
1. 구상 시인의 연보
2. 구상 시인의 생애
3. 구상 시인의 작품
4. 구상문학관
5. 느낀점
1. 구상시인의 연보
출생
1919년 9월 16일 서울 종로구 이화동 642
거주
1923년 함경남도 문천군 덕원면 어운리로 이주
1953년 왜관 정착
1974년 서울 이사
작고
2004년 5월 11일
본적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789
학력
1938년 원산 덕원 성베네딕도 수도원 부설 신학교 중등과 수료
1941년 일본대학 전문부 종교과 졸업
경력
언론계
1942년~1945년 북선 매일신문사 기자
1948년~1950년 연합신문사 문화부장
1950년~1953년 국방부 기관지 승리일보사 주간
1953년~1957년 영남일보사 주필 겸 편집국장
1961년~1965년 경향신문사 논설위원 겸 동경지국장
교육계
1952년~1956년 효성여자대학교 문리과대학 부교수
1956년~1958년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강사
1960년~1961년 서강대학교 문리과 대학 전임강사
1970년~1974년 하와이 대학교 극동어문학과 조교수
1973년~1975년 카톨릭대학 신학부 대학원 강사
1982년~1983년 하와이 대학교 부교수
1985년~1986년 하와이 대학교 부설 동서 문화 연구소 예우작가
1976년~1999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대우교수
문화계
1979년~2004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1986년 제 2차 아세아시인회의 서울대회장
1991년 세계 시인 대회 명예대회장
1993년 제 5차 아세아 시인회의 서울대회장
1991년~2004년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고문
2001년~2004년 한국 문인협회 고문
상훈
1955년 금성화랑 무공훈장
1957년 서울시 문화상
1970년 국민훈장 동백장
1980년 대한민국 문학상 본상
1993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2004년 금관문화훈장
2. 구상시인의 생애
출생과 성장
구상 시인은 아버지가 쉰, 어머니(이정자)가 마흔넷의 나이였던 1919년에 태어났다. 태어날 때 집에서 지어 준 이름은 구상준이다. 그런데 「상」이라는 외자로 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없고,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돌림자인 ‘준’ 자를 떼고 불렀기 때문이다. 구상 시인이 태어난 곳은 서울 이화동이다. 그러나 그는 네 살 때 북한 함경도 지구 선교를 맡게 된 독일계 가톨릭 성베네딕도 수도원의 교육사업을 위촉받은 아버지를 따라 서울서 원산시 근교인 덕원이라는 곳으로 가서 자랐다. 부친은 원산 교구에 가서 해성학원을 설립하고 원장을 지내셨다. 그때 생활의 우스운 예를 하나 들면, 여덟 살에 보통 학교(현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등교 첫날 그의 옷차림이 전교 어린이의 놀림감이 되고 말았다. 소학교생 양복에다 란도 셀을 메고 갔는데, 이것이 아이들의 눈에는 우체부로 보여 단 하루 만에 그의 별호가 되었다. 그래서 그 이튿날부터는 한복차림으로 나서는데 어머니가 우겨서 목세루 두루마기를 입고 책보를 들고 갔더니 이번에는 나이 어린 신랑 같다고 알 서방이라고 놀려댔다.
주의자 구상
신학교 중등과 시절과 대학시절
구상 시인은 열다섯에 가톨릭 신부가 되고자 베네딕도 수도원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3년 만에 환속을 했고, 일반 중학으로 진학했으나 퇴학당했다. 마을에서는 주의자가 되었다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당시 속칭 주의자란 말은 사상가라는 뜻보다는 그 사람 버렸다는 뜻이 농후한 것이었다. 이쯤 되고 보니 구상 시인은 몸 둘 곳도 없어 고향을 떠나 노동판 인부노릇도 하고, 야학당 지도도 하다가 마침내 먼 유랑의 길을 떠난 것이 동경이다. 동경으로 간 구상 시인은 처음 몇 달 동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급 노동자로, 또는 연필공장 직공으로 나날을 보내다가 선배의 권유로 일본대학 종교과와 명치대학 문예과에 시험을 쳐 두 군데 모두 합격하였는데, 그 가운데 선택한 것이 종교과였다.
아버지의 유훈과 형의 교훈
구상 시인의 한평생 삶의 지칭이 되고 좌우명이 된 말씀이 아버지의 유훈과 형의 교훈이다.
-아버지의 유훈
아버지는 바로 돌아가시기 사흘 전에 구상을 불러 앉히시고는 "너는 매사에 기승을 하지 말라! 아무리 외롭고 바른 일이라도 기승을 하면 위해를 입느니라.” 하시면서 채근담을 손수 펼쳐 짚어 보이신 것이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감성일푼편초탈일푼 "조금 줄여서 사는 것이 조금 초탈해 사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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