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당 로마당 개혁당 급진당 초청 100분 토론 sola script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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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당(로마당, 개혁당, 급진당) 초청 100분 토론
- sola scriptura -
진행자 - 손석이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00분 토론의 손석이입니다. 오늘 100분 토론은 현재 3당이 공유하면서도 동시에 매우 다른 입장을 보여주고 있는 sola scriptura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종교개혁 시대에는 성서에 새로운 중요성이 부여되었습니다. 성서의 중요성에 대한 고대의 견해가 다시 회복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직 성서만으로”(sola scriptura)라는 원칙은 개혁자들이 교회의 관습과 믿음을 기독교의 황금 시대의 그것들로 되돌리고자 했을 때, 그들의 위대한 슬로건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믿음 만에 의한 칭의의 교리가 종교 개혁의 내용적 원칙이라고 한다면, “오직 성서만으로”는 그 형식적 원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개혁자들이 교황을 퇴위시켰다면, 그들은 성서를 즉위 시켰습니다.
오늘은 500년 전 종교개혁과 관련하여 현재까지 첨예한 대립의 관계에 있는 세 분의 토론자를 모셨습니다. 오늘의 토론자는 전여욱, 유서민, 노회천 씨입니다. 전여욱씨는 로마당의 입장에서, 유서민씨는 개혁당의 입장에서, 노희천씨는 급진당의 입장에서 “오직 성서로만”이라는 주제하에 성서의 정경성, 성서의 권위, 전통의 역할, 성서의 해석에 대한 입장들을 듣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방청객 여러분과 시청자 여러분도 의견을 개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첫 번째 토론의 주제로 중세 시대에 있어서 성서가 무엇이었는지를 각 당의 입장에서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로마당의 전여욱씨께서 시작해주시죠.
전여욱 : 중세 신학자가 “성서”라고 말할 때, 이것은 거의 예외없이 제롬의 “일반 번역”, 즉 textus vulgatus를 의미합니다. 4세기 후반과 5세기 초에 제롬에 의해 번역된 특정한 라틴역 성서를 지칭하는 데 사용하고 있죠. 그러나 신학자들이 성서에 자신의 신학을 기초시키려 할 때에 번역의 다름으로 인한 문제로 인하여 13세기 표준판이라 할 수도 있는 “파리 판”이 출현하게 됩니다. 그래서 중세의 신학자들은 “성서”를 “파리 판”과 동일시하게 됩니다.
유서민 : 그러나 그 번역판은 결점을 많이 가진 개악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문주의자들의 본문 비평과 언어학적 도구들은 불가타와 이 불가타가 번역하려고 했던 본문 사이의 고통스런 불일치를 밝혀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결과적으로 교리적 개혁의 길을 열어 놓았다고 할 수 있지요.
한 가지만 더 언급한다면 성서 연구와 관련된 인문주의자들의 공헌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서는 라틴 번역판으로가 아니라 그 원어로 직접 읽혀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후기 르네상스 학자들의 이상은 “세 언어의 대가(라틴어, 헬라어, 히브리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원어로 된 성서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또한 이것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은 곧 많은 불가타의 번역 오류들을 밝혀내었는데, 이 오류들 중의 일부는 그 이전에 상당히 중요했던 것들이었습니다. 또한 인문주의 운동은 성서의 최상의 사본을 정확하게 결정할 수 있는 본문 비평 방법을 발전시켰습니다. 대표적으로 로렌조 발라에 의해 유명한 “콘스탄틴의 기증서” 로마 시와 로마 제국의 서쪽 영토 절반이 로마 감독에게 양도되었다는 증서
라는 문서가 위조라는 것을 밝혀내는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손 : 지금 로마당과 개혁당이 성서로 인정하는 범위가 달라서 시민들 혼동을 겪고 있는 것 같은데요. 어떻게 된겁니까? 왜 그렇게 서로의 성서가 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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