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별복지 진짜 포퓰러리즘의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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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가 포퓰리즘인가?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전개된 지리한 무지의 논쟁에서 보자면 그렇다. 우리는 민중주의라는 의미의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말을 인기영합주의라는 포퓰러리즘(popularism)의 의미로 잘못 사용해왔다(사실 이 문제는 이미 이성형 교수와 홍윤기 교수가 제기했었지만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 포퓰리즘은 억압된 민중들이 견디다 못해 생활권 요구를 직접 정치적 저항으로 표출한 방식이다. 다시 말해 ‘대중의 문제에 대한 대중 자신의 직접 해결’ 또는 ‘즉각적 대중 이니셔티브에 대한 호소’다. 이 요구들이 때로는 독재적이거나 선동적인 지도자와 결합해 선동적 정치 형태를 띰으로써 부정적 인식을 초래했다. 그러나 부유층과 특권층의 소유를 억제해 억압된 민중이나 곤궁한 서민들의 생활권 요구를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와 같이 민중들의 생활권 요구를 중심으로 나타난 대중 자신들의 문제 해결 방식이라는 점에서 포퓰리즘은 대중인기영합적인 포퓰러리즘과는 엄연히 다르다. 최근 복지 논쟁에서 한나라당과 오세훈 서울 시장 지지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한 포퓰리즘은 보편적 복지 담론에 거부감을 느낀 나머지 포퓰러리즘적 의미로 오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포퓰러리즘은 어느 쪽에 적용되는가? 잘못된 용어 사용에서 잘못된 규정이 초래되었다.
복지를 모든 국민들에게 일반적으로 적용한다는 보편적 복지는 특정 계층이나 집단의 인기에 영합하는 주장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특정 계층, 즉 서민들이나 하위 50%에게만 무상급식을 실시함으로써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해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 한 선별적 무상급식 주장이 온전히 포퓰러리즘이다. 포퓰러리즘이 아닌 포퓰리즘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선별적 무상급식 주장은 부유층의 소유를 억제해 서민들에게 나누어주자는 주장도 아니다. 이들의 주장은 부유층에게는 오직 무상급식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일 뿐 오히려 감세를 통해 이들의 이익을 보전하려 한다. 보편적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명분은 오로지 재정 부족뿐이다. 증세를 통해 재정을 늘린다는 사고는 불가촉이다. 하위 50%에게만 무상급식을 제공하려 한다는 점에서 선별적 무상급식 주장은 부분적이나마 포퓰리즘의 한 양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선별적 무상급식의 서민 포퓰러리즘인 동시에 감세 정책의 부유층 포퓰러리즘이다.
왜 지금 복지 담론인가?
최근 복지 논쟁에서 정확한 의미의 포퓰리즘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 왜곡된 형태인 포퓰러리즘만 난무했다. 그리고 서울시 무상급식 투표를 통해 복지 포퓰러리즘은 패배했다. 그러나 이제 복지는 대세가 되었다. 포퓰러리즘이 아닌 보편적 복지가 대세가 된 것이다. 그것이 서울 시민들의 의사였고 장차 전 국민의 일반의사로 발전될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언술적으로나마 포퓰러리즘을 싫어했던 한나라당과 오세훈 시장도 반길 일이다. 실제로 한나라당의 내분조차 박근혜 전 대표의 행보로 인해 보편적 복지 경향이 힘을 얻어가는 방향으로 정리되는 듯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왜 지금에 와서 복지 담론인가? 미국 및 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와 국제적 금융위기가 터져 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말이다.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나 서민들의 생활권 요구가 강력하게 제기될 때 자본과 정부의 논리는 언제나 경제위기를 앞세웠던 과거와 사뭇 다른 양상이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 재정 상태는 앞서 언급한 유럽 국가들이나 미국처럼 어렵지 않다는 말이다. 어쭙잖게 수치를 왜곡해 위기로 침소봉대한다고 해도 국민들이 속아 넘어갈 상황조차 되지 않는다. 결국 누구나 복지가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국제 경제 위기도 1970년대 후반 이후 복기국가 위기 때와는 사뭇 다르다. 과도한 복지로 인해 재정이 파탄 나고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을 통해 긴축정책과 신자유주의적 탈규제를 정당화했던 시절이 이때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의 위기는 과도한 복지 때문이 아니라 무엇보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과 세계화로 인해 양극화가 심화되고 그에 따라 빈곤이 더 확대된 데 따른 것이다. 이러한 양극화와 빈곤 확대 및 조세 수입의 감소는 축소 일로를 노정해온 복지임에도 그 절대적 비용을 더욱 증가시켰다. 대처 수상 이후 복지감축의 선두를 달려온 영국의 복지지출이 절대수치상으로는 갈수록 증가해왔다는 연구 결과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에 더해 탈규제를 통한 기업 감세와 부유층 감세가 국가의 재정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미국이 일으킨 수차례의 전쟁에 유럽 국가들도 때로는 자발적으로 때로는 억지춘향이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또 다른 재정 악화 요인이 되었다.
사실상 1970년대 경제 위기의 원인이 과도한 복지였다는 진단도 일부 신자유주의 진영의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 실제 원인을 파악할 필요도 없이 이제 복지원인론을 제기했던 신자유주의 진영조차 이제는 1990년대 후반 이후 경제위기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과도한 군사비 지출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상황이다. 워런 버핏의 증세 주장도 이러한 어쩔 수 없는 관찰의 결과다. 우리나라가 이제 와서 복지를 주장하는 국제경제적인 맥락도 이러한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복지랄 것도 없이 그 수준이 대단히 낮아 지금이라도 선진 복지국가들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비록 감축되기는 했어도 여전히 높은 수준의 복지를 구가하는 선진 복지국가들조차 신자유주의적 실패를 인정하고 과거 복지국가적 국가개입 정책을 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물며 복지가 실현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적 한파에 내몰린 우리나라 상황에서 문제 해결의 처방은 더더욱 복지 확대일 수밖에 없다.
복지는 대세, 복지권은 기본권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보편적 복지는 거스를 수 없는 큰 흐름이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라고 해도 현재 그 담론은 수혜 대상에 한정될 뿐 체계의 구조성이나 영역의 포괄성으로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등록금 문제다. 교육권은 그 자체로 기본권에 속하지만 복지의 대표적 영역 중의 하나기도 하다. 반값 등록금은 한나라당에서 먼저 이야기를 띄웠다. 그러나 막상 실행 국면에 와서는 공약이 아니었다고 발뺌을 하는가 하면 현실적 어려움을 실행 불가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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