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민주화를 위한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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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80년대 언론계에는 전두환 정부의 언론통제로 인해 기사를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는 비극이 계속 이어졌다. 정부의 언론통제는 양심적인 언론인들에게 있어 견딜 수 없는 비극이었음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언론계의 가장 큰 비극은 이러한 정부의 통제보다도 그러한 정부의 정책에 순응하고, 그러한 억압이라고 할 수 있는 현실에 대해 비판의식조차 갖지 않는 언론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언론이 5공화국의 그늘에 가려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에는 민중 언론이 등장하여 사회에서 소외받던 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것이다. 그러한 수많은 민중 매체 중에서도 <말>지는 이 시기 언론 민주화를 향한 큰 걸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말>지는 1984년 12월에 발족된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협)’의 기관지로, 1985년에 창간되었다. 당시 민주화 운동 세력은 투쟁 역량을 재결집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는데, 이러한 움직임의 영향으로 1984년에는 ‘80년 해직 언론인 협의회’가 구성되었으며, 이들이 <말>지의 제작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말>지가 언론 민주화의 한 걸음을 내딛었다고 평가받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그 중 하나로는 단연 1986년 9월, 보도지침을 폭로했던 것을 꼽을 수 있겠다. 이제껏 5공화국은 보도지침이라는 것으로 모든 보도의 세부적인 사항까지 통제하였는데, 이것이 폭로됨으로써 이제껏 소문으로만 떠돌던 권력의 언론통제가 여지없이 드러난 것이다. 이렇게 <말>지는 진보언론을 표방하며 언론 민주화의 기치를 실현하려고 애썼고, 현재도 진보적 시사종합지를 표방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1897년 6월 항쟁으로 전두환 정부의 5공화국이 붕괴되고, 노태우 정부의 6공화국이 들어섰다. 이제껏 전두환 정부 하에서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억압당했던 언론들에게도 자유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1987년 6 29 선언을 통해 민주화의 분위기가 확산된 만큼 언론도 민주화를 추진할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6 29선언의 본질은 무엇보다 강권 통치로 일관해 오던 집권 세력이 자신들의 정권을 재생산하려는 의도 아래 내놓은 유화 정책이었다. 하지만 6 29선언의 본질이 그렇다고 해서, 그 선언에 6월 대항쟁을 통해 민중들이 집권 세력에게서 쟁취해 낸 성과가 담겨 있다는 사실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언론 자유’다. : 『한국 언론 바로보기 100년』
더불어 6월 항쟁 이후의 언론의 움직임에 대한 반성의 분위기는 언론 민주화를 촉진하는 요인이 되었다.
6월 항쟁 이후, 노동운동과 같은 활발한 사회움직임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7 8월의 노동자 대투쟁-이는 한국사회에서 노동 계급의 존재를 알린 역사적인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러한 노동자 대투쟁을 악의적으로 보도하였다. 이것은 언론이 단지 정치권력의 탄압에 휘둘려서 왜곡보도나 편파보도를 해온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1987년 12월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언론은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러한 언론계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새로운 신문이 필요함을 느꼈고, 제도 언론 속의 언론인들도 언론 개혁이 필요함을 인식하면서 언론 노동자로서의 자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은 언론 민주화의 가장 큰 흐름 2가지로 바로 이어졌는데, 그것이 한겨레신문의 창간과 언론 노동조합의 출현인 것이다.
한겨레신문은 1988년 5월 15일 민족 민주 민중언론이 될 것을 선언하며 첫 선을 보였다. 한겨레신문은 세계 언론사에 유례가 없는 ‘국민주 신문’이 창간되었다는 면에 있어서 주목받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언론의 개혁, 새로운 언론의 모습을 기대했는지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그러한 사람들의 열망이 한겨레신문의 창간이라는 형태로 현실화 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언론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새신문의 꿈은 동아투위 조선투위에서부터 꾸준히 있어왔고, 드디어 1987년 해직 언론인들은 각각 발의 기금 50만원씩을 모아 창간 발의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신문 창간을 준비해왔다. 이듬해 2월에는 2만 7천 233명의 참여로 창간 기금 50억원을 마련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겨레신문이 창간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해외 언론들은 이를 ‘한국 최초의 독립적인 신문’이라고 보도했다. 2만 명이라는 이 수치는 비록 전국인구의 0.1%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약한 수치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1985년 당시 인구는 40,448,486명이었다. : 통계청
언론에 대한 통제와 억압이 있던 시대를 살아온 2만 명이 넘는 사람이 언론의 문제점을 절실히 느끼며 그것을 새 신문의 창간으로 극복하려고 하며 그것을 결국 이뤄내었다는 것은 우리나라 언론에 있어서 매우 귀중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한겨레신문의 창간 선언 한겨레신문은 1987년 9월 1일 창간을 공식선언하였다.
참고문헌
※ 참고문헌
<한국 언론사>, 김민환, 나남 출판
<한국 언론 바로보기>, 송건호 외 5명, 다섯 수레 출판
<권력변환>, 강준만, 인물과 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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