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범의 유교 이해 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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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윤성범의 유교이해”에 대한 논찬
본 발제를 통해 윤성범이 이해했던 한국 종교들(샤머니즘, 불교, 유교, 천도교)에 대한 관점을 잘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그가 주창했던 ‘誠의 神學’을 중심으로 ‘유교이해’의 부분을 강조해서 다뤄 준 점은 그의 한국 종교에 대한 관심이 ‘유교’에 집중되어 깊이 천착되었음을 잘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 몇 가지 질문
1. 감리교 계통인 평양광성고보를 졸업(1934)하고 일본 도시샤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1941~45), 스위스 바젤(1954~60)에서 ‘칼 바르트’에게서 직접 수학(修學)한 윤성범(1916~1980)은, 사실상 서구 신학의 정수(精髓)를 온 몸으로 담지한 인물이었다. 유불선의 문화에 깊은 영향을 받았던 최병헌 같은 초기의 신학(종교학) 연구가들과는 그 사고의 틀 자체가 다름이 틀림없다.
결국 귀국 후 윤성범이 전개한 연구 활동의 방법론은 전형적인 ‘서구적 인식’에 근거한 것이었으며, 구체적으로는 ‘바르트적(的)’인 것이었다.그런 의미에서 발제자가 정리한 윤성범의 한국 종교에 대한 개관적 이해 또한 서구 종교학자들의 관점에서 비롯된 매우 교과서적인 서술에 머물고 있는 한계가 노출된다. 더 나아가 윤성범이 전개한 ‘기독교 복음의 土着化’ 또한 복음을 한국적 토양에 적응시켜야 한다는 강한 강박적 정서를 토대로 그 방법을 서구적인 것에서 빌려온 실수를 범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이 점은 감리교 계통의 대부분 토착화 신학자들이 지닌 공통점이다.) 윤성범 자신이 ‘복음의 土着化’를 설명하면서 그 작업을 “學的인 工作”이라고 표현 윤성범, “복음의 토착화에 대한 전이해”,「기독교사상」, 66호, 35. ; 발제문 5.
했던 것이 그것을 잘 드러내 준다.
말하자면 그는 한국적인 것, 특히 한국종교에 관심을 가졌지만 그 관심을 서구인들의 눈과 방법으로 접근하였던 것이다. 서구적 근대학문 방법론을 통해 특별히 유교라는 토양적 요소와 복음을 결합시켜 조화를 모색했던 것이다. 결국 그가 말하는 ‘전이해’라는 선행요구 수단 또한 그러한 ‘서구적 인식’의 계몽 과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는 그 과정을 “복음을 받아들인 경우에 있어서 얻어질 자기반성이요, 우리에게 맡겨진 책임이요, 의무”라고까지 말했다. 윤성범, “복음의 토착화에 대한 전이해”,「기독교사상」, 66호, 35. ; 발제문 6.
반성과 책임은 새롭게 서구적 학문을 습득한 자들, 즉 소수 엘리트의 몫이며 결국 담론의 협소함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한국 종교의 이해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 형성 내지는 진정한 의미의 주체성을 배제하는 모순적 결과가 초래된다. 즉, 당(唐)유학을 포기했던 원효가 화쟁(和諍)을 통해 불교의 주체적 토착화를 추구했던 것과는 그 정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성(誠)의 신학을 무리하게 성서와 신학적 개념에 끼워 맞춰 비교하는 식의 알레고리적(Allegorical)인 경향을 보이는 것도 서구적인 분류적 사고와 비교인식에서 비롯된 학문적 방법으로 보인다. 윤성범, “한국적신학”, 서울, 선명문화사, 1972, 17~18. 발제문, 8.
그러한 방식은 얼마든지 한국 내의 불교, 무교 등 타 종교에도 확장될 수 있으며, 그와 병행하여 유동식, 변선환 등의 연구가 추가적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본 세미나가 한국종교사에 대한 윤성범의 통전적인 이해를 면밀한 파악하고자 한다고 볼 때, 발제자는 그의 주된 신학적 성과인 ‘誠의 神學’을 개관시켜 주는 데 집중한 결과, 한국 종교에 대해 윤성범이 지닌 근본적인 인식과 태도를 설명하는 데 한계를 보여주었다. 그는 한국 종교를 서구인의 눈과 얼마나 다르게 보았다고 볼 수 있는가? 그가 서구 비교종교학자나 초기 내한 선교사들의 한국종교 이해와 얼마나 차별화되는지 그 근본적인 설명이 요구된다.
2. 윤성범은 한국의 여러 종교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유교, 그리고 그 중에서도 율곡의 ‘誠 개념’에 집중하였다. 그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서구적 알레고리 방법이 또 다시 제시된다.(칸트와 야스퍼스, 바르트와 브루너, 주자와 율곡)
여기서 윤성범은 주자의 ‘敬’이 서구의 이원론적 상황과 흡사한 합리주의로 빠졌다고 보면서, 율곡은 ‘誠’을 통해 한국적인 종교적 초극상황을 이끌어 냈다고 보았다. 하지만 임란 이후 조선 후기의 종교 상황 가운데 율곡의 ‘誠’ 개념이 사회적으로 적극 반영되었는지, 혹은 지배적 담론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는지는 재검토 해 보아야 할 과제이다. 왜냐하면 土着化라고 하는 실천적 개념의 동력은 역사적, 대사회적인 지배적 역량이 확보되지 않으면 그 단순한 비교가 한 순간에 허무해질 수도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조선 후기 혹은 말기에 이르러서는 기존의 보수적 주자학 전통이 더욱 권위주의적 상황을 초래한 것은 아닌가 싶다. 기독교 복음의 토착화의 키워드를 율곡의 ‘誠’에서 찾고자 한다면 그 개념이 얼마나 종교사적으로 생명력을 지녔으며 그 담론형성의 역동성을 지녔는지가 선행적으로 검토되고 증명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 보면 과연 윤성범의 ‘誠’을 기독교와 조화시켜 ‘신학화’ 하는 작업 또한 생명력을 담지할 수 있다고 보는가?
3. 윤성범은 한국인의 심성이라는 텃밭에 복음의 씨앗을 받아들이는 데에 ‘한국 문화 a priori’라는 솜씨가 작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윤성범에게 있어 한국 종교란, 기독교를 이해하는 ‘전이해’로서, 기독교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재래 종교가 옳든 그르든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윤성범, “재래 종교에 대한 이해와 오해” ,『기독교 사상』제9권 제4호 1965년 4월, pp.4~5.
그는 기독교가 토양의 영향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심지어는 토양의 질로 인해 씨앗이 잘 성장할 수도 혹은 성장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한다. 여기서 토양으로서의 한국 종교와 솜씨로서의 한국 문화 a priori는 기독교 진리에 어느정도의 변용을 가하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왜냐하면 그는 유교의 성의 신학을 이야기 할 때, “성의 신학은 한국인에게 기독교 진리를 올바로 이해시키기 위한 공작에 지나지 않으며, 진리에 잘 대응되는 개념이다”라고 하여, 기독교 진리를 잘 이해할 수 있는 도식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고 전제하고 있다. 윤성범, “한국적 신학-일명 성의 신학” ,『기독교 사상』제14권 제11호 1970년 11월, pp. 135-138.
한국 종교와 한국 문화가 단순히 사고의 도식적 유사함으로써 기독교 진리를 받아들이는데 일조를 하는 것인지, 진리에 변용을 가할 수 있는 것인지가 궁금하며, 이것은 처음에 한국 종교를 연구할 때에 보였던 입장, 즉 비교 종교학적 연구를 통해서 한국 재래 종교에서 기독교의 빛을 살펴보기도 하고, 다른 점을 명확히 밝히기도 하면서 기독교를 명확히 이해해 보고자 하는 입장과, 한국 유교를 통해 성의 신학을 발전시키면서 “감, 솜씨, 멋”의 3단계로서 한국 문화의 기독교 수용을 변증법적으로 해석해낸 후기 연구와의 관계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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