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문명의 비밀 영웅들의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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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문명의 비밀 - 영웅들의 문명
기원전 3세기에서 2세기 지중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처럼 고대인들이 쓴 위대한 책들에서는 용감한 지도자과 기억할 만한 행동 영광의 도시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스와 조금 나중에 나올 로마 같은 웅장한 문명들은 초기에 전설적인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들은 초기에 영웅들을 자신들의 선조로 여겼다. 하지만 그들은 이야기 속에 생생하고 극적이었던 도시들을 보지 못했다. 모두 파괴되고 버려지거나 천년왕국의 꿈으로 전락한 것이다. 에블라 트로이 또는 미케네 같은 도시는 책속에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책들을 바탕으로 모험적인 고고학자들은 그들을 찾으러 나가 놀라운 역사적 증거와 해아릴수 없는 보물들을 발굴해 냈다. 지금부터 유명한 전설의 현장을 찾아가 영웅들의 문명의 비밀을 밝히는 한 남자의 꿈을 쫒아가 보자.
고대에 대한 관심 그리고 조상에 역사에 대해 배우고자 하는 욕망은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에 생기를 주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도 역시 자신들의 조상에 대해 연구하기를 즐겼다. 그들의 관심은 기원전 2~3세기 문화와 도시에 집중되어있다. 그리스와 로마 역사가들이 관심을 두었던 고대 문명들은 나일 강의 이집트 문명,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의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문명, 그리고 그리스의 헬레니즘 이전의 사회, 즉 크레타 섬의 미노스 문명과 그들의 힘을 물려받은 펠레포네소스의 미케네 문명들이다. 이집트 신비와 매력은 늘 강한 끌림을 주었다. 파라오 시대는 기원전 2세기에 사라졌지만 그 영광스러운 과거의 흔적들은 아직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사월에 기둥에 새겨진 비문에는 화려한 흔적들이 기록되어 있다. 역사가들은 칼락 사원 기둥에 새겨진 위대한 이집트에 파라오 투트모스(Thutmosis) 3세에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투트모스는 기원전 15세기 근동 지역을 정복하기 위해 엄청난 군사를 조직했다. 하지만 투트모스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쪽에 잇던 고대 바빌로니아의 도시들이 이미 역사 속에 묻여버린 장엄한 옛터가 되어있었다. 이 유령 도시들 중에서 특히 역사가들의 눈길을 끈 곳이 바로 에블라(Ebla) BC 2700년 경부터 BC 2240년까지 시리아의 알레포 남서쪽 53Km 지점에 있었던 고대 도시국가.
이다.
에블라는 유프라테스 강 쪽에 전설적인 아시리아 도시이자 중요한 고대왕국의 수도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옛터는 묻히고 인간의 기억 속에서 이 도시는 모두 지워지었다. 칼락의 비문을 제외하고 에블라에 대해 알려진 것은 성경의 문구뿐이었다. 한번은 어떤 농부들이 밭을 갈다가 웅장한 부조를 발견했다. 이 소식은 이탈리아 고고학 팀의 관심을 끌었다. 그들은 도자기와 정교한 기구 그리고 도시에 이름이 똑똑히 새겨진 봉헌 비문이 있는 조각상의 몸통을 발굴한 바 있다. 에블라가 다시 제건 된 것이다. 가장 놀라운 발견은 1975년 이태리 팀이 찾은 기원전 2300년의 상형문자 원본이 있는 1700개의 서판이었다. 해석을 해보니 이것들은 상업적인 조약과 행정적 법적 자료들이었다. 역설적으로 그 엄청난 보물은 폭력적인 파괴행위 덕에 수천 년간 보존된 것이다. 기원전 2300년경 이 도시는 아카드의 사르곤의 공격을 받아 파괴되었다. 이 서판들은 왕궁내 기록 보관소에 잘 보관되어있었다. 궁전이 무너지면서 보존되기 알맞은 위치에 서판들이 보존되어 고고학자들이 정확히 그 내용은 복원할 수 있었다. 에블라는 고대 시리아 상업의 중심이며 그곳의 왕은 부유한 상인이었다. 왕에게 상업은 너무 중요해서 지중해나 동양으로 떠나는 대상들이 왕궁으로 초대되어 숙박하였다. 대상들은 이 도시에 돈줄이었고 왕의 권력을 유지해 주었다. 대상들은 서쪽으로 갈 때 바다를 이용하였다. 거기서부터 배를 이용해 서양으로 가는 화물을 옮기고 돌아가는 길에 무역 상품들을 실어왔다. 어떤 무역 상품 중에는 무기를 만드는 꼭 필요한 금속뿐만 아니라 도자기나 예술품도 있었다. 이당시 지중해로 항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가장 큰 배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다를 지배했다. 오랫동안 지중해를 지배한 민족으로는 유명한 미케네(Mycenae) 미케네문명의 중심지로 BC 1400∼BC 1200년경까지 번영을 누렸다.
인들이 있다.
미케네와 펠레스폰스를 따라 흑해로 가는 배를 약탈하는 나라가 있었으니 전설적인 트로이(Troy)였다. 미케네인 들은 이 도시와 맞서 싸웠고 이것은 역사학자들과 학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였다. 트로이는 번영하고 있는 헬레니즘 도시였다. 이곳은 고고학자들이 도전하고 싶은 가장 큰 미스터리이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이곳에 아름다운 보물에 반해 그것들을 찾기 위해 수년 동안을 애써왔다. 하지만 아름다운 헬레나와 용감한 헥터, 프리아모스 왕의 이야기도 늘 그 가슴에 남아왔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책인 호머에 일리아드에서도 트로이에 포위공격에 매우 잘 묘사되고 잇지만 그 위치는 불분명하다. 1868년 문화 애호가인 독일의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Schliemann, Heinrich) 미케네 문명과 트로이 문명의 발견자로 알려져 있다. 상인으로 보낸 시기가 길었기 때문에 참다운 고고학자로 인정받지 못하였으나, 지금은 그리스 선사고고학(先史考古學)의 시조로 보고 있다
은 무역으로 번 돈으로 자신의 평생의 꿈을 이루기로 결심한다. 바로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젊은 영웅들이 싸웠던 장소를 찾는 것이었다. 일리아드는 확실히 과학적인 논문은 아니었다. 기원전 5세기경 이것이 글로 써지기 전까지 이 이야기는 세대 간의 몇 백 년 전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슐리만은 책에 내용을 믿기로 했다. 많은 고고학자들이 트로이를 찾아 나섰고 터기에 도시 슈라칼레와 에진 사이에 잇는 무라바시라는 언덕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위치를 확신할 수 없던 슐리만은 그 단서를 찾기 위해 일리아드를 뒤졌다. 호머는 스케멘더와 히모에타라는 두 개의 강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호머에 영웅들 사이에 전투는 자연적으로 생성된 요새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작가의 상상에서 나온것일수도 있는데 슐리만은 그 이야기를 믿었다. 이 이살리크 언덕은 호머의 묘사와 꽤 비슷하다. 슐리만은 바로 발굴에 들어갔다. 그리고 결국 그는 이곳에서 트로이를 찾았다. 발굴 과정에서 폐허를 거듭하며 건설된 9개의 도시들이 들어났다. 2번째 층에서 슐리만은 놀라운 보물을 발견했다. 컵이나 잔들 무기들 금장신구 단추 등이 나왔다. 그는 자신이 프리아모스왕의 보물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이제 우리는 이 장신구가 일리아드에 나오는 트로이에 것이 아님을 안다. 슐리만은 직관으로 찾은 것을 현대 고고학에서 과학을 근거로 엄격한 분석을 해본결과 이것은 트로이 전 몇 세기 전에 것이며 기원전 3세기에 한 왕가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슐리만에게 이것들은 다름 아닌 프라이모스왕의 보물이었다. 그에 믿음은 그가 찾은 층에 잇는 화재 흔적을 바탕으로 한거시었다. 호머는 트로이가 미케네에 의해 불타 없어졌다고 했는데 미케네인 들은 10년의 포위 공격 끝에 트로이의 목마 전략 덕에 트로이에 들어갈 수 있었으며 오늘날 그 목마의 복제품이 현장에 서있다. 슐리만은 자신이 발굴한 요새화된 도시를 미케네인 에게 공격당했던 트로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기원전 3세기의 도시였다. 지름 120m 밖에 안됐던 벽으로 쌓인 이런 곳이 10년의 포위 공격을 견뎌냈을리도 프리아모스의 정원을 수용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신시내티 대학의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기원전 2세기 미케네 전쟁시대의 훨씬 강화된 방어벽을 세웠다. 아마도 기원전 1세기경에는 더욱 강화되었을 것이다. 일리아드에 내용과 최근 새로운 구역에 발견된 고고학 발견을 종합하여 전설적인 트로이에 대한 미케네 포위 공격을 재생할 수 있었다.
이것은 미케네 군인들이 바다에서 상륙하는 모습이다.
트로이를 향해오는 위협적인 전황들이 프리아모스왕과 백성들에게 상세히 보일 것이다. 발굴 현장에 나타난 9개의 층은 각기 다른 시대의 것으로 파괴와 재생을 반복한 것이다. 트로이는 해상지배 지역에서 중요 요충지이며 최고품질의 금제품 생산지로 유명했다. 그러니 자연히 주변국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을 것이다. 트로이를 점령하면 흑해와 동양으로 가는 상인 통행세도 없어질 뿐만 아니라 화려한 전리품도 얻을 수 있었다. 미케네인 들이 호머의 전설적인 전쟁을 일으킨 동기는 기본적으로 경제적이지만 호머는 아름다운 헬렌과 아켈레스와 헥터같은 영웅들을 극적이고 로맨틱한 사건으로 담아 설명했다. 트로이는 매우 부유한 도시였고 호머가 절대 정복할 수 없다고 찬양했던 거대한 벽에 둘러싸여 잘 방어되고 있었다. 그래서 10년의 가망 없는 포위 공격 끝에 미케네 군이 목마를 이용해 쳐들어가게 된 것이다. 트로이는 파괴와 재건을 9번이나 반복했고 로마시대에 마지막 재건을 하였다. 이런 화려한 도시의 계획을 짠 사람은 다름 아닌 알렉산더 대왕이었다. 미케네와 맞섰던 트로이의 숭고한 공적에 깊은 인상을 받은 이 젊은 지도자는 트로이에서 섬기던 아테네 여신에게 그에 무기를 바쳤다. 이리하여 트로이인 들은 그에게 그들이 호머의 전쟁에 사용했던 갑옷을 선사했다. 역사학자는 스트라보와 풀르타크는 알렉산더 대왕이 그 갑옷을 신성한 성인처럼 여겨 전쟁에 나갈 때마다 입었다고 한다.
1800년대에는 이 요새화된 도시를 중세의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고대 문명의 증거를 찾으려는 고고학자들은 이곳의 벽안 쪽을 파볼 생각을 안했다. 그러나 이곳에 위치적 특성이나 벽의 거대함은 슐리만에 관심을 끌었다. 그는 트로이를 찾아 펠레폰네소스의 이 지역을 지나가다 오늘날 아르고스 근처에 엄청난 벽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에 머릿속은 어리시절에 보이던 신화적인 이미지와 호머의 이야기들로 가득해져다. 거인 키클롭스가 지었으며 유일하게 벽으로 둘러진 티린스(Tiryns) 미케네시대에 미케네와 함께 번영한 유적으로, BC 1400년경부터 성벽으로 에워싸인 왕성(王城)이 이루어져 있었고, 그 이전의 신석기시대와 초기 청동기시대를 통하여 항상 취락(聚落)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어린 시절에 꿈을 간직해왓고 고대 책들에 내용을 심각하게 생각했던 경향이 있던 슐리만은 이 거대한 요새가 겨우 중세의 요새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바위들은 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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