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곡(文谷) 김규동 - 작가의 생애와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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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문곡(文谷) 김규동
1. 생애와 문학 활동
김규동의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문곡(文谷)으로 1925년 2월 함경북도 경성(鏡城)에서 의사인 아버지 김하윤과 어머니 김옥길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했다. 1939년 경성고보에 입학하였는데, 시인 김기림과의 만남도 이 무렵의 일이다. 1944년 그는 경성보고 5년 과정을 졸업하고, 연변의대 예과 1학년에 입학했다. 하지만 중간에 수학을 중단하고 김일성대학 조선어문학과 2학년으로 편입을 한다. 그는 평양에서 여러 문인, 연극인 등과 교유하면서 건국 및 문화운동에 종사하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된다.
1948년 2월, 단신 서울로 달려온 것이 홀어머니를 비롯한 두 누님과 동생과의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다. 이 충격은 그의 시 세계를 통해 지속적으로 보이는 고독과 불안의 원인이 된다. 같은 해 경성상공중학(현 중대부고) 교사로 취임했으며 이 무렵, 김기림·김광균·장만영 등과 더불어 모더니즘 시운동에 대한 관심을 높여가기 시작했다. 그 해 가을,《예술조선》신춘문예 시 <강>(1948.3)이 입선하게 되면서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하여 활동하게 된다.
1950년 6·25전쟁의 발발과 함께 교사직을 그만 두고 51년 1월, 부산으로 피란을 가게 되는데 그때 김규동은 그의 일생에 큰 영향을 준 이른바, ‘후반기(後半期)’ 동인들과 조우하게 된다. 이들의 만남은 ‘후반기’ 동인의 조직과 결성으로 이어지는데, 이때의 동인들은 조향·박인환·김차영·이봉래·김경린 등이며, 모더니스트로서의 시적 출발은 이에서 시작된다. 1954년 한국일보의 문화부장으로 부임하면서 언론인으로서의 사회적 활동이 본격화된다. 1955년 1월, 《한국일보》신춘문예 시 <우리는 살리라>를 응모하여 당선되고, 《조선일보》신춘문예에는 시 <포대(砲臺)가 있는 풍경>이 입선된다. 같은 해 10월, 그의 처녀시집인『나비와 광장(廣場)』이 간행된다. 1958년 제2시집『현대의 신화』를 출간한다. 1959년 35세에 자유문학상을 수상한다. 또한 이때 그의 중요한 시론인『새로운 시론』을 출간한다. 이는 지금까지의 그의 시적 경향과의 연결선상에서 시적 방향을 암시하는 이론적 근거가 되고 있다.
1962년 1월, 수필집『지폐(紙幣)와 피아노』를 간행하고 이를 마지막으로 이 후의 상당기간 동안 그가 펜을 놓고 지냈다는 사실은 주목을 요하는 부분이다. 무려 1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침묵하던 그의 시작 활동이 다시 재기된 것은 이후, 1972년의 일이다. 이때, 그의 시 세계는 또 다른 방향을 모색하고 있었다. 1972년 공식적인 작품 활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74년 다른 문인들과 함께 민주회복국민회의의 민주회복국민선언대회에 참가하면서 시적 인식의 전환을 맞게 된다. 1975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165인 문인선언’에 서명, 참가 이후 자유실천 문인협의회의 고문에 추대되기에 이른다. 이는 그의 작품 세계에 있어서 또한 의미 있는 인식적 전환의 계기를 제공한다. 1977년 8월, 그의 제3시집『죽음의 영웅(英雄)』이 간행되었고 이에 그의 사회적 자아는 눈부신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80년 ‘지식인 134인 시국선언’에 참가, 서명하는데, 이러한 그의 사회적 활동은 이후 작품 경향에 있어서도 직접적인 영향을 보이게 된다. 1983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확대개편대회에서 다시 고문으로 추대되는데 이는 그가 문학 자체 성과보다 오히려 이념의 실천 영역에 있어 그 활동의 범주가 크다는 사실은 주목을 요하는 부분이다. 1985년 회갑기념으로 간행된 시선집『깨끗한 희망』을 출간하는데, 이 시집은 그 발표연대를 역으로 재정리, 최근의 참여적 시편들을 앞쪽에 위치시킴으로 초기 시에 대한 불신과 자신의 변화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1989년 제4시집『오늘밤 기러기떼는』이 출간되고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으로 추대되면서 그는 작품 활동 못지않게 부지런한 대회활동도 하였다. 김규동은 이 외에도 많은 시와 산문들을 각 지상에 발표하는 등의 문단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2. 작품경향과 문학적 특성
- 김규동의 시세계에 대해서는 주로 두 가지의 평가가 따라다니는데, ‘모더니스트’와 ‘리얼리스트’라는 상반된 얼굴이 그것이다. 1950년대 ‘후반기’ 동인으로 참여하여 모더니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였던 그는 초기에는 도시적 감수성에 기반을 두어 지적인 시어를 채택하고, 쉬르리얼리스트로서의 성향을 보였으나, 1970년대 이후부터는 사회 내지 역사의식을 토대로 하는 사회성 짙은 리얼리즘의 민중시로 나아가는 시 세계를 펼쳐 보인다.
시 기
대 표 작 품
경향
제 1시기 (1948~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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