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주의 와다다 이즘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6.04.16 / 2016.04.16
  • 5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8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본문내용
미래주의
미래주의의 흐름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예술운동으로 다른말로는 미래파라고도 하며 이탈리아어로는 ‘푸투리스모’이다. 이는 전통을 부정하고 기계문명이 가져온 도시의 약동감과 속도감을 새로운 미(美)로서 표현하려는 움직임이었다.
1909년 2월에 시인 F.T. 마리네티가 파리 신문 <<피가로 Le figaro>>에 <미래주의 선언- ‘기계의 위력에 의하여 출현한 새로운 세계를 환영하고, 과거에 대한 모든 집착을 거부하라’>을 발표한 것으로부터 시작된 이 운동은 힘찬 움직임을 찬미하며 기존의 경향에 대한 파괴를 바랄 만큼 전격적이고 과격한 것이었다. 이에 호응하여 U.보초니, C.카라, L.루솔로, G.발라, G세베리니 등의 미술가가 이듬해 <미래주의회화기술선언>을 발표함으로써 명확한 운동형태를 취하게 된다. 그들은 같은 시기 프랑스에서 전개되었던 입체주의와 마찬가지로 시점을 고정시키지 않고 복수(複數)의 시점에서 움직임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예컨대 “질주하고 있는 말의 다리는 4개가 아니라 20개 이다.” 등의 언급이 이러한 사상을 잘 담아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미래주의의 사상적 입장은 제 1차세계대전 전 1910년대 초기의 불안에 가득찬 이탈리아 사회정세, 즉 자유주의적인 부르주아와 새로 일어선 노동자계급의 반발, 식민지 확장정책과 국수주의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전통적 문화와 복고적인 취미에 정면으로 반대하고, 급속하게 진보해가는 기계문명을 적극적으로 예술에 끌어넣어 아주 새로운 미학을 개척하는 데에 있었다. “기관총의 탄환처럼 질주하는 자동차는 사모트라키의 니케보다도 아름답다. - 미래주의 선언” 라던 마리네티의 말처럼 여기에서는 ‘속도’가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 생각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단순히 이탈리아만의 국지적 조건 말고도 당시 전유럽을 강타하던 새로운 흐름 - 즉, 니체와 베르그송등의 생철학, 프로이트의 심리학,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 서구 전통 세계관을 뒤엎는 혁신적인 세계관의 등장을 배경으로 한다.
미래파의 화가들은 후기인상파의 점묘주의와 19세기 말 이탈리아의 분할주의에서 유래하는 빛과 형태의 해체방법을 활용하여 운동속도를 주제로 한 작품을 차례로 발표했다. 이런 이념은 필연적으로 기성 장르의 경계를 파괴하고 건축가음악가 등을 끓어넣고 시 장식미술 사진 영화 무대예술 등 모든 영역에 걸친 종합예술의 방향을 새롭게 전개시킨다. <자유시>,<색채음악>, <소음예술>, <향기(香氣)의 회화>라는 혁명적 개념이 연달아 분출하였고, 화가 루솔로는 1913년 이후 소음음악을 언급, 스스로 발명한 거대한 <소음기기>를 사용해 대중앞에 선보였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계문명을 찬미하는 성향을 지닌 미래주의의 낙관론은 1913년 마리네티가 <미래주의 정치강령>을 발표한 후로부터 파시즘과 결합한 형태가 되었다. 더구나 제1차세계대전으로 보초니와 산텔리아를 잃게되면서 운동은 서서히 감퇴하게 된다. 이후 발라 외에 1915년에 그룹에 참가한 F.데페로가 중심이 되어 이른바 ‘제 2의 미래파’가 결성되었으며, 로마와 밀라노, 토리노 등지에서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지나 이미 전위운동으로서의 통일성을 잃어 점차 쇠퇴의 길을 걷고 만다. 뒤이은 다다와 러시아의 아방가드르에 많은 영항을 미쳤던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거의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다가 최근들어 그 미술사적, 문학사적 의의의 재평가를 받으며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미래주의 대표작가 및 화가와 작품
① 마리네티 ( Filippo Tommaso Marinetti 1986-1944)
이탈리아 시인 소설가 극작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생. 이집트와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제네바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였고 밀라노에서 잡지를 만들면서 문학적 생애를 시작하였다. 1909년 2월 프랑스 파리에서 <<피가로 Le figaro>>지에 <미래주의 선언>을 발표하면서,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을 목표로 종래의 전통 일체를 물리치고 새로운 문화창조를 제창하였다. 또한 행동주의를 주장하여 문학 및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의 실천을 주창하였다. 그의 미래파 운동은 문단보다 미술계에서 큰 호응을 받는다. 소설에 <<미래파 시인 마파르카(1910)>>, 시 <<짱 툼브 툼(1914)>>, 희곡 <<발도리아왕(1905)>> 등이 있다.
② 발라 (Giacomo Balla . 1871~1958)
이탈리아 토리노 출생.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한 그는 1900년 파리로 이주해 그곳에서 인상주의와 분할주의를 접한다. 그가 초기 작품의 소재로 삼은 것은 사회주의적 인본주의의 영향을 받은 노동의 세계로 1904년 작 ‘노동자의 하루’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당시 그의 화실에는 아카데미즘 미술에 염증을 느끼던 보초니와 같은 젊은 작가들이 자주 드나들었고, 1909년에는 마리네티가 그를 미래주의 이론으로 전환시켜 빛의 분해를 그린 작품 ‘활모양의 전등’ 과 같이 현대적 주제를 취급하면서도 분할주의적 기법을 지속하여 사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1910년부터는 동작의 분석을 시작하고 1912년에는 움직임의 메카니즘을 해부했다. 또한 전속력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관찰하여 움직임을 종합적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일련의 작품을 제작한다. 이렇듯 발라의 작품은 미래주의 이론을 극단에까지 몰고 가 기하형태를 통한 추상화과정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후 그는 리듬감있는 작품을 계속 창작했고 1920년대초에는 기하추상 계열로 기운다. 1937년 이후에는 구상미술로 귀환한다. 주요작품으로는 <<계단에서 안녕(1908)>>, <<발코니를 뛰어가는 소녀(1912)>>, <<이탈리아 만세(1915)>>등이 있다.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서양미술사 1945 1949
  • 이즘, 미래주의, 초현실주의로 이어지는 한 계보와 인상주의, 입체파, 기하학적 추상의 계보를 모두 받아들이고 있다.『본래는 1919년에 O.헤르초크가 독일의 표현주의 잡지 《슈투름(폭풍)》에서 추상적인 표현주의를 구상적인 그것에 대치해서 사용한 것이다. 그 후, 미국에서 알프레드 바 2세가 웰스리대학의 강의(1929)에서 ‘칸딘스키와 독일의 추상표현주의’라고 했고, 그가 조직한 큐비즘과 추상예술전(1936)의 카탈로그에서 칸딘스키를 가리켜서

  • [표현주의] 표현주의 다리파(Die Brucke), 추상적 표현주의를 지향한 청기사파, 표현주의 미술가 루드비히 키르흐너, 표현주의 미술가 에리히 헥켈, 표현주의 작가 에곤 쉴레와 코코슈카, 표현주의 작가 칸딘스키 심층 분석
  • 이즘은 예술가가 세계에 대한 또는 자기 자신에 대한 감정적인 태도를 대단히 중요시하고 있다. 19세기 인상주의적 화풍 이후 현대미술은 마티스회화에서 나타나는 평면적인 색면의 사용과 소위 색채원근법의 배제, 그리고 현상적인 재질성 등이 강조되는 회화로 향하고 있다. 색채회화는 색채 자체의 존재가치를 인정하는 색채의 자율성을 조형적 가치로 부각시키면서 그 자체를 즐기게 하는 회화적 특성을 보여준다. 회화세계에서의 색채(色彩)의 중

  • <표현주의>Expressionism
  • 이즘은 여러 의미에서 예술의 한계를 타파하고 단순한 물체도 행동도 하나의 관념으로 일관할 때 예술작품이 된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여기에서 칸딘스키의 정신의 3각형은 역전하여 예술가는 기성의 통념을 파괴하고, 흔히 있는 물체나 우연한 행위와 구별할 수 없는 지점까지 개아(個我)를 추구하였을 때 비로소 미지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러시아․헝가리․독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고 그 후 각국

  • 마르셸 뒤상 - 작품소개
  • 미래주의를 거쳐 다다이즘에 이르기는 다양한 경계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며 아방가르드를 구현한 인물이다. 이러한 뒤샹의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예술 정신은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의 뿌리가 되었다.마르셸 뒤샹1912년 항공 공학 박람회를 관람한 뒤 뒤샹은 친구인 콘스탄틴 브랑쿠시에게 말했다. “이제 회화는 망했어, 저 프로펠러보다 멋진 걸 누가 만들어 낼 수 있겠어? 말해보게 자넨 할 수 있나?” 뒤샹이 ‘이제 회화가 망했다.’고 말한 그 자

  • [디지털시대의영상예술] 인터렉티브 아트(interactive art) 특성에 관한 연구
  • 이즘과 초현실주의에 있어서이다. M.뒤샹이 1917년에 기성품 변기를 《샘(泉)》이라는 주제를 붙여 전람회에 출품한 것과 같이 다다이즘 시대에는 기성의 일용품이나 기계부품 등이 반예술형식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초현실주의에서는 다시 자연물수학적인 모형, 미개인의 숭배물 등의 물체를 비합리적인 또는 초(超)의식적인 인식의 대응물로서 취급하였다. 또 종래의 전통적인 조각형식을 타파한 구성작품(예를 들면 움직이는 조각 모빌 등)을 오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