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사의 이해 한국인 군 위안부를 기억한다는 것 민족주의 섹슈얼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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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인 군 위안부를 기억한다는 것
- 민족주의, 섹슈얼리티, 그리고 강요된 침묵
목차
Ⅰ. 머리말
Ⅱ. 암흑 속에 묻혀진 역사
Ⅲ. 민족주의와 섹슈얼리티의 만남
Ⅳ. 맺음말
Ⅰ. 머리말
1980년대 후반, 한국인 군 위안부 문제가 주로 여성주의 학자와 활동가들에 의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그때까지 한국에서는 위안부 문제에 관한 연구, 조사, 공식적인 토론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군 위안부란 주로 1930-45년 사이 일본 제국주의 정부에 의해 강제 동원되어 일본 군인들의 성 노예 생활을 해야 했던 여성들을 지칭한다. 이 글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현재의 한국 사회 담론에서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가, 특히 여성의 성에 관한 가부장적 규범을 재생산하는 민족주의 담론이 어떻게 군 위안부 문제를 틀지어 왔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제 생존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여성의 성에 관한 민족주의적 견해가 위안부였던 여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본격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Ⅱ. 암흑 속에 묻혀진 역사
침묵은 군 위안부 문제를 재현하는데 중요한 구성요소이자 맥락이 되어 왔다. 다음의 사례들은 위안부 문제가 얼마나 깊은 침묵 속에 있었으며, 그 침묵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지속되어 왔는지를 알려준다. 1992년 1월, 일간 신문들이 서울 방산초등학교 학적부를 조사한 결과, 1944년 12살에서 14살 사이의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정신대로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정신대란 대게 군 위안부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지만 이는 두 그룹, 근로 그룹과 성적위안부 그룹으로 나뉘어있었고 여기서 정신대로의 동원이란 이 중 하나의 그룹으로 동원되어 감을 의미한다. 보도에 따르면, 교사들은 교장의 은밀한 지시에 따라 정신대를 모집하는 일에 중심 역할을 맡았다고 하는데 이는 당시 일본인 교사였던 이케다 마사에 씨의 증언으로 더욱 확실해졌다. 이케다 씨는 정신대 소녀들을 모집하기 위해 방과 후 가정 방문을 했고, 아이들의 부모를 설득하거나 속이고 때로는 협박을 하여 자기 반 소녀 6명을 모집할 수 있었다는 고백을 했다. 이 고백은 일제 식민지 정부가 한국 여성들의 정신대 동원에 체계적으로 가담하였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문제의 이 학적부는 반 세기가 지나도록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 기사에 따르면 방산초등학교는 학교의 긴 역사를 자랑하기 위해 학교 현관에 각종 자료와 사진을 전시해왔고, 놀랍게도 그 전시물에는 정신대 동원이라는 글자가 확실히 적혀있는 마사코라는 일본식 이름을 가진 12살짜리 여학생의 학적부가 놓여있었다고 한다. 이런 문서가 학교에 보존되어 왔을 뿐 아니라 전시되기까지 했다는 사실은 정신대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공적으로 이야기되지 못했는가를 대변한다. 동아일보는 그 학적부의 의미를 아는 사람도 이를 되새겨보는 사람도 없었다.라는 기사를 적었다. 이런 현상은 개인이나 개별 학교의 무지라고만 볼 수는 없다. 이는 한국 사회의 식민주의 인식에 대한 망각의 지점으로서 문제시되어야 한다.
위의 기사가 보도되기 며칠 전, 일본인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야키 교수가 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중요 문서들을 발견하였다. 1938년의 한『통첩』에는 군 위안부 모집의 무질서한 상태의 해결을 위해 지역 경찰의 협력 하에 군대가 위안부 모집에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기술되어있고, 한『진중일지』에서는 가능한 한 빨리 군대 위안소를 설치하여, 점령지 본토 여성들에 대한 일본 병사들의 잦은 강간 사고를 예방하라는 지시가 있다. 이러한 문서들은 일본군 위안부의 계획과 모집, 위안소의 운영에 일본 군대가 직접 개입하였음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최초의 공식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요시미 교수는 이러한 자료들을 불과 이틀 만에 찾아냈다 말했는데 이러한 발언은 놀라운 것이다. 한국인, 특히 위안부 여성들에게 일본 군대와 경찰이 군 위안부 체제에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시작하는 데, 그것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는 데는 50여 년이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왜 이렇듯 위안부 문제가 철저히 침묵되어 온 것일까? 그 답을 얻기 위해 우리는 한국 사회의 식민주의 인식틀의 문제를 분석해야한다. 많은 문서들이 일본 제국주의 정부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정부에 의해 의도적으로 파기, 은폐되었다고 할지라도, 한국인들이 위안부에 관한 정보를 하나도 추적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방산초등학교의 학적부, 정신대로 끌려갔던 이들의 체험담, 목격담 등의 생생한 증언들은 한국에, 한국인들 사이에도 역사적인 자료들이 존재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대중매체는 오로지 일본의 비인간성에만 초점을 맞출 뿐, 오래도록 한국인들이 왜, 어떻게 이 문제를 외면해왔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일본이라는 바깥쪽만을 쳐다보게 함으로써, 이러한 담론은 한국의 식민지 역사 문제를 식민지성의 극복과 역사쓰기라는 과제와 대면하기보다는 일본에 의한 과거 청산이라는 관점으로만 환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위안부문제를 크게 이슈화하지 않으려는 사회분위기는 한국 정부와 그 정책을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1991년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의 독립기념관 터에 기념비를 세우자는 제안을 정부는 거부했고 초등학교 소녀의 동원 사실이 드러난 다음 날 서울시 중부교육청은 관할 초등학교에 정신대 관련 학적부를 피해자 본인 외에는 공개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렇듯 위안부 문제가 증폭되고, 더 많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원치 않은 것은 비단 일본 정부만은 아니었다. 또한 위안부 문제의 길고 깊은 사회적 침묵이 가지는 복합성은 이 문제가 특히 젠더 및 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에 놓여져 있다. 젠더와 성의 차원은 위안부 자신들 또는 위안부 동원에 관여한 사람들, 목격한 사람들이 왜 침묵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는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서들의 발견과 함께 일본 국가가 이 문제에 관여하였음이 드러나자 50여 년 동안이나 침묵에 묻혀 있던 위안부 문제는 민족주의 담론의 틀 속으로 신속하게 편입되었다.
Ⅲ. 민족주의와 섹슈얼리티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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