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속에 살다, 황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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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속에 살다, 황조가
1. <황조가> 본문
翩翩黃鳥 (편편황조)
雌雄相依 (자웅상의)
念我之獨 (염아지독)
誰其與歸 (수기여귀)
2. <황조가>와 배경설화
황조가는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의 아들인 고구려의 2대 왕, 유리왕(琉璃王)이 서기 17년에 지은 노래라고 한다. 그에 대한 관련 기록이 『삼국사기』고구려 본기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노래와 함께 전해지고 있는 황조가의 배경설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유리왕은 왕비 송씨가 일찍 서거하자, 곧 두 여인을 계실(繼室)로 맞아들였다. 하나는 골천 사람의 딸 화희(禾姬)였고, 하나는 한인(漢人)의 딸 치희(雉姬)였다. 두 여자는 사랑을 다투어 서로 화목하지 못하였는데 왕이 양곡(凉谷)의 동서에 동궁(東宮)과 서궁(西宮), 두 궁전을 짓고 각각 살게 했을 정도로 싸움이 잦았다. 훗날 왕은 기산(箕山)으로 사냥을 가게 되어 7일 동안 왕궁을 비워 두었는데 이 사이 두 여자는 또 싸우게 되었다. 이때, 화희가 치희를 꾸짖기를 “너는 한가(漢家)의 비첩으로 무례함이 어찌 그리 심한가?" 하니, 치희는 부끄럽고 분하여 마음이 상해 제 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말을 달려 좇아갔으나 화가 난 치희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왕이 하릴없이 돌아오다가 나무 그늘 밑에서 쉬고 있었는데, 때마침 나뭇가지에 꾀꼬리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왕이 이를 보고 느낀 바 있어 노래를 불렀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유리왕조>-
三年 秋七月 作離宮於川 冬十月 王妃宋氏葬 王更娶二女以繼室 一曰 禾姬 川人之女也 一曰 雉姬 漢人之女也 二女爭寵不相和 王於凉谷 造東西二宮 各置之 後王田於箕山 七日不返 二女爭鬪 禾姬罵雉姬曰 汝漢家婢妾 何無禮之甚乎 雉姬慙恨亡歸 王聞之 策馬追之 雉姬怒不還 王嘗息樹下 見黃鳥飛集 乃感而歌曰 翩翩黃鳥 雌雄相依 念我之獨 誰其與歸.
3. <황조가>의 내용
<황조가>는 흔히 그 배경설화와 연관하여 유리왕이 치희를 잃고 난 후의 외로움을 노래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훈민정음 창제 이전 시기의 노래이므로 한자로 기록되어 전하는데 다음은 그것을 풀이한 번역의 예이다.
① 펄펄 나는 꾀꼬리는/자웅이 노니는데/외로운 이내 몸은/뉘와곰 돌아갈꼬............[이병기]
② 꾀꼬리는 오락가락/암 수 서로 짝지어 놀고 있는데/외로울사 이몸이야/
(나의사랑 송희(松姬)를 일고 두 계실(繼室)마저 나의 뜻에서 어긋나니 진실로 이제는 누 구를 믿고) 누구와 함께 (사랑을 속삭이며) 살아가잔 말고?.................[장홍재]
③ 펄펄 나는 저 꾀꼴새는/수놈과 암놈이 저리 정다운데/나의 외로움을 생각함이여/
그 뉘와곰 함께 갈거나..............................................[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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