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청산] 친일파의 형성과 친일문학 및 친일파 청산과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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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친일파의 형성
Ⅲ. 친일문학
Ⅳ. 친일파 청산
Ⅴ. 친일인명사전 편찬
Ⅵ. 결론
본문내용
해방되고 나서도 한민족은 엄청난 시련을 겪어 왔다. 남과 북으로 갈라졌고 동족 상잔의 전쟁까지 치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전쟁을 거치면서 분단체제는 더욱 공고화되어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 그 후 장기집권, 군사쿠데타, 유신체제, 군사정권 등 독재권력과 통제체제로 자유를 억압하고 기본적인 인권을 말살하면서 굴종적인 삶을 살도록 하였다.
민족정기가 제대로 서지 않는가 하면, 정의와 도덕에 대한 불감증으로 탈법과 탈세 등의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금전만능과 졸부적인 천민자본주의가 판을 친다. 맹목적인 권력지상과 권력집중의 사회구조와 정신구조가 짜여져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발전을 저해하였다. 이러한 병적인 풍조와 구조는 반민주적이고 반시민적인 사회를 만드는 토양이 되었다. 이것이 곧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ꡐ친일파ꡑ를 척결하지 못한 데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하여도 지나치지 않다.
과거 한국을 이끌어 왔던 부일 협력자들은 1930년대부터 일본제국주의로부터 철저히 황국신민의 교육을 받은 자들이다. 그 교육은 반민족적인 ꡐ한국인의 일본인화ꡑ 교육이었고, 반시민적인 전체주의 교육이었다. 기본적 인권의 보호와 신장을 목적으로 하는 법의식이나,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본질로 하는 근대 시민사회의 원리를 체득할 수가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들에게 민족주체성이나 도덕과 정의감이 존재할 수가 없다. 오로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장악하고 돈을 버는 ꡐ입신출세ꡑ의 요령이 있을 뿐이었다. 이들에게서 자유주의, 민주주의, 법치주의는 도저히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해방되고 나서도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동서냉전 구조와 남북분단 체제가 형성?고착화하는 과정 중에서 슬금슬금 부활하여 드디어 국가권력까지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냉전과 분단이라고 하는 외적 조건이 이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때문에 그들에게서 민족통일을 기대한다는 것은 산에서 고기를 잡으려는 짓에 다름 아니었다.
숨통이 꼭 꼭 막히던 70년대부터 ꡐ친일파ꡑ 청산의 주장은 민주화 운동 세력을 중심으로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박정희 독재권력의 본질과 그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에 있어서, 당시 지도층의 부일 경력은 주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었다. 반인륜적인 고문 제도도 일제의 그것을 답습한 것이었고, 새마을 운동과 새마을 지도자 육성책은 1930년대 일제의 식민지 통치정책을 모방한 것이었다. 유신체제는 40년대 태평양 전쟁기에 한국인을 전쟁의 소모품으로 강제 동원하기 위하여 구축된 군사병영적인 통제체제였고, 근대화정책은 괴뢰 만주국의 발전모델을 흉내낸 전체주의적인 개발정책이었다. 그들이 청소년기에 체득한 지식을 해방된 조국에서 그대로 적용하여 써먹은 것이었다. 그들이 창출한 파쇼적인 권력 집중과 독재 권력은 정치적?경제적 자유주의와 전면적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정치적 민주주의와 건전한 자본주의의 발전을 저해한 것은 잘 알려진 그대로이다. IMF 체제라는 국가경제의 위기도 길게 보면 실로 여기에 원인이 있다고 하여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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