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시가교육론] 황조가의 서사성 - 유리왕과 고구려 초기 역사와 관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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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시가교육론] 황조가의 서사성 - 유리왕과 고구려 초기 역사와 관련하여
- 본문내용
- 3년 가을 7월, 川에 離宮을 지었다. 겨울 10월, 왕비 松氏가 돌아가니 왕은 다시 두 여자를 繼室(후실)로 삼았다. 한명은 禾姬로 골천 사람의 딸이었고, 다른 한명은 雉姬로 漢人의 딸이었다. 두 여자가 총애를 다투어 서로 화목하지 못하니 왕이 谷의 동서로 두 개의 궁을 만들어 각각 두었다. 뒷날 왕이 算山으로 사냥을 나가 7일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두 여자가 또 쟁투를 벌였다. 화희가 치희를 꾸짖으며 말하기를, “너는 漢家의 婢妾이면서 어찌 무례함이 이리도 심한가?”하니, 치희는 부끄러워하면서 한을 품고 돌아가 버렸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말을 채찍질하여 쫓아갔으나 치희는 노하여 돌아오지 않았다. 왕이 일찍이 나무 아래에서 쉰 적이 있었는데, 꾀꼬리가 날아와 모여드는 것을 보고는 이에 느끼는 바가 있어 노래하며 이르기를, “펄펄 나는 꾀꼬리는 암수 서로 정다운데, 외로워라 이내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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