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일본사] [서평]화려한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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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발명된전통
2.국가의례와정치적권력
3.우리나라의례와권력형성
4.결론
본문내용
메이지 유신의 성공과 더불어 일본은 근대국가로의 진입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천황을 중심으로 한 패전트와 각종 황실의례를 창조하고 확립하면서 ‘황민’들에게 일련의 동일한 의식들을 가지게 했던 것도 이러한 의도를 위한 노력들 중에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치적 권력자들은 메이지 유신 이전에는 대중들이 강력한 국가의식이나 국가의 상징으로서 천황에 대한 확실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천황의 기존 이미지로는 국민들의 단합과 정부에 대한 충성을 이끌어 내기 힘들다고 생각하고, 천황이 ‘국가와 국민의 통합의 상징’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가지게 하여 근대적 내셔널리즘을 형성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으로서 근대 일본에서는 전통이 발명되었다. 새로운 전통을 확립하기 위해 연설이나 포고문을 활용하기도 했고, 국가적 의례와 국경일 제정을 통해 국민들이 통일된 시간 선상에 있다는 관념을 심어 주기도 했으며 천황과 가족, 그리고 정권의 권력자들을 대중 앞에 직접 보이는 황실패전트를 거행하기도 했다. 또한 이러한 가시적인 수단과 함께 물리적 풍경 위에 자리 잡은 물질적 기호들, 즉 신사나 공공장소들을 변형시키면서 국토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발명된 전통을 확립하고자 하기도 했다.

근대 일본에서 권력을 창출해내기 위한 국가적인 의례의 발명과 시행은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가족의 범위를 확장한 내셔널리즘의 형성과 관련하여 발전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적 단계로의 진입에 있어 외세의 영향력 속에서 기형적인 발전을 거듭했기 때문에 일본의 근대성 확보의 과정과 비견할 만한 의례 형성을 통한 권력 확보 과정은 찾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대적으로 근대 일본의 발명된 전통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국가적 의례 시행을 통해 국민을 통합하고 권력을 형성하려는 목적을 가지는 지배 엘리트들의 생각은 역사적으로 꾸준하게 존재해 왔다는 사실에서 볼 때 비록 근대적이냐 아니냐의 논쟁을 떠나서 비교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종교와 정치가 상호 필수불가결한 관계를 형성하여 종교를 통한 정치권력의 확보와 정치적 보호를 통한 종교의 전파가 동시에 이루어 졌다. 일본의 천황 역시 종교적 시각에서 본다면 고대 신의 자손으로 묘사되어 민중들 사이에 신격화되었던 존재였다는 점을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유사성에 착안하여 우리나라의 국가의례와 근대 일본에서 발명된 전통에 의해 형성되는 정치권력을 살펴볼 필요성을 생각해 보았다. 또한 대한민국의 성립이 비록 시간적으로는 현대적 사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국 근대사의 굴곡으로 인해 의례적 기제를 통한 근대적 권력의 상실을 현대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으로 만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 정부의전편람, 행정자치부 의정국 의정과(편), 대한민국정부, 1999
● 한국 중세의 불교의례 : 사상적 배경과 역사적 의미, 김종명, 문학과지성사, 2001
● 한국 의례문화 연구사 및 연구방법, 이은봉 등 공저,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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