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량을 통해 살펴본 일제강점기, 그리고 한국어로 문학을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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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김사량을 통해 살펴본 일제강점기, 그리고 한국어로 문학을 한다는 것.
<차례>
1. 김사량에 대해서
2. 김사량의 문학관
3. 김사량의 작품들과 그 속에 비친 일제강점기의 삶
4. 문화인의 글쓰기와 문학자의 글쓰기의 삶
5. 결론
6. 참고 문헌
1. 김사량에 대해서
김사량은 1914년 평양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시창으로서 사량은 필명이다. 1928년 평양고등보통학교 입학하였으나 5학년 때인 1931년 광주학생운동 2주년을 맞이하여 일어난 동맹휴교사건에 관여하였다가 퇴학당하였다. 학교를 그만 둔 후 1932년 가을 무렵에 교토 제국대학에 다니고 있던 형 김시명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밀항하였다.
큐슈에 있는 사가(佐賀)고등학교 입학하여 2학년 때인 1934년에는 고향 평양과 조선에 대한 그리움을 바탕으로 소z설 <토성랑> 등의 습작을 창작하였다. 1936년 동경제국대학 문학부 독일문학과에 입학하여 동경을 무대로 하여 형성된 조선인 지식인들의 그룹에 참여하여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하는 한편 동경제국대학의 독일문학과 학생들이 주축이 된 ‘제방’ 동인에 참가하기도 한다. 당시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파시즘의 물결을 막아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 ‘제방’ 잡지에 <토성랑>을 발표하여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하였다.
1936년 10월 당시 일본의 조선인 지식인들의 저항 거점이었던 ‘조선예술좌’가 불법 반국가 단체로 몰리면서 일제 당국에 검거되기도 했다. 1939년 평양에서 최창옥과 결혼한 후 하이네에 관한 졸업논문을 제출하였다. 졸업 직후 북경을 방문하기도 하면서 견문을 넓혀 나갔다. 학교 안의 동인지 ‘제방’에서 벗어나 ‘문예수도’의 동인이 되었다. 이 동인지에 소설 <빛 속에서>를 발표하였고 이 작품은 다음해인 1940년에 아쿠다가와 후보작으로 선정된다.
이후 여러 작품을 발표하는데, 주로 식민지 하의 조국에 대한 강한 그리움과 일본과 조선에서 식민주의의 지배에 협력하고 있는 인간 군상을 강하게 비판하는 작품들이었다. 1940년 12월 일본 동경 소산서점에서 일본어 소설집인 [빛 속에서]를 발간하였다.
1941년 4월 가마쿠라시로 이사하여 작품활동을 했으나 태평양 전쟁 발발 다음날인 12월 9일 일제의 예방구금에 걸려 검거되어 일본 남방군의 종군작가다 되면 풀어주겠다는 강요를 받기도 했다. 1942년 2월 귀국하여 줄곧 평양에서 거주하였다. 그해 4월 제2소설집 [고향]을 일본 교토 갑조서림에서 출간하였다.
많은 작가들이 식민주의에 협력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역작 <태백산맥>을 1943년 2월부터 그 해 10월까지 『국민문학』에 연재하여 식민주의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그를 일본 당국은 내버려두지 않았다. 해군을 견학하고 보고문을 쓸 것을 강요하였고, 결국 어쩔 수 없이 김사량은 그 해 9월 해군견학단의 이름으로 진해, 사세보, 오다케 그리고 쓰지우라 등을 방문한 뒤 보고문 <해군행>을 발표했다. 이 때 그는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결국 식민주의에 협력하게 되는 결과를 빚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면서 연재하던 <바다의 노래>를 끝내고는 달리 글을 쓰지 않고 한반도를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1944년 6월부터 8월까지 중국을 여행하면서 탈출로를 모색해 보았으나 여의치 않았다. 1945년 5월 9일 국민총력조선연맹 병사후원부의 요청으로 중국에 파견된 조선인출신 학도병을 위문하러 북경으로 가는 길에 마침내 탈출하여 조선의용군의 근거지인 태항산 남장촌에 도착하였다. 8월 해방을 맞이하여 조선의용군 선발대로 장가구, 열하, 승덕 등을 거쳐 평양에 도착하였다. 그 해 12월 10일 서울을 방문하여 12월 13일 조선문학동맹 결성식에 참가하였고 항일기행문 <노마만리>를 잡지에 연재하였다. 1946년 3월 25일 결성된 북조선예술총연맹의 국제문화국장직을 맡으면서 작품활동을 계속하였다. 희곡 <뇌성>,<호접> 등의 희곡도 본격적으로 창작하였다. 희곡을 창작한 것은 그가 태항산에서 조선의용군으로 활동한 경험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문맹이 높은 상태에서 대중에게 파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간번화된 소설 장르와 달리 직접적인 희곡 장르가 훨씬 용이한 점이 있는 것이다. 10월 단행본 [노마만리]를 발간하였다. 1948년 1월 해방후 창작한 작품을 모아 작품집 [풍상]을 발간하였다.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인민군에 종군하였다가 후퇴하면서 원주 부근에서 낙오하여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1945년 5월 조선인 출신 학도병을 위문하는 단체의 일원으로 참가하였다가 북경에서 태항산의 항일 근거지로 탈출하였던 김사량은 일제 말 망명한 유일한 작가이다. 그러나 이남에서는 그가 해방 이후 줄곧 북한에 머물렀다는 점 때문에, 그리고 이북에서는 그가 연안의 조선의용군 및 독립동맹과 밀접한 연관을 가졌다는 점 때문에 묵살당하였다 항일의 빛나는 저항문학이 냉전의 그늘 속에서 소리없이 사라졌던 것이다. 이제 김사량의 삶과 문학을 온전히 복원하여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제대로 자리매김을 해야할 때이다. 윤동주란 존재로 하여 한국 근대문학이 초라하지 않았다면, 김사량을 통하여 한국 근대문학은 비로소 ‘암흑기’란 이름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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