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성립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6.04.16 / 2016.04.16
- 13페이지 /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1,000원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 본문내용
-
가야의 성립
1. 가야의 풍토와 지리
가야 계통 소국들이 점령하고 있던 지역이 늘 일정했던 것은 아니나, 비교적 오랫동안 근거지로 삼았던 곳은 낙동강 및 그 지류인 남강 유역 일대라 할 수 있다. 이 지역은 외부와의 교통여건으로 보아 서쪽 및 북쪽으로는 지세가 험하여 거의 막혀있는 형세이며, 동쪽으로는 산세가 있어도 드문드문 뚫려있는 형편이다. 이곳을 지리적 조건에 따라 둘로 나눌 수 있는데, 이들은 해상교통 및 농업 기반의 면에서 서로 간에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먼저, 해운입지조건의 면에서 두드러진 김해 지역이다. 『三國志 魏書 東夷傳』에 의하면 3세기 무렵에 낙랑에서 배가 출발하여 서해, 남해연안을 따라 항해하는 데 구야한국(狗耶韓國)에 들렀다 해협을 건너 왜지(倭地)로 향하였다고 한 것을 보아 김해지역의 입지적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 또한 후대의 기록이기는 하나 조선후기 『擇里志』에서 서 남해는 물결이 완만해 전라, 경상으로부터 한양, 개성, 황해, 평안까지 상가(商賈)가 이어지며 낙동강 입구에서는 강줄기를 따라 상주, 진주까지 배가 미치니, 경상도에서는 그러한 남북해륙지리(南北海陸之利)를 김해가 모두 관장한다고 말하고 있다. 李重煥, 『擇里志 卜居總論 生利』
이와 같은 조건이 고대에도 마찬가지였다면 당시에도 김해는 정치적 조건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해운의 구심점으로 기능하고 있었을 것이다. p. 310 두 번째 문단
이에 비하여 낙동강 상류지역을 비롯한 가야지역 내륙 산간지방은 해운입지조건이 불리하다고 할 수 있으나, 대신 농경의 이점을 보유하고 있었다. 고고학적으로 이 지역 농경문화 전통은 유래가 깊어 기원전 6~5세기 이래 고령 양전동, 산청 강누리, 진양 대평리 등지에서 지석묘, 무문토기 단계의 농경 주거 유적이 발견되었다.
이 지역은 기후가 온난하고 평야가 비교적 골고루 발달하였으나 곳곳에 낮은 지맥에 형성되어 광활한 평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별다른 수리기구가 없는 전근대적 농업기술 하에서는 범람이 잦은 큰 강변의 평야보다 계곡 사이의 물을 쓸 수 있는 산 밑의 좁은 들이 농업 입지조건의 측면에서 훨씬 더 안정적이고 유리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가야지역의 또 하나의 장점은 철산지가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철산과 해운의 두 가지 이점이 연결되어 당시의 경남 해안지대에서는 『三國志 魏書 韓傳 弁辰條』에 보이듯이 철정(鐵鋌) 가운데가 잘록하고 양쪽 끝에 이르면서 폭이 넓어지는 간단한 모양의 쇠판. 그 용도에 대해 철소재설, 화폐설 등이 있다. 신라·가야지역 고분에서 출토되는 다량의 철정으로 보아 철소재의 보급이 보편적인 형태로 정착된 것으로 보이며, 특히 5세기 중엽 이후가 되면 철정의 크기와 무게가 일정한 범위 내에서 규격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철정의 양적 증가와 규격화 현상은 대량생산을 전제로 했던 것 같다. 신라(경산·대구·창원 등 강동지역 포함), 가야(동래·김해·창원·고성·함안·의령), 마한(영산강유역)뿐만 아니라 왜(倭)에도 보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을 돈처럼 쓰기도 하고 韓, 濊, 倭, 二郡 대방군과 낙랑군
에 철을 수출하기도 하였다. 또한 낙동강 상류지역의 경상 내륙 산간지방에는 아직 야철지가 발굴된 바 없으나 고령, 거창, 함양, 산청, 합천, 삼가 등지의 고총(高塚)고분에서는 다량의 철제 무기와 갑주 등이 부장품으로서 출토되었다. 이는 그 지역에 존재하는 풍부한 철광(鐵鑛)자원의 존재와 연결시켜 보아야 할 듯하다.
위와 같이 정리하여 볼 때 전반적으로 가야지역은 지리 및 풍토 여건은 양호하였다고 볼 수 있었으나, 후일 역사의 전개란 지리적인 요소와 함께 다른 여러 가지 상황이 복합되어 결정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가야의 건국 설화
가야 건국 설화에는 두 종류의 것이 있는데, 고려 문종(文宗)대 후반 금관지주사(金官知州事)가 찬술한 『駕洛國記』에 김해 駕洛國 首露王 神話가 전하고, 신라 말기 최치원(崔致遠)이 찬술한 <석리공전(釋利貢傳)>에 고령 大伽倻國 伊珍阿王 神話가 전하고 있다. 같은 가야국의 시조가 이름이 다른 두 명이고, 그 신화가 두 지역에 각기 다른 내용으로 전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자료평가
-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오늘 본 자료
더보기
최근 판매 자료
- 문화와 관광이 결합된 문화관광상품을 하나 선정하여 다음의 요건으로 작성하
- 한중일 의복 비교
-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개념과 위험성 및 미세먼지 문제 해결방안 제시와 미세먼지 정책방향 제시
- [사회문화] 베트남과 한국의 예절 비교
- [인류학] 집배원노동자에 대해서
- 실습생프로파일(사회복지현장실습, 사회복지전공동기, 실습기관선택이유, 성취목표, 목표달성파악, 자신의강점과약점, 취미와특기, 바라는점)
- 동물실험 찬성,반대논쟁과 찬반토론 개요작성 및 동물실험 성공사례와 방법연구 및 동물실험에 대한 개인적 견해 및 느낀점
- [아동의 친사회적 행동] 친사회적 행동에 대한 정의(개념), 아동 친사회적 행동의 발달, 친사회적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 [아동 생활지도와 상담] 기본 생활습관 형성의 의의와 지도 원리
- 가족상담및치료_가족 분석 보고서 가계도 작성법과 가계도 면접법을 바탕으로 자신의 가족 관계를 분석하시오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