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개론] 고려속요-남녀상열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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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①쌍화점(雙花店)
ㄱ.원문해석
ㄴ.내용과 시대적 배경
ㄷ.쌍화점과 삼장(三藏)

②만전춘 별사(滿殿春別詞)
ㄱ.원문해석
ㄴ.내용연구

③남녀간 정사를 솔직하게 표현하게 된 까닭


Ⅲ.결론


Ⅳ.참고문헌

본문내용
ㄴ.내용과 시대적 배경
고려시대는 남녀관계가 자유로와 냇가에서 남녀혼욕이 가능했을 정도였다. 즉, 서긍이 지은 『고려동경』권19 민서조에 보면, “남자와 여자의 혼인에도 경솔히 합치고 헤어지기를 쉽게하며, 전례를 본받지 않으니 실로 웃을일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같은 책 권23 잡속2 한탁조에는 “고려인들은 여름이면 날마다 두 번씩 목욕을 하는데 남녀 구별없이 의관을 언덕에 놓고 벌거벗되 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1연에서 보면 중국인이 경영하는 만두집에 부녀자가 만두를 사러 갔는데 색목인인 회회아비가 여자의 손목을 잡은 것이다. 회회아비는 그 당시 원에서 다른 민족보다 우대를 받았던 부류였는데,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부녀자가 손목을 잡힌 것이다. 원래 여성이 남성에 의하여 강압적으로 손목을 잡혔다는 것은 단순히 손목을 잡히는 행위 이상의 큰 의미를 띠는 것이다. 이는 어느 시대 사회에서나 내밀한 사랑의 감정을 내세운 남성에 의하여 여성이 사랑의 고백을 듣거나, 혹은 성적으로 희생을 강요받거나 유린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내국인에 의해서가 아닌, 회회아비에 의하여 고려의 여성이 성적으로 유린을 당한 것이다. 이와 같이 1연은 고려 여인이 만두집에 가서 외국인인 회회아비에 의하여 성적수모와 희생을 당한 사실을 암유적으로 폭로하면서 희학적(戱謔的)으로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2연에서는 삼장사에 공덕을 닦기 위하여 연등하러 간 부녀자의 손목을 그 절 사주가 잡았다는 내용이다. 고려후기에는 승려의 성적 타락이 빌미가 되어 불미스런 일이 많았으므로 사찰에 부녀자나 규수들로 하여금 공을 빌러가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고려 공민왕 때에는 승려 영욱이 남의 처를 간음하였으므로 대간이 이를 벌하고자 하니 그가 이르기를 나를 벌하고자 한다면 결국 종문을 해체시켜야 하며, 또 나와 같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했는데 이로 보아 당시 승려들이 성적으로 얼마나 문란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3연에서는 우물의 용에 비유될 만큼 못된 왕 등 특수 상층계층이 물을 길러 간 여인의 손목을 잡았다. 왕들의 성적 문란도 도를 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몽고의 습속이 고려 조정에 집중적으로 들어 온 고려후기인 원 복속기에 문란해진 성 윤리의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그 중의 하나가 충선왕의 후비였던 계국대장공주는 원 나라 진왕의 딸로 고려에 시집 왔으나 왕이 조비를 총애하자 친정의 힘을 이용하여 고려 왕실을 협박했고, 심지어는 내궁이나 신하들과 공공연히 통정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가 결국은 왕들의 문란한 행동을 더욱 부추기는 역할을 했으리라 보인다. 왕들 중에도 충혜왕의 음란은 극에 달해서 일반 부녀자는 물론이고 왕의 서모인 수비 권씨를 간음하기도 했다. 이런 형국이니 고려후기 사회에서 지배계층에 의하여 자행된 고려 여성의 성적 폐해가 어떠했는지 추단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4연에서는 술을 사러 간 여인의 손목을 술집아비가 잡은 것이다. 술집아비로 대표되는 무뢰배들에 의한 비행도 잦았다. 그 좋은 예가 충숙왕 때 원윤 신여계의 아내 김씨가 불량배에 의하여 납치된 사건과 충혜왕 때 불량배 봉골의 무리가 주부 공보의 집에 들어가 그 아내를 강간한 사건 등을 들 수 있다. 벼슬아치의 아내들도 불량배로부터 이러한 수모를 당할 지경이니 일반 서민 여성들의 경우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참고문헌
김쾌덕. 『고려노래 속가의 사회배경적연구』. 국학자료원. 2001.
김수진, 『고려시대 여성 관인』, 부산여자대학교 사학회. 1993.
양주동, 『여유전주』, 을유문화사, 1954.
최미정 『고려속요의 전승 연구』. 계명대학교 출판부. 1999.
최철. 『고려국어가요의 해석』.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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