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차별주의적인 유교사상을 뛰어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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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차별주의적인 유교사상을 뛰어 넘다
일단 내가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조선 시대 늙은이 사상에 대해 정의를 내려봐야 할 것 같다. 조선 시대 늙은이 사상이란 7~8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흔히 말씀하시는 여자는 여자다워야 여자이며 항상 몸가짐을 조심하게 행동해야 하고 차분하게 하며 말도 조용하게 해야 하고 남자를 잘 섬겨야 한다고 하는 사상을 말한다. 난 이런 사상을 너무나도 싫어한다. 아니, 증오한다고 해야 맞는 말이겠다. 그 이유를 따지자면 아주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 머릿속에 조금씩이나마 남아 있는 기억들을 살려내고 또 엄마한테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고백 글로 쓰려 한다. 막상 책상 앞에 앉으니까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 막막하고 조금 긴장되면서 설레기도 한다. 굳이 이런 주제로 글을 쓴 이유는 지금 내 생활에까지 그런 사상이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내 모습을 조금이나마 변명하기 위해 쓴 글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난 태어났을 때부터 사랑을 많이 못 받고 자랐다고 한다. 여자라는 이유이다. 친가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남아선호사상이 아주 많이 남아있는 분들이시다. 그래서인지 첫 애는 아들을 원하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태어났고 관심의 대상이었던 난 순식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엄마께서는 날 낳으신 후 따뜻한 미역국도 드셔 보지 못하고 산후 조리도 못 하신 채 할아버지 할머니의 진지를 차려드리고 시중을 들기 위해 급히 퇴원하셨다고 한다. 난 어릴 적에 예쁘지는 않았지만, 애교가 많았다고 한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해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다가가면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그런 나를 본채도 하지 않으셨고 심지어는 돌아앉거나 피해버렸다고 한다. 내가 조금씩 성장할수록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들이 너무나도 미웠었다. 그러던 중 내 남동생이 태어났고 모든 관심과 사랑이 남동생에게 쏠리면서 난 어느 순간부터 가중 중에 외톨이가 되고 말았다. 할아버지 댁에 가도 늘 관심의 대상은 남동생이었다. 마음 한 편으로는 부러운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명절날에 사촌들과 식구들은 모두 제사지낼 때 난 늘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곤 했다. 그럴 때면 엄마가 방에 들어와서는 날 꼭 껴안아주고 했다. 가끔은 내가 여자라는 게 싫을 때가 잦았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남동생을 더 챙겨 줄 때면 반항심이 생기고는 했다. 난 그 마음을 표출하는 법을 운동으로 익히게 됐다. 어릴 적부터 수영과 육상을 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암벽등반과 검도를 익히게 됐다. 그런 나를 외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늘 감싸주고 내가 최고라며 치켜세워주고는 하셨다. 하지만 친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여자애가 막대기나 휘두르고 다니는 그런 운동을 싫어하셨다. 매일 날 볼 때마다 조선 시대의 전통적인 여자상을 들먹이면서 몸가짐을 조심하게 행동하라고 말씀하셨지만 난 그럴 때마다 보란 듯이 더 다쳐오고 더 강하게 훈련했으며 남자가 될 수 없다면 남자답게 행동하면 언젠가는 날 내 남동생 대하듯이 대해주고 인정해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더 독해졌다. 그건 어디까지나 내 바람뿐이었을까. 현실에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었을까. 중학교 3학년이 되자 어느덧 나는 사범이라는 자격으로 받을 만큼 실력도 월등해졌고 여러 관장님께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학교는 물론이고 시범 보일 때도 심사를 볼 때도 늘 박수갈채를 받았었고 인정받았지만, 아빠와 친가 할아버지 할머니께는 절대 인정받을 수 없었다. 오히려 내게 돌아오는 건 좋지 않은 시선뿐이었다. ‘그래, 그럼 나 역시 무시할 거다. 내가 그동안 인정받으려고 노력했던 건 날 낳았다는 죄 하나밖에 없는 엄마 때문이었는데 이젠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아빠를 제외한 모든 사람한테 인정받으면 된다. 날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인데 이제 와서 관심과 사랑 따위 필요 없다. 정상 위에 올라서서 내가 내려다보면 된다. 그때야 ’저 애가 내 손녀딸 이다.’라고 얘기한다면 난 모르는 사람이라고 답할 것이고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며 날 냉대했던 것 이상으로 무시해 줄 거다.’ 라는 식이었다. 조금 나쁘기도 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필요 없다고 한 것은 잘못되기는 했지만 그때 당시로는 정말 견디기가 어려울 만큼 가족들로부터 소외당하였었다.
드디어 고등학생이 되었다. 중마고등학교로 배정받고 1학년 때는 기숙사에 들어가서 살게 되면서 운동을 멀리하게 됐다. 불규칙한 식사습관과 저녁 늦게까지 계속되는 불량식품의 흡입 때문에 중학교 때까지 멀쩡했던 몸에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얼굴이 점점 호빵 모양으로 변해가고 또 점점 여드름이 심해졌으며 다리 굵기는 여느 건물의 기둥 못지않게 두꺼워졌고 교복을 입으면 살짝 보이는 똥배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손을 흔들면서 인사하면 출렁거리는 팔뚝 살고 무시할 수가 없었다. 운동하던 애가 잠깐이라도 운동을 쉬게 되면 몸의 긴장이 풀려서 일반 사람들보다 몇 배는 빨리 살이 찐다고 한다. 그걸 내가 몸소 체험하게 될 줄은 꿈 에도 몰랐었다. 역시 나는 운동을 해야 하는 체질이었던 모양이다. 인제 와서 고백하는 것이지만 사감 선생님께는 성적이 자꾸 떨어져서 개인과외를 다니겠다는 핑계로 기숙사를 퇴사했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운동하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집 앞의 근린공원에서 오래달리기를 하곤 했다. 정말 땀에 흠뻑 젖어 집에 들어가고는 했다. 날이 쌀쌀해지면 오래달리기를 하고 잔디밭에서 축구를 하거나 혼자 농구를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신문에 실을 농구부 인터뷰를 하던 중 농구부의 부장오빠가 킥복싱이라는 운동을 권해왔다. 내가 운동을 좋아한다니까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킥복싱이라는 운동을 하면 잘할 것 같다고 추천해줬다. 원래 UFC나 K-1 같은 이종격투기 프로그램을 즐겨보기는 했으나 내가 이종격투기에 속해있는 태국 무예타이를 한국식으로 바꿔 들여온 킥복싱이라는 격투기를 배우게 될 줄은 몰랐었다. 난 앞뒤 잴 것 없이 바로 가서 입관서를 썼다. 집에 가자마자 엄마한테 무턱대고 돈을 입금해 달라고 했다. 엄만 다 큰딸이 늦은 밤에 혼자 밖에 나가서 운동하고 오는 것보단 여러 사람하고 어울리면서 스트레스 풀고 안전하게 집에 오는 걸 바란 모양이다. 바로 돈을 입금해주셨고 난 그 다음 날부터 바로 운동을 다니게 됐다. 물론 아빠한테는 비밀로 했다. 난 킥복싱이라는 운동에 금방 흥미를 붙이게 됐고 어른들하고 내 또래 애들이나 선배들하고 친해지면서 운동하는 게 너무 즐거웠다.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가끔 회식도 하고 주말에는 같이 밥도 먹고 하는 게 너무 행복했다. 그러다가 시합 한 번 나가보라는 제의를 받게 됐고 정말 얼떨결에 4월에 처음으로 시합을 나가게 됐다. 상대가 약했던 건지 내가 생각이 없었던 건지 그저 종소리에 저돌적으로 달려들었고 트로피와 상장을 거머쥐었다. 그 이후로 선수명단에 오르게 됐고 7월에 나간 시합 역시 이겼다.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도장에서 유일한 여자선수이다 보니 주위에서 기대하는 것도 있고 응원해 주는 것도 그저 감사하고 벅찼었다. 아빤 집에 트로피가 2개나 놓여있는 걸 보고서야 딸이 킥복싱이라는 운동을 다니고 있으며 선수명단에 정식으로 이름이 올라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불같이 화를 내셨다. ‘왜 이런 운동을 하느냐. 운동에만 빠져 있으니까 자꾸 성적이 떨어지는 거 아니냐. 왜 말도 없이 엄마하고만 상의를 했느냐. 여자애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하느냐. 그런 격한 운동은 남자애들의 주 종목인데 넌 무슨 생각으로 시작했느냐.’ 등의 잔소리였다. 그때 내가 던진 한마디 말이 아빠의 심정변화에 그렇게까지 큰 파장으로 일으키게 될 줄은 몰랐었다. ‘난 링 위에 올라가서 싸워서 혹은 훈련받으면서 너무 힘들어서 눈물 흘린 횟수보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무시당하고 천대받고 그래서 늘 외로워서 눈물 흘린 횟수가 더 많았어. 아빤 그런 딸한테 한 번이라도 관심 둬 줘 봤어? 사랑 줘 봤어? 아빤 나 걱정할 권리조차 없어.’ 그렇게 얘기했었다. 아빤 결국 내가 시합 나갈 때마다 조심하라는 말로 작게나마 격려해주셨고 운동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으셨다. 무언의 허락을 받은 셈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딸도 여자로서 이런 운동을 할 수 있다.’라는 것을 인정받겠다는 오기로 운동을 했다. 하지만 스트레스도 확실하게 해소되고 미친 듯이 운동하며 땀을 낼 수 있는, ‘남자들만 하는 운동’이라는 각인이 찍혀있던 킥복싱이 좋아졌다. 운동하며 내가 나 자신을 절제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난 한번 시작한 건 끝을 보는 성격이라 목표 역시 챔피언이다. 그 목표에 다가서려면 아직 멀었지만, 이 운동을 좋아하는 만큼 더 노력할 생각이다. 그런 노력하는 모습을 예쁘게 봐 주신 관장님께선 날 챔피언으로 키워주겠다고 했다. 낳아 준 아빠보다 키워주는 아빠가 진짜 아빠라고 한다. 관장님은 날 딸처럼 귀여워 해주시면서도 훈련할 때는 남자애들 못지않게 강하게 키우신다. 내가 아플 땐 아빠보다 더 걱정해주시고 기쁠 땐 같이 손뼉 치며 좋아 해주시고 기운 없어 할 땐 기운 내라고 응원해주고 다독여주고는 하신다. 내가 관장님을 따르고 신뢰하는 만큼 챔피언이 되겠다는 내 목표는 더욱 뚜렷해졌다.
원래 격투기라는 운동이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이길 순 없다. 엄마는 내가 시합 나갈 때마다 따라오신다. 딸이 맞는 걸 보면서 눈물 훔치시고는 한다. 시합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굳이 따라오신다. 죄송하면서도 답답할 때가 많다. 그래도 딸을 믿어주고 운동이든 공부든 무엇을 하든 자신감을 갖고 살기를 원하시는 엄마가 참 고맙고 이런 못난 딸을 둔 엄마가 어쩔 땐 안쓰럽기도 하다. 내게 조그마한 꿈이 하나 있다면 대한민국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 전남에서만큼은 챔피언으로 유명 해 지고 싶다. 그래서 아직도 조선 시대의 고지식한 유교사상을 갖고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사상을 송두리째 바꿔버리고 싶다. 더는 여자라는 이유로 나 같이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나는 애들이 없게 여자든 남자든 같은 시선으로 바라봐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려면 정상의 자리까지 열심히 올라가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는 뒷전으로 미루겠다는 건 절대 아니다. 잘하지는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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