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에니 전쟁을 통해 본 로마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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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본론

1) 고대 세계에서 지중해의 가치와 의미

2) 1차 포에니 전쟁
(1) 전쟁 발발 이유
(2) 전쟁 내용
(3) 전쟁의 결과

3) 2차 포에니 전쟁
(1) 전쟁 발발 이유
(2) 전쟁 내용
(3) 전쟁의 결과

4) 3차 포에니 전쟁
(1) 전쟁 발발 이유
(2) 전쟁 내용
(3) 전쟁의 결과

5) 전쟁 이후의 변화된 정치/전략/사회/문화적 측면

3. 결론

4. 참고문헌

본문내용
기원전 216년 로마는 8만 7천명의 대규모 군단을 새로 편성한다. 이번에야말로 한니발을 무
너뜨리겠다는 기세였다. 로마에서는 집정관 두 명,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와 테렌티우스 바로가 파견되었다. 로마 군단은 3월 15일에 행동을 개시해서 한니발을 찾아 아피아가도를 타고 남하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칸나에 평원에서 두 진영이 맞닥뜨리게 된다. 이게 훗날 포에니 전쟁사에 길이 남을 칸나에 전투이다.

일단 로마의 진영을 보자면 중앙의 맨 앞에는 경무장 보병을 배치하고 그 뒤에는 로마가 자랑하는 중무장보병을, 양 옆에는 집정관이 지휘하는 두 개의 기병대를 배치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땅에서 자신이 원할 때 전투를 했다. 이번에도 그러기 위해 소규모 전투가 있을 때마다 갈리아 용병을 동원하여 패퇴하면서 적국의 경계심을 풀어놓았다.

카르타고의 진영은 맨 앞에 갈리아인 용병을 활처럼 늘어놓았고 뒤에 한니발이 이끄는 정예부대, 그리고 양옆에는 히스파니아와 갈리아, 누미디아 기병을 배치했다. 그 다음 상황은 갈리아 보병이 중무장 보병에게 돌파당하는 척 하며 점점 포위 진영에 들어갔고 2만명 가량의 정예부대가 정면에서 로마군을 상대한다. 그리고 누미디아와 히스파니아, 그리고 갈리아인으로 구성된 기마용병들은 로마 기병대와 싸우기 시작하고 마침내 로마 기병대가 패퇴한다. 분전하고 있던 로마 중무장 보병의 뒤를 기병대가 덮쳤고 양옆에서 갈리아인들이 덮치고 맨 앞에는 한니발과 그의 정예부대가 덮쳤다. 완벽한 포위작전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되지 않아 또 비보가 날아왔다. 북쪽으로 파견된 법무관 포스무투스 휘하의 2개 군단이 갈리아인들에게 모조리 몰살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포스무투스도 포함되었다. 로마는 며칠사이에 10만에 가까운 병력을 잃은 셈 이었다. 그 후에 카푸아는 칸나에에서 패한 로마를 버리고 한니발과 강화를 맺었고, 이어 근처의 도시들도 로마에 등을 돌리면서 로마연합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이로써 남부는 모조리 한니발의 세력으로 들어왔다.

이듬해인 기원전 215년, 로마의 친구였던 시라쿠사의 참주 히에론이 세상을 떠나고 나이 어린 그의 손자가 참주의 자리에 오른다. 이에 카르타고는 시라쿠사 귀족들과 결탁해서 소년왕을 암살하고 시라쿠사와 함께 시칠리아의 로마세력을 공격한다. 이에 로마에서는 이탈리아의 칼 마르켈루스를 총사령관으로 하여 시라쿠사로 군단을 파견한다.

한편 한니발은 마케도니아와 조약을 맺어 동쪽과 서쪽과 남쪽과 북쪽에서 로마를 포위한다는 전략을 짰다. 그러나 당시 일리리아와 아드리아해의 주도권을 쥐고있던 로마의 방해로 인해 이 작전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로마의 계략으로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와
7.
페르가뭄과 여러 나라들에게 포위당하는 꼴이 되었다.

그리고 이 때, 이탈리아에서는 한니발이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한니발의 전투방식에 익숙해진 로마의 대응능력 향상, 세력지의 확장에 따른 방어에의 어려움과 더불어 고립된 상태에서 전투만 거듭하다 보니 군사적 측면 및 여러 면에서 세가 약해지고 있었는데, 시라쿠사마저 로마에게 넘어가게 되어 보급이 아예 불가능하게 되었던 것이 한니발의 위기를 불러온 것이었다. 이로 인해 카푸아도 잃게 되었고 한니발은 점점 고립되었다. 그 와중에 한니발의 부하장수가 속임수를 써서 그 당시 강력한 부대였던 자칭 노예군단의 수장 그라쿠스를 죽였다.

이렇게 로마 국내의 한니발 저지가 시행되고 있는 동안, 로마에서 시라쿠사로 파견한 군단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아르키메데스의 신병기로 인해서 군단들은 모조리 패배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을 시라쿠사인 포로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달의 여신 세레나의 제사 기간에에는 그들이 천둥이 쳐도 모를 정도로 취한다는 사실을 접수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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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하이켈하임 외 3명, [로마사], 현대지성사, 1999
김덕수, [로마문명사], 현대지성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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