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카이퍼(1837-1920)의 신학적 사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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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아브라함 카이퍼(1837-1920)의 신학적 사상 고찰
1. 서론
아브라함 카이퍼(1837-1920)는 미국의 워필드, 화란의 헤르만 바빙크와 함께 세계 3대 칼빈주의 신학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로서 신학뿐만 아니라 정치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크게 공언한 바 있다. 그는 신칼빈주의 의 주창자로 알려져 있으며 칼빈주의의 체계와 그 가르침을 보편화하여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 세계관을 소개하고 전파하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러한 그의 업적에 대한 폭넓은 연구는 잘 이루어 지지 않은 것 같다. 전반적인 그의 신학적인 사상은 어떠한지, 그리고 무엇에 기초를 두고 있는지를 고찰한 후에 마지막으로 프린스톤에서 강연한 바 있는『칼빈주의 강연』에서 첫 강연을 요약 발췌함으로서 아브라함 카이퍼에 대해 나름대로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2. 본론
2.1 카이퍼의 사상
카이퍼는 당대의 신학적 유행을 따라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말하는 예정론을 개혁신학의 특징이라고 믿었다. 그의 반대파들이 그가 모든 문제들을 작정과 예정의 관점에서 본다고 불평할 정도로 그의 신학의 출발점은 예정론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그에 의하면 설교는 본질상 중생자 또는 택자만을 대상으로 삼는다. 중생은 말씀 없이 성령이 직접 행하는 일로서, 택자들에게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는 은혜언약은 오직 택자들과 체결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말씀(설교)은 이미 성령으로 일어난 중생을 택자들에게 의식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예정론의 관점에서 전택설, 영원 칭의, 즉각적 중생, 세례의 근거로서의 중생 전제설 중생전제설, 영원칭의론은 A. Kuyper가 부르심과 관계없이 성령께서 개인 마음을 직접 역사해서 개인을 중생케 한다는 이론으로서 중생이 부르심에 선행하는 이론이다. 그는 신자들의 영아 세례의 근거로서 그들의 언약관계와 약속 관계에 있다고 믿는 전통적인 개혁파 입장과 달리 추정적 중생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개혁파적인 전거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쉽게 표현하면, 신자의 자녀는 태어나면서부터 “중생”이 되어서 태어난다는 것이다(이는 WM.10.3.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 듯싶다. "영아기에 죽은 택함을 받은 영아들은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생하고 구원 받는다. ... 또한 말씀의 전도에 의하여 외적으로 부르심을 받을 능력이 없는 다른 모든 택함 받은 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고백의 내용에서 "택함을 받은 영아들"을 "전 신자의 자녀로" 해석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카이퍼의 견해를 유추하면 사울이 다메섹도상에서 회심하게 되기 전에도 중생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회심 이전의 사울을 “중생한 신성모독자”(a regenerated blasphemer)라고 불렀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그의 견해는 H. Bavinck를 비롯한 개혁 신학자들의 강한 비판을 받았으며, 박형룡박사도 벌코프를 근거로 해서 카이퍼의 중생 전제설을 비평하고 있다.
박형룡, 「교의신학-교회론」,p.307-8
등을 주장하였고, 이 때문에 화란교회 안에서는 오랜 세월동안 이런 주제들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었다. 유해무, "신칼빈주의 운동", 「신학지평」(서울: 신학지평사, 1998년 여름가을호), p.233.
그가 예정론을 말할 때는 항상 개혁파를 로마교나 루터파와 비교하는 문맥에서 취급된다. 그에 의하면 개혁자들은 성경관에서 중세신학 특히 토마스와 구별된다고 본다. 카이퍼는 당대의 신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언급하면서 개혁파의 탁월성에 대한 자신의 확신을 피력한다. “루터파신학은 보다 인간론적-구원론적 성격을 지니는 반면에, 개혁파고백은 엄격한 의미에서 신학적이다. 이 차이를 슈바이쩌처럼 교의학적으로 보든, 슈네켄부그너 처럼 윤리적으로 보든 간에 주안점은 같다. 루터파신학자는 죄인의 구원에 주력한다면, 개혁파는 하나님의 영광을 주목한다. 바로 이 때문에 루터파 신학보다는 개혁파신학을 여러면에서 선호하게 된다.” Ibid., p.233.
개혁파는 하나님을 출발점과 목표로 삼으면서 신학적 작업을 하니까, 보다 고양된 입장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카이퍼는 이런 입장에서 개혁파의 독특성을 파악했으며, 이 독특성을 시위하는데 그의 일생은 헌신했다고 하여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카이퍼는 구원론적이고 인간론적이기에 기독론적인 차원에 머무는 신학을 비판하면서, 신학은 신학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대로 계시를 주신다. 물론 특별계시가 구원론적 성격을 지니지만, 영혼의 구원을 계시의 규칙으로 부과하는 것은 계시의 잣대가 신학적임을 망각한 처사이다. 인간을 중심으로 삼는 계시 이해는 계시를 훼손하며, 계시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목적을 달성한다.
창조도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지시하고, 이차적으로 비로소 만물의 근원에 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창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한다. 그러므로 섭리도 구원론적으로 접근하여서 죄에 대한 대책이요 은혜를 비상대책으로 보는 것은 위험하다. 섭리는 하나님의 작정의 집행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출발점이요 중간이요 목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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