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 전쟁 한니발 로마 침공 계기, 한니발 로마 침공 전개, 제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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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전쟁
제2차 포에니전쟁 포에니 전쟁은 페니키아 인과의 전쟁이라는 뜻. 페니키아 인은 당시의 해상왕국 카르타고를 의미함.
은 한니발과의 전쟁이였다. 1차 포에니전쟁이후 카르타고와의 전쟁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로마가 무려 16년 동안 2차 포에니 전쟁을 치른 것은 한니발 때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로마인들에게 있어 한니발은 악몽 이상의 존재였다. 그렇지만 로마는 한니발이라는 큰 병을 극복함으로써 대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된다. 그만큼 희대의 명장이였다. 지금 다룰 것은 한니발이 왜 로마와의 전쟁을 시작하였고 그가 어떤 전술을 써서 지중해 강대국인 로마를 격파해 나갔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루겠다.
● 한니발의 로마 침공 계기와 전개
한니발은 1차 포에니 전쟁에서 활약한 하밀카르 바르카스의 맏아들이다. 하밀카르는 제2의 카르타고인 에스파냐 식민지를 확장하는데 지대한 공로를 세웠으며 자신의 가문의 입지를 굳혔다. 하밀카르는 에스파냐 식민지를 기반으로 1차 포에니 전쟁 때 로마에게 패한 것을 벼르고 있었는데 9살 난 아들 한니발을 카르타고의 신 타니트에게 로마를 쳐부술 것을 맹세 하게 한 후에 한니발을 전쟁터로 데리고 다니며 여러 전술들을 알려주었다.
하밀카르 사후에 그의 사위인 하스드루발이 에스파냐 총독으로 뒤를 이어 오르게 되면서 장인의 사업을 뿌리내리게 하는 등 많은 공적을 남깁니다. 그렇지만 하스드루발은 하인으로 부리던 갈리아인이 모욕을 당한 것에 원한을 품고 살해당하고 만다. 이 후 에스파냐 총독은 한니발에게 넘어가게 되는데 이 때 그의 나이 26세였다. 이 후 그는 오랫동안 품고있던 로마 궤멸을 위해 사군토를 공격하게 된다. 이 사군토는 시칠리아의 그리스인과 좋은 관계를 맺고, 로마와 손을 잡는 도시였다. 한니발의 공격이 시작되자 사군토 주민들은 동맹국 로마에 알리지만 이 때의 로마는 갈리아인의 봉기를 대비해 원군을 파병할 여유가 없어서 외교로 해결하려 했지만 한니발의 애매한 태도와 계속되는 공격으로 인해 화가난 로마는 병력을 철수 하든지, 로마와 전쟁을 하든지 양자택일을 하라고 카르타고 정부에 요구하지만 결과는 병력을 철수 할 수 없다는 것이였다. 결국 로마는 선전포고를 하는데 이는 한니발이 노리고 있던 것이였다. 한니발은 기원전 226년에 맺은 협정에 위배되지 않게 사군토를 우선 공격만 하였고 함락시키지 않고 있다가 로마가 선전포고를 하고 나서야 함락을 시키게 된다. 이로써 제2차 포에니 전쟁이 시작된다.
● 제2차 포에니 전쟁(한니발 전쟁) : B.C 218 ~ B.C 202
당시 로마의 방어선은 동쪽과 서쪽 남쪽 모두 철벽이였기에 남은 것은 북쪽에서 쳐들어가는 것이였는데 그곳에는 알프스 산맥이 있었다. 한니발은 철저한 계산과 정보수집으로 알프스산맥을 넘는 방법과 루트를 알아낸다. 그리고 그는 카르타헤나를 떠날 때 이끌고 있던 병력은 보병9만에 기병 1만 2천 명, 그리고 코끼리 37마리였는데 카르타고 본국을 수비하기 위해 2만 명의 병력을 파견하고 에스파냐를 수비하기 위해 보병1만 2천 명과 기병 3천명, 코끼리 21마리를 남겨놓고 자신은 보병 5만에 기병 9천명 그리고 코끼리 37마리로 출발을 하게 된다. 수개월에 걸친 알프스산맥 횡단을 성공하고 살아남은 한니발의 군대는 2만 6천명으로 줄어있었다. 무려 3만 이상의 군사들을 알프스에서 잃었다. 너무나 무모해 보이는 전투였지만 이후는 숫자가 무의미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니발이 알프스를 횡단 한 것을 안 로마군은 기진맥진해 있을 것으로 여기고 더군다나 한겨울에 알프스를 코끼리까지 동반해서 넘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 나머지 방심해 있었다. 그렇지만 한니발은 알프스 횡단 후 로마와 사이가 좋지 않던 갈리아 인들과 동맹을 맺고 있었고 알프스에서 내려온 직후에 병사들에게 약 한달 간의 휴식을 주어 힘을 회복하게 된다.
1) 제1회전 - 티치노 오늘날의 파비아 지방을 의미함.
한니발은 전투 전 갈리아 포로들의 사슬을 풀어주며 “원하는 자에게는 결투를 허락하겠다. 이긴 자에게는 무기와 말을 주고 자유롭게 풀어주겠다.” 라고 하자 포로들 모두가 결투를 희망하였고 이를 본 카르타고 병사들은 이긴 자에게는 박수를 보냈지만, 패하여 죽음을 맞이한 갈리아인에게도 가혹한 삶을 끝낼 수 있었던 사람에 대한 공감으로 더 많음 박수를 보냈다. 한니발은 이들의 전투 후에 우리들의 현재 실정을 비추는 거울이라면서 갈 곳은 없고 오직 싸워서 이기는 것을 머릿속에 각인 시키게 된다. 한니발은 기병의 활용을 매우 중시하였는데 그것의 효과는 이 첫 회전에서 드러나게 된다. 그는 기병으로 가장 우수한 누미디아 출신 기병들을 이용하여 로마군의 전위를 격파하였고 이들 기병은 로마 본대에 육박하게 된다. 로마 기병들은 적들에게 포위당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질려 도망치게 되고 자연히 보병들 까지도 무너지게 되었다. 질주하는 말에 기다란 창을 휘두르는 기병은 오늘날 고속질주 하는 승용차에 비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달리는 차에 뛰어 들어 막을 수 있겠는가! 순식간에 로마 집정관 고대 로마의 관직을 일컬으며, 공화정 시대에는 로마의 시민, 즉 관리가 차지할 수 있는 실제상 가장 높은 자리였으며, 제국 시대에는 명목상 황제 다음 가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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