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 시조의 발생 시기-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발성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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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고려시대 발생설
1) 고려 중엽 발생설
2) 고려 말엽 발생설
3. 조선시대 발생설
1) 15세기 발생설
2) 15세기 말엽 발생설
3) 16세기 발생설
4. 제(諸)견해의 한계와 해결 방향
5. 결론
□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서론

이 연구는 시조가 국문학사의 어느 지점에서 출현하여 그 독자적인 형태를 발전시켜 왔는지를 밝힘으로써, 시조 갈래가 한국문학사에서 갖는 위치를 살피고 국문학계에서의 그 정체성을 재구해보고자 한다.
시조의 기원에 대한 논의는 192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엔 육당본(六堂本) 『청구영언(靑丘永言)』을 근거로 시조의 기원이 삼국시대에서 출발한다는 견해가 있었으나 이는 민족주의적 연구태도의 일환으로 시조를 국민문학으로 부각시키는 과정에서 시조가 오랜 세월에 거쳐 장구히 발달해온 장르임을 강조하기 위해 무리하게 논지를 전개한 면이 없지 않다. 따라서 이후 삼국시대 문학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이태극의 논의와 같이 시조의 발생을 고려 초로 늦추어 보는 시각이 우세하게 되었다.
이후 조윤제가 제시한 '고려 중기 발생, 고려 말엽 형태 완성'설은 그 논거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통설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최동원 역시 고려시대 발생설을 주장하였는데, 속요의 분단이 시조의 기원이라는 전제 하에 '고려 말기 발생, 조선 초기 형태 완성'을 주장하였다는 점에서 앞선 논의와는 차이가 있다. 또 이러한 논의에 반발하여 조선시대 발생설도 지속적으로 제시되어왔는데, 시조의 조선시대 발생 가능성을 제기한 이능우의 견해 이후로 조선시대 발생설은 대략 권두환의 15세기 발생설과 성호경의 15세기 말엽 발생설, 16세기 발생설을 주장한 김수업과 강전섭의 견해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권두환(1997). 「時調의 發生과 起源」. 국어국문학회편. 『고시조연구』, 태학사.
김병국(1986). 「시조의 발생시기」. 張德順 외.『韓國文學史의 爭點』, 집문당.
김수업(1978). 「시조의 발생 시기에 대하여. 조규설.『시조론』, 일조각.
김태준(1971). 『별곡의 연구』(1~13), 동아일보.
성호경(1986). 『조선전기시가론』, 새문사.
───(2006). 『고려시대 시가연구』, 태학사
───(2009).『한국시가연구의 과거와 미래』, 새문사.
정병욱(1980). 『한국고전시가론』, 신구문화사.
조윤제(1948). 『한국시가사강』, 을지문화사.
───(1963). 『한국문학사』, 동국문화사.
최동원(1980). 『古時調論』, 삼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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