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 유역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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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유역의 문화재에 대하여
영산포등대
영산강을 무대로 발전한 영산포는 나주읍성권과는 전혀 다른 맛을 풍기는 도시로, 나주와 영산포는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풍기는 도시이다. 영산교 다리를 건너자마자 이름 그대로 포구로서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기는 곳이 영산포이다. 등대와 영산강변에 자리한 선창동네 모습은 일제강점기에 최고로 발달했던 포구로서의 느낌을 전해준다.
영산포구 등대는 일제강점기 영산강의 가항종점인 영산포 선창에 건립된 등대이다. 1915년 설치된 시설로 수위측정과 등대의 기능을 겸했다. 이 등대는 우리나라 내륙 하천가에 있는 유일한 것으로 1989년까지 수위관측시설로 사용되었다. 1978년 1월 영산포 물막이 공사의 시작으로 뱃길이 끊어진 영산포는 선창의 기능이 상실되면서 등대 기능도 자연 상실되었고, 1989년 대홍수 이후부터는 영산대교에서 수위를 측정하여 수위관측기능도 상실하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저녁이면 등대불을 밝혀 영산포구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고 있다.
영산포 등대 외부(좌), 내부(우)
참고문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92.
『나주의 역사와 문화알기>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천년 고도 목사골 나주 』
원정통
구로즈미 가옥
일제시대 나주의 최대 일본인 지주였던 구로즈미 이타로(黑住猪太郞)의 저택이 영산포에 남아있다. 그는 1935년경 직접 일본에서 청기와는 물론이고 모든 자재를 운송해다 이 집을 지었다고 한다. 이 저택은 지상 1층의 목조와가로 전형적인 일본식 기와집이다. 현재는 개인집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저택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문서고와 함께 수탈의 역사를 그대로 드러내 주는 대표적 상징물이다.
일제시대 나주 제일의 거부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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