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작품] 정과정(鄭瓜亭)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1.01.05 / 2019.12.24
  • 16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1,4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목차
☺ 목 차 ☺

Ⅰ. 서론

Ⅱ. 본론

1. <정과정> 의 소개
2. <정과정> 의 어석 연구
3. <정과정> 의 어조
4. <정과정> 의 명칭
5. <정과정> 의 역사적 배경
6. <정과정> 의 형식

Ⅲ. 결론

Ⅳ. 참고 자료 및 참고 문헌

본문내용
5. <정과정> 의 역사적 배경

1) 작자와 창작 배경
<정과정(鄭瓜亭)> 은 다른 고려가요와는 달리 작자가 명백하게 밝혀져 있는 노래 현전하는 고려가요 가운데 가장 분명하게 작자가 밝혀진 우리말 시가로는 정과정이 유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며,『고려사』 정과정은 內侍郎中 정서(鄭敍)가 지은 것이다. 敍는 瓜亭이라 自號했고, 外戚과 혼인을 맺어 仁宗의 총애를 받았다. 毅宗이 즉위하자 그의 고향인 東萊로 돌려보내면서 이르기를「오늘 가게 된 것은 朝廷의 의논에 몰려서이다. 머지않아 소환하게 될 것이다」. 정서는 동래에 오래 머물러 있었으나, 소환명령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거문고를 잡고 이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가 극히 悽婉하다. 이제현(李齊賢) 이 시를 지어 이 노래의 뜻을 풀이하였다. “임 생각에 옷을 적시지 않은 적이 없으니, 봄 산의 뻐꾹새와도 같다. 옳고 그른 것은 사람들이여 묻지 마라. 이지러진 달과 새벽 별만은 알고 있을 것이다.”
에는 다른 문헌에 비해 비교적 작가인 정서나 <정과정> 에 대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기록들에서도 정과정의 작가를 정서로 밝혀 놓고 있으며, 학계에서도 정과정을 정서의 개인 작품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정무룡,『정과정』, 경성대학교 한국학 연구소, 1998 재인용 : 정과정이 공동작이라고 보는 견해에서는 제 4행까지를 정서의 창작으로 보고 나머지는 후대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추가된 것으로 보는데 그들 역시 정과정을 지은 주체가 정서라는 데에는 공감한다.

이 작품의 작자 정서(鄭敍) 는 호가 과정(瓜亭) 이다. 그는 상국공(相國公) 의 사위이자 그의 처형은 인종의 비(妃) 공예태후(恭睿太后) 이며 따라서 정서는 인종과 동서간이며, 의종 ․ 명종 ․ 신종 등의 이모부가 된다. 최철,『고려 국어가요의 해석』,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6, pp. 175-186
그러나 그는 의종 5년에 대령후(大寧侯) 와 사귀어 그 집에서 놀았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아 그 해 5월 25일에 동래로 귀양 가게 되었다. 그 뒤 그는 몇 차례의 사면 의종 8년 4월에 사를 내린 이후 10년 4월과 8월, 18년 4월, 22년 4월, 23년 4월에 걸쳐 크고 작은 특사와 석방의 조치가 있었다.
에도 풀려나지 못하다가 의종 25년 8월에 정중부(鄭仲夫) 의 쿠데타에 의하여 의종이 밀려나고, 명종 1년 10월에 대사령(大赦令) 이 내려지고 나서야 20여 년간의 귀양살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처럼 명문가 출신이자 왕실의 외척이며, 의종의 이모부였던 정서가 20여 년간이나 귀양살이를 해야만 했던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인종은 5남 4녀를 두었는데 그 중 장자인 의종이 태자가 되는 것은 당연했으나 차자인 대령후가 덕망이 있고 도량이 넓어 인종과 왕비는 그를 태자로 삼으려 하였다. 그러나 태자시강으로 있던 정습명이 극간하여 의종이 보위에 오르게 되었고, 이 때문에 형제간에 시기가 많았다고 한다. 의종에게 아우인 대령후의 존재는 매우 불만스럽고 거추장스러운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정서가 대령후와 가까이 지내는 것을 보고 조정 논의를 핑계 삼아 그를 귀양 보낸 것이다. 정재호,「<정과정> 에 대하여」,『고려시대의 가요문학』, 새문사, 1987, p.183.
따라서 “머지않아 소환하게 될 것이다.” 던 의종의 언질은 이모부인 정서의 서운함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궁색스런 빈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 의종이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려고 했거나 과연 정서를 구하려는 의지가 있었고 공예 태후의 존재를 염두해 두었다면, 20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귀양을 보낼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철, 앞의 책.

요컨대 정서는 대령후와의 관계 때문에 희생된 인물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으며, 그의 노래에서 “過도 허물도 千萬 없소이다” 라고 변명하며 억울해하고 있다. 정서의 입장에서는 모반을 꾀한 일도 없으니 당연한 말이나, 당시의 정국을 그가 너무 쉽게 생각하여 사려 없이 순진하게 대한 데에도 원인이 있고 보다 근원적으로 “성질이 경박하고 재예(才藝) 가 있었다” 는 진중치 못한 그의 인물 됨됨이에 원인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정서가 순전히 정치적 희생물이 된 것은 사실이나 속사정을 살펴보면 유배 원인을 의종과 추종 세력의 참언에만 돌릴 수 없는 복잡한 사연이 있는 것이다. 박노준,『고려가요의 연구』, 새문사, 1995, p. 352


2) 창작 시기와 장소
문헌 기록상으로는 정서가 동래로 유배당하여 노래를 지었다고 간단히 언급하고 있을 뿐 그
참고문헌
Ⅳ. 참고 자료 및 참고 문헌

☞ 권영철, 「정과정가 신연구」,『연구논문집』, 대구효성가톨릭대학교, 1968
☞ 김명준,『고려속요집성』, 도서출판 다운샘, 1993
☞ 김명준,「「鄭瓜亭」과 鄕歌의 距離」,『우리 文學硏究』제14집, 우리문학회, 2001
☞ 김쾌덕, 『고려속가의 연구』, 국학자료원, 2006
☞ 박노준,『고려가요의 연구』, 새문사, 1995
☞ 박병채,『새로고친 고려가요의 어석연구』, 국학자료원, 1994
☞ 이승명,『정과정의 종합적 새 연구』, 이회, 2003
☞ 장덕순,『한국문학사』, 동화출판사, 1980
☞ 정무룡,『정과정』, 경성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98
☞ 정무룡,「<鄭瓜亭>의 原狀的 形式 試考」, 경성대학교 논문집, 1996
☞ 정병욱,『고려시대의 가요문학』, 새문사, 1982
☞ 정병욱,『한국고전시가론』, 신구문화사, 1982
☞ 정재호,「<정과정>에 대하여」,『고려시대의 가요문학』, 새문사, 1987
☞ 조동일,『한국문학통사 1』, 지식산업사, 1990
☞ 조윤제,『한국문학사』, 탐구당, 1987.
☞ 최용수,『고려가요연구』, 계명문화사, 1993
☞ 최철,『고려 국어가요의 해석』,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6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고전시가] 고전시가 심층 분석
  • 고전시가 심층 분석Ⅰ. 서론Ⅱ. 고전시가 형식1. 운, 리듬, 율격1) 운2) 리듬3) 율격2. 시행 및 시편 구성1) 시행2) 시편3. 음악과의 관계Ⅲ. 고전시가와 설화Ⅳ. 작품분석1. 고대가요1) 구지가2) 정읍사2. 향가1) 서동요2) 처용가3. 고려가요4. 고려 속요1) 정과정2) 가시리3) 동동4) 청산별곡5) 서경별곡5. 경기체가6. 시조1) 이화에 월백하고 ~이조년2) 이 몸이 죽어죽어 정몽주3) 방안에 혓는 촉불 ~4) 어져 내일이야 ~5) 동짓 기나긴 밤에

  • [국문학] 향가 레포트
  • 정과정이나 정철의 양미인곡과 일맥 상통하는 바가 있다. 이 작품에는 죽지랑에 대한 사모의 정과 인생 무상을 느끼는 서정만이 나타날 뿐 주술성이나 종교적 색채가 다른 작품에 비해 적다는 점에서 시가의 순수 서정화에 진전을 보인 작품이라는 의의를 갖는다. (4) 처용가(處容歌) : 처용(양주동 해독)東京明期月良 서울 밝은 달밤에夜入伊遊行如可 밤늦도록 놀고 지내다가入良沙寢矣見昆 들어와 자리를 보니脚烏伊四是良羅 다리가 넷이로구나.

  • [고려가요] 처용가
  • 시가 중에서도 가장 함축성이 있다 할 수 있고, 이러한 함축성은 시와 산문(散文)을 구분하여 주는 좋은 요인이 되기도 한다. 현전하는 가요 외에도 가사는 전하지 않고 《고려사》등에 작품 이름만 전하는 것을 비롯하여, 고려시대의 문학을 대표할 만한 시가 작품이 많았으리라고 추측되나, 이제 그 자취를 찾을 길은 없다. 3. 연구 방법) 황패강.윤원식, 韓國古代歌謠, 1991, 새문사고려 가요는 조잡한 형태를 지닌 백성들의 노래였으나 궁중으

  • 고려시대 소악부
  • 작품집, 문예출판사, 1990이제현 작품집 길에서 띄우는 편지, 보리출판사, 2005李齊賢 閔思平의 小樂府에 관한 硏究, 박현규, 한국한문학회, 1995번역시가로서의 소악부 형성 과정과 번역 방식 고찰, 김혜은, 한국시가학회, 2011益齋 「小樂府」 論, 박성규, 단국대학교 동양학 연구원, 1995益齋 小樂府와 及庵 小樂府의 제작시기에 대하여, 성호경, 일지사, 1990익재(益齋)급암(及菴) 소악부(小樂府)의 제작과 그 배경에 관한 고찰, 황병익, 韓國民俗學會,

  • 향가의 쇠퇴와 소멸 시기에 대한 고찰
  • 정과정곡(鄭瓜亭曲)>,등을 과도기 작품으로 보아 고려전이게 향가에서 고려가요로 갈래의 전환이 이루어 졌다고 보는 입장 조윤제, 3판, 탐구당 1987.조동일, 3판, 지식산업사, 1994. 과 경기체가가 유행한 고종 조에 이르러 향가가 소멸했다는 입장 김동욱, , , 을유문화사, 1961. 그리고 시조가 발생할 때때까지 향가가 지속되었으리라 보는 입장 황패강, ,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