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옛 자취 종로의 골목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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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서울의 옛 자취 - 종로의 골목 들여다보기
- 목 차 -
1. 머리말
2. 종로의 역사
3. 종로의 골목길
1) ‘골목길’의 의미
2) 피마골 3) 인사동 4) 북촌일대
4. 맺음말
1. 머리말
우리가 사는 도시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길이 많고, 이들은 거미줄처럼 얼키고 설키면서 도시를 엮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길에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버스를 기다리기도 하며, 때로는 한적하게 걷기도 하고, 자동차를 타고 달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장사를 하고 고함을 지르기도 하며 노래부르고 춤도 추며 각종 공연이 열리기도 하는 곳이 바로 길이다. 이처럼 우리는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을 길에서 보내게 되므로, 하루 일과의 시작과 끝이 이루어지는 곳도 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길에서 그 도시의 모습을 보고, 길로부터 그 도시의 인상을 받게 된다. 마찬가지로 길은 도시를 체험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요소이다. 특히 도심지 내 큰길의 기능을 보조하면서 시민의 생활과 관련하여 인간의 거리답게 형성되어진 뒷길은 우리네 일상이 그대로 묻어나는 곳이다. 서울에서 찾아보자면 종로의 골목들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이후 600여 년간을 대한민국의 수도로 지켜온 서울은, 오랜 시간만큼이나 곳곳에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그 중에서도 종로는 한성부의 중심구역으로서 조선시대부터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해왔던 곳이다. 그러나 현재 서울은 각종 개발과 경제 계획들로 지역마다 크게 변모되어 있는 상태이다. 특히 신흥 중심지로 떠오른 강남과 또 다른 부도심들의 발달, 대형쇼핑몰과 소비지의 등장으로 종로는 예전보다는 그 상권이 훨씬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또한 거대 사옥들이 등장하면서 종로의 이미지를 바꾸고 있고 한편으로는 소비문화를 대변하고 있는 듯 젊은이들의 유흥문화지로 물들어가고 있기도 하다.
종로는 곳곳에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살아있는 문화재이다. 비록 지금은 그 모습이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종로의 구석구석에서는 역사를 찾을 수 있으며 앞으로도 길이 보존되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있고 크고 작은 가게들이 공존하며 큰 골목과 작은 골목들 역시 활기 넘치게 공존하고 있다.
특히 골목은 시간 속에서 변해가는 종로를 파괴와 단절 속에서 지탱하고 있는 중요한 버팀목이다. 골목도 역시 변하긴 하지만 연속성과 지속성이 있다. 구부러지고 막히면서 이어져가는 골목골목에는 우리의 일상이 담겨있고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왔다. 교보문고 뒤편에서부터 인사동까지 이어지는 피맛골, 이제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은 전통거리 인사동의 골목, 그리고 안국역을 지나 죽 이어지는 북촌의 골목들까지. 이러한 골목의 안을 들여다보자면 겹겹이 쌓인 시간의 켜들을 만날 수 있다.
뜯어보면 대단히 문화적 가치를 지닌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골목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종로’라는 곳의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으며 그냥 지나치기 쉬운 우리 역사의 흔적들을 찾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종로의 골목길을 들여다보기 전에, 종로의 역사에 대해 살피고 피마골인사동북촌일대로 나누어 그 곳의 골목길에 대해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종로의 역사
오늘의 서울은 동쪽의 용마산, 서쪽의 덕양산, 남쪽의 관악산, 북쪽의 북한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지역을 그 구역으로 하고 있다. 근래에 이르러 서울은 급속도로 그 영역이 팽창하였다. 조선시대의 서울 즉 한성부의 구역은 이보다 훨씬 협소하였다. 동쪽의 낙타산, 서쪽의 인왕산, 남쪽의 목멱산, 북쪽의 백악산으로 둘러싸인 분지가 그 터전으로서, 성 밖의 일부지역도 관할했지만, 원칙적으로 성안의 구역만을 장안, 문안, 한양이라 하였다. 손정목,『조선시대 도시사회연구』, 일지사, 1977, 35쪽.
서울은 본래 도시가 형성되어 있던 곳이 아니다. 수도로 정해지면서 계획된 도시였기 때문에 궁궐, 도로, 성곽이 새로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서울 주변의 산 능성으로 이어진 도성을 행정경계선으로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성안에 터를 잡고 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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