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학의 이해 - 나치수용소를 중심으로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06.04.03 / 2019.12.24
  • 11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est1est2est3est4est5 1(구매금액의 3%지급)
  • 1,0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목차
연구 현황

수용소, 수용소문학, 수용소 용어 정의

분석대상으로서의 작품

공포의 공유? : 수용소의 역사적, 문학적 해석과 관련된 텍스트 내외적인

유사성과 차이점
1)장르의 문제
2)사실적인 것과 소설적인 것(le v?ridique et le romanesque)
3)역사와 허구(Histoire et fiction)
4)언어의 문제

결어(結語)
본문내용
서구사회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스탈린 치하 및 나치 정권 하에서의 수용소 (집단수용소 camps de concentration, 학살수용소 camps d'extermination1))에 대한 철학적, 사회학적, 역사적 논의의 방대함은 비서구인에게 수많은 질문을 제기한다. 어느 정도 과장하자면 최근 허구 문학 쪽의 논의 중 수용소 문제가 차지하는 부분은 절대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앙드레 말로 Andrc? Malraux의 『모멸의 시대 Le Temps du m?pris』, 『알탕부르의 호도나무 Les Noyers de l'Altenburg』에서부터 클로드 시몽 Claude Simon의 『아카시아 L'Acacia』까지, 마르그리트 뒤라스 Marguerite Duras의 『고통 La Douler』에서 클로드 란츠만 Claude Lanzmann의 영화 「쇼아Shoah」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 La Promesse de l'aube』, 『징기스 콘의 춤』에서부터 조르쥬 페렉 Georges Perec의 저서 『W혹은 어린 시절의 추억 W ou le souvenir d'enfance』 혹은 파트릭 모디아노 Patrick Modiano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용소 관련 저술은 쇼아 Shoah에 대한 강박 관념이 서구 사회에서 얼마나 지속적이고도 치열하게 전개 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잘 보여준다. 프랑스 내에서조차 쇼아에 대한 역사 쪽의 논의는 이 주제에 대해 EHESS가 최초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 1982년 이후 본격화되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이 문제는 프랑스 사학계에서도 오랫동안 소홀히 취급당한 주제 중의 하나였다. 이 문제에 대한 접근은 우리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게 해준다.
1. 영미 문학권의 쇼아에 대한 본격적 논의에 비해 프랑스 쪽의 접근은 왜 그다지 빈약한가? 이 현상은 상대적으로 전쟁문학에 자리를 부여하기에 인색했던 프랑스 비평의 전통 때문인가? 피에르 쟈나 Pierre Jana는 『르뷔 데 시앙스 위멘느 Revue des Sciences humaines』'전쟁 속의 작가들' 특집호2)에서, 이 특집이 "프랑스에서 출간된, 전쟁문학을 조망하는 거의 최초의 시도"라고 지적하고 있다.
2. 수용소에 대한 대부분의 저술이 유태인에 의해 씌어졌다면 이 저술들이 '외부'의 독자에 의해 이해되어질 수 있는가? 한 집단의 정념을 대표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이 저술들이 보편성을 띨 수 있는가 아니면 '닫힌 독서'를 요구하고 있는가?
3. 수용소 작가들은 어떤 범주에 의거해 분류되어질 수 있는가? 각 작가들이 보여주는 유사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역사상의 수용소가 '문학화'되어 있다면 그 작품들 속에서 수용소는 어떻게 재현되어 있는가?
하지만 최근 주제들에 대한 여느 논의가 그렇듯, 이러한 연구 역시 많은 문제점들을 제기한다. 당대의 역사에 대한 철학적, 정치적 성찰과 밀접하게 연결된 수용소문학은, 샤를로트 바르디 Charlotte Wardi가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3) 지금껏 문학에 의한 역사의 재현 시 전혀 문제시되지 않았던 윤리적, 미학적 문제들을 작가에게 제기하고 있으며, 아직도 그 평가가 잠정적인 치근 역사를 소설화하고 있는 경우, 역사적 사실을 허구적 창조와 뒤범벅시켜버리는 소설의 특성 때문에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또한 피수용자들이 직접 체험한 수용소의 문학화는 아직도 생존해 있는 역사의 '희생자들 victimes'들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마크 페로 : 『역사와 영화』, 주경철 옮김, 까치, 1999.
이상빈 : "<쇼아>를 중심으로 살펴본 수용소 영화 분석", 『역사와 문화』, 제2호, 2000년, 문화사학회, pp. 55-81.
이상빈 : "로맹 가리의 『징기스 콘의 춤』을 통해 살펴본 수용소 현실과 허구", EU연구, 제7호, 2000년 10월,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학종합연구센터 EU연구소, pp.191-210.
BENSOUSSAN (Georges).- Ge′nocide pour me′moire : Des racines du de′sastre aux questions d'aujourd'hui.- Paris : Editions du Fe′lin, 1989.- 262 pp.
CHEVRIE (Marc) et LE ROUX (Herve′).- "Le Lieu et la parole", entretien avec Claude Lanzmann, Cahiers du cine′ma, no 374, juillet-aou^t 1985.
CUAU (Bernard), DEGUY (Michel) et autres.- Au Sujet de Shoah.-Paris : Belin, 1990, p. 307 ; Les Temps Modernes, no 395, juin 1979, p. 1898.
HILBERG (Raul).- "La Communaute′ juive voulait 'limiter les pertes'", Le Monde des Liveres, 25 fe′vrier 1994, p. VI.
LANZMANN (Claude).- "Le Non-Lieu de la Me′moire", L'Arche, no 338, mai 1985, p. 52.
RIGNEY (Anne).- "Du re′cit historique : La prise de la Bastille selon Michelet", Poe′tique, no 75, septembre 1988, pp. 267-278.
SULEIMAN (Su
자료평가
  • 자료평가0자료평가0자료평가0자료평가0자료평가0
  • 꽤 괜춘해요 - A+받았답니다!
  • niceo***
    (2009.12.11 18:05:51)
회원 추천자료
  • [철학]포스트 모더니즘에 관한 철학적 이해
  • 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에 관해서는 졸고(1999a)를 참조. 본 졸고에서는 주로 후설에 있어서의 타자구성이 갖는 유추이론에 대한 문제점을 비판하였다.. 타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사물들처럼 타자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이해자체를 이해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종전의 서양철학의 전통과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새로운 논의를 전개시킨다. 타자를 이해하는 출발은 타자와 말

  • [비교사회학] 동유럽의 국가사회주의
  • 중심으로 한 소수민족의 자주권 운동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점차 중도세력이 약화되고 있으며 소련사회는 보수-혁신의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문제는 이들 양대 세력, 특히 혁신세력이 비록 국민의 20퍼센트 지지를 받고 있다 할지라도 분열된 상태이어서 고르바초프가 이들과 손을 잡고 싶어도 제휴할 상대가 없었던 것이 보수 쿠데타 직전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전국적인 기반을 갖추고 있는 정치단체는 공산당을

  • [독일어권 지역학] 독일 적군파(Der Baarder Meinhof Komplex, RAF) - 혁명을 꿈꾸었던 테러리스트
  • 나치청산을 하지 못했고 베이비 붐 세대인 학생들을 수용할만한 교수와 시설이 부족한 실정에이르렀다. 반면에 대학은 나치 이전의 권위를 되찾기에만 몰두하고 대학의 개혁에 관심을 갖지 아니하며 학생들이 불평을 하게 되었다. 이때 출현한 것이 SDS 으로서 그 회원은 베를린 자유대학 (FU)의 경우 약 2500명 정도였는데 이들은 이때부터 대학개혁의 가장 큰 세력으로 등장하였다.우익신문 빌트지는 당시 베를린 학생회장이던 루디 두취케(Rudi Dutschke)

  • 프랑스 문화 - 나치 점령하의 프랑스와 비쉬정권
  • 프랑스를 떠나면 다시는 프랑스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유일한 결론이었다. 휴전파들을 중심으로 내각을 구성한 페탕은 수상으로 지명받은지 몇시간 이내에 독일에 대하여 휴전을 제의하였다. 독일로서는 앞으로 남은 영국과의 전쟁을 예상하여 영국의 고립을 가져오고 프랑스의 함대와 식민지를 중립화시키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하여 지나치게 가혹한 항복조건 보다는 프랑스 정부의 주권 존속을 인정하고 부분적으로 점령을 실시하는 안을 받아

  • 독일 영화사 표현주의와 나치즘을 중심으로 독일 영화사 개괄 독일 표현주의 영화
  • 나치 독일과 거래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 결과 1930년대 중반에 이르면서 수입과 수출이 모두 뚜렷하게 감소했고 그와 동시에 국내 영화 제작비는 급속하게 증대되었다. 정부는 영화 제작의 지원이냐 아니면 영화 산업의 국유화냐 하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고 나치는 더 커다란 통제가 가능한 국유화를 선택했다.소련이 사기업을 공공연하게 장악하는 방식으로 국유화했던 것과는 달리 나치는 세 개의 중심 영화사(UFA, 토비스, 바바리아)와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