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문학 문화의 수용과 변용 이광수의 무정 과 후타바테이 시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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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문화의 수용과 변용」
- 이광수의 ‘무정(無情)’과 후타바테이 시메이의 ‘뜬구름(浮雲)’에 나타난 연애의 양상을 중심으로 -
목차
서론
문화의 수용과 변용, 그리고 ‘연애’
2.1. 문화의 수용과 변용
2.2. ‘연애’란 무엇이며, 왜 ‘연애’인가?
3. <무정>과 <뜬구름>의 연애
3.1. <무정>의 연애
3.1.1. 형식과 선형의 연애
3.1.2. 형식과 영채의 연애
3.1.3. 연애의 결론
3.2. <뜬구름>의 연애
3.2.1. 분조와 오세이의 연애
3.2.2. 노보루와 오세이의 연애
3.2.3. 연애의 결론
3.3 요약·비교
4. 결론
1. 서론
한국 문학사에서 <무정>이 가지는 위상은 독보적인 것이다. 최초의 근대적 소설이라는 수식에 걸맞게 이미 많은 선행연구가 이루어져 있다. 후타바테이 시메이(二葉亭四迷)의 <뜬구름(浮雲)> 역시 일본 최초의 근대소설이라는 점에서 일본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남달랐고, 역시 많은 선행연구가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단순히 개별 국가의 문학사 속에서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더 이상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더불어 두 작품 모두 현대의 관점에서, 작품 내적으로 들어갔을 때에 더 이상 문제적이라 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결국 두 작품의 문체나 구성과 같은 내적구조를 살피는 방식의 연구 역시 큰 성과를 이뤄내기 어려울 것이다.
식민지 조선과 일제의 역학관계를 따지기에 앞서, 일본 역시 식민지 조선과 마찬가지로 서구 발(發) 근대화의 영향을 타자로서 체감한 존재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비교문학의 방법론을 사용하는 연구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두 작품의 비교에 불과하지만, 한국과 일본 각각의 문학사 속에서 최초라는 의의를 가진 두 작품이 대상이라는 점에서 일단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본고에서 진행할 연구, 즉 <무정>과 <뜬구름>에 나타나는 ‘문화의 수용과 변용’이 그 저변을 문학작품 전반으로 넓힐 수 있다면 적어도 타자에 의한 문화의 반강제적 수용을 겪은 이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양상 전반에 대한 이해는 진일보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무정>과 <뜬구름>이라는 두 작품 속에서 내재된 문화의 수용과 변용의 양상을 발견하고 그들의 유사성과 차이를 구분하는 방법을 통해, 문학작품 전반에서 이 문화의 수용과 변용의 양상을 이해할 수 있는 초석을 만드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문화의 수용과 변용의 의미를 구체적이고 명징하도록 할 필요가 있을 것이며, 그렇게 재정의화 된 수용과 변용이 각 작품에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 살펴볼 것이다. 더불어, 두 작품 전반에 걸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타자의 문화인 연애라는 키워드를 통해 본고의 논의는 진행될 것이다. 이 연애 라는 키워드 역시 필자와 동시대의 사람들이 일상어로 사용하는 연애라는 단어와는 상당한 괴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 앞서 그 당시의 연애에 대한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 대해 서론의 자리를 빌어 미리 양해를 구하고자한다.
2. 문화의 수용과 변용, 그리고 연애
2.1. 문화의 수용과 변용
일반적으로 수용이라는 말에는 받아들인다는 자발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특히 수용이 문화라는 단어와 결합될 때, 긍정적인 뉘앙스를 띠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관점에서 수용이라는 말을 사용할 경우, 새로운 것을 접하는 과정에서 이미 내 것으로의 체화 하는 과정이 동시에 이뤄져 버린다. 왜냐하면 이 수용의 주체가 개인이든 사회이든 체화의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왜곡과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변용’이라는 말은 단지 수용과정의 일부분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우리는, 의도적으로 수용자의 태도를 배제하고, 완전히 새로운 것이 인지범위 안으로 들어오는 상황만을 수용이라는 용어로 재정의 할 것이다.
그렇다면 변용은 자연스럽게 이 새로운 인지 다시 말해 접촉의 상황에서 수용자의 상황과 태도에 따른 수용 대상의 변화와 그 과정을 일컫는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문학작품을 주된 재료로 삼는 만큼, 본고에서는 이 수용과 그 대상이 대개 문화로 한정될 것이다. 또한 <무정>과 <뜬구름>속 등장인물 개인, 그 각각의 행태를 살핌으로써 드러나는 양상을 연구할 것이다. 이 선구적 작품들의 경우에는 특히 작중인물이 보여주는 양상이 선구자적 지식인이던 작가들의 수용과 변용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보여준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양상에 대한 이해는, 당대 사회 전반의 수용과 변용 양상에 대한 이해로 다가가는 교두보가 될 것이다.
여담으로, 수용의 사전적 정의는 어떠한 것을 받아들임이다. 식민지 조선이나, 나아가 근대의 일본이나 중국과 같은 서구 발 근대화 시대의 후발주자들을 일례로 살펴보았을 때, 이들의 수용이 과연 받아들임을 주체성을 가진 행위자로서 온전히 행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어렵지 않게 일반적인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본고의 재정의 방식이 반드시 논지전개의 편의를 위한 방법론만은 아니게 될 것이다.
2.2. 연애란 무엇이며, 왜 연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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