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 기자조선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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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며
Ⅱ. 본론
ⅰ. ‘箕子’에 대한 검토
ⅱ. ‘箕子東來說’의 정체
Ⅲ. 나오며
본문내용
Ⅰ. 들어가며
한국 고대사연구에 있어 기자조선은 늘 문제아였다. 그 동안 古朝鮮에 관한 많은 연구와 업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衛滿朝鮮에 비하여 箕子朝鮮設에 관한 명확한 결론이나 학설은 내려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헌사료와 발해연안에 보이는 청동기 禮器에 보이는 ‘箕侯’를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에 따른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또한 일제의 主體性論과 관련하여 식민사관과 그를 부인하는 민족사관에 의해 무리한 해석이나 편견이 가미되어 더욱 민감한 문제로 다루어져왔음은 主知의 사실이다. 이러한 배경들은 箕子朝鮮設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로막는 요소로 작용해왔다. 이러한 箕子朝鮮設을 다룬다는 것은 다소 무리일지는 모르나 그 동안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箕子’라는 名에 대한 검토와 ‘箕子東來說’을 중심으로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Ⅱ. 본론
ⅰ. ‘箕子’에 대한 검토
이병도는 기자라는 인물과 箕子東來說을 부정하고 설령 그 시조가 箕子라고 하더라도 '箕는 姓이 아니라 封國名이며, 子는 이름이 아니라 爵名이다' 馬融의『史記集解』기록을 근거로 든 것이다.
라고 보았다. 따라서 『魏志』「東夷傳」의 ‘箕子의 후손인 準王이 衛滿에게 정권을 탈취 당한 후 海中으로 도망하여 그 스스로 韓王 이라고 칭했다’라는 기록의 海中을 한반도 남한지방으로 비정하고 가장 유력한 근거로 後漢 시대의 王符가 지은 『潛夫論 』 “周나라 宣王 때 韓侯가 燕나라 근처에 있었는데 그 후 韓의 서쪽에서도 姓을 韓이라 하더니 衛滿에게 망하여 海中으로 옮겨갔다” 라는 기록인데 이 기록에서 보이는 韓侯가 바로 準王이라는 것이 이병도의 해석이다.
을 들어 準王의 성이 箕가 아니고 韓이므로 ‘韓氏朝鮮’이라고 부름이 마땅하다 라고 하였다. 이병도, 「제 2장 ‘箕子朝鮮’의 正體와 所謂 ‘箕子八條敎’에 대한 新考察」, 『한국고대사연구』, 博英社, 1976, pp. 47~51.

김정배는 箕子라는 실체 자체를 부인하고 그로 인하여 생기게 된 역사적 공백을 ‘濊貊朝鮮’으로 대체할 수 있
참고문헌
李丙燾, 「제 2장 ‘箕子朝鮮’의 正體와 所謂 ‘箕子八條敎’에 대한 新考察」, 『한국고대사연구』, 博英社,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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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린, 「제 2절 고조선의 건국과정을 반영한 단군신화. ‘기자’가 고조선에 왔다는 설에 대한 비판」, 『조선전사』2 고대편,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79.
金貞培, 「古朝鮮의 再認識」, 『한국사론』14, 국사편찬위원회, 1984.
尹乃鉉, 「箕子新考」, 『한국사연구』41, 한국사연구회, 1983.
이형구, 「渤海沿岸 大凌河 流域 箕子朝鮮의 遺蹟․遺物」, 『古朝鮮과 扶餘의 諸問題』, 신서원,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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