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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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중국사와 한국사
중국의 역사왜곡(동북공정)과 우리의 대응방안
Ⅰ. 서 론
올해 초, 방송사들은 연일 중국이 고구려사를 중국역사로 편입시키려 한다는 보도를 했다.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3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으며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인정받기 위한 활동을 전개중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국내 언론계, 학계 및 시민 단체 등은 중국의 역사 빼앗기 공작, 한중간의 역사전쟁, 제2의 나당전쟁 등으로 규정하며 반발하고 나섰다. 북한 역시 이에 대해 크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특히 고구려 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이 연기되었다는 점, 최근 중국이 환인과 집안지역에 있는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해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벌이고 있는 점, 고구려 유적지에 한국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는 점 등에 자극 받은 결과다.
그렇다면 중국은 무엇 때문에 고구려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하려 할까? 그리고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중국학자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에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우리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잘못되었다고 언성을 높이기에 앞서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1. 동북공정이란 무엇인가?
동북공정(東北工程)은 중국 동북 지역의 역사와 현황에 관한 대형 학술 과제로, 중국사회과학원 직속 기관인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에서 2002년 2월부터 추진해온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의 줄임말이다. 우리말로 동북 변강의 역사와 그에 따라 파생되는 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프로젝트로 옮길 수 있다. 야후코리아 시사상식 ‘동북공정’ , 중앙일보 2004.1.19 ‘세계문화유산과 동북공정’
중국 동북지방의 역사지리민족 문제 등과 관련된 주제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국가적 차원의 프로젝트이며 이 가운데 고구려를 비롯한 고조선발해 등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역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왜곡하고 있음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관심이 집중되었다.
2. 동북공정의 배경 및 목표
고구려의 역사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려는 의도에 대해 많은 한국인들은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던 중국이 최근의 급속한 경제발전에 힘입어 과거에 누렸던 지역 패권적 지위를 되찾고, 나아가 동아시아 질서를 재편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만들려는 것은 ‘동북공정’이라는 말이 생기기 이전부터 서서히 준비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림
중국은 1980년대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내세워 소수민족정책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1983년 사회과학원 직속에 국경지방의 역사와 지리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이라는 연구센터를 세웠고 89년 이후 공산권 국가가 몰락하자 국경지방의 소수민족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92년 한중 수교이후 한국인들이 고구려, 발해 역사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조선족들이 한국으로 몰려가는 것을 보면서 불안감을 나타내 왔다. 또한 90년대 중반 이후 탈북자들이 대거 중국으로 몰려오면서 동북지방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운 것이 바로 동북공정의 시초가 되었다. 그러다 2001년부터는 조선족과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해 국가적 차원의 대책을 세우기 시작하였고 때마침 북한이 고구려의 고분군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을 신청하자 본격적인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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