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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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임진왜란
1. 서론
(1) 임진왜란 발발 원인
일본 내 상황 :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였지만 불안한 통일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국 내 어수선한 상황을 해결하고 안팎의 불안요소를 해소하고자 이른바 ‘명나라로 가는 길을 빌려 달라’는 명분으로 임진왜란을 일으킨다. 일본으로서는 우선 전쟁의 승리를 통해 봉건 다이묘들에게 분배할 새 영지를 획득할 수 있었고, 전쟁을 통해 다이묘들의 군사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이러한 문제요소의 해결과 함께, 실질적으로 도요토미에게는 조총으로 무장된, 100년 전쟁을 통해 단련된 병사들이 있었기에 승리 또한 확신 할 수 있었던 전쟁이었다.
조선의 상황
1) 조선통신사 파견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면서 대마도를 복속시켰다. 대마도를 복속시키면서 대마도 주에게 조선을 복종 시킬 것을 명하였다. 하지만 조선에 경제적으로 도움을 있는 대마도는 이 계획이 무모함을 알고 조선에게 통신사를 파견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그래서 1590년 3월 황윤길을 정사로 하고 김성일을 부사로 하여 통신사를 파견하였고 이듬해 정월 일본의 답서를 가지고 귀국하였다. 답서에는 종래의 외교관례에 따르지 않는 무례한 구절과 정명가도를 뜻하는 글이 있어 침략의 의도가 분명하였으나 1591년 3월 이들 사신이 복명하는 자리에서 정사 황윤길(서인)은 왜가 반드시 침략할 것이라고 한 데 반해 부사 김성일(동인)은 왜가 침범할 동정이 없다는 상반된 보고로 당파적인 엇갈림과 함께 조정의 의견도 통일되지 못하면서 전쟁을 준비하지 못하였다.
2) 십만양병설 기각
이와 맡 물려 당시 율곡 이이가 주장했던 십만양병설이 기각되었는데 기실 이는 현실적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이론이었다. 우선, 반대파의 세력을 들 수가 있다. 반대파인 동인세력들이 10만 군사의 군량과 국가적 혼란의 이유를 들면서 반대를 하였다. 또한 조선사회의 오랜 평화 속에서 정치기강의 해이와 전세제의 문란 등으로 인심이 동요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조정에서는 각 도에 왜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성곽을 수축하고 군비를 정비하라는 명령을 내려도 몇 곳을 제외하고는 민폐를 야기 시킨다는 원성만 높았으며 이에 동조한 일부 수령들도 전비를 중지하라는 장계를 올리기도 하였다.
3) 비효율적인 군 체제
당시 조선의 방어체계는 제승방략이었다. 1510년 을묘왜변 이전의 조선군 방어체계는 진관법, 즉, 왜구가 나타나면 각 진이나 읍에서 자체방어토록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왜구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 제승방략으로 변환했다. 제승방략은 각 읍과 진에서 병력을 한곳에서 모아 중앙에서 내려온 장수가 그 병력을 지휘하는 체제이다. 하지만 제승방략은 큰 약점을 갖고 있다. 각 진과 읍에서 병력을 모을 시간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중앙에서 장수가 내려오기 전까지 적이 닥칠 경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즉 제승방략은 사태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기동성에서 떨어지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2) 임진왜란의 발발 및 전개
1592년 4월 13일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 시작 하였다. 14일과 15일 부산과 동래가 함락되면서 전쟁의 비극이 시작된다. 일본군은 부산을 함락하면서 세 갈래로 나뉘어 진격을 시작하였다.
1) 조선군 상황 : 당시 조선군은 감영, 병영, 수영으로 군사를 나누어져 있었다. 각 도마다 관리 방어하는 체계였다. 당시 부산진순절도와 동래부사순절도를 보면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다. 순절도를 보면 동래성을 둘러싼 일본군들을 볼 수가 있고, 또한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서 절을 하고 있는 동래부사의 뒤 모습과 지붕위에 올라가서 기와를 던지고 있는 아낙네들의 모습을 통해서 긴박한 상황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일본군의 깃발을 보면 가아도 라고 적혀 있는데 가아도란 우리에게 길을 빌려달라는 뜻이다. 거기에 맞서 조선군은 가도난 이라고 적힌 깃발을 들고 있는데 절대 길을 내 줄 수 없다는 뜻이다. 명을 칠 테니 길을 빌려 달라 하는 일본군의 전쟁 명분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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