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 - 유격대 국가에서 정규군 국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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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북조선
-유격대 국가에서 정규군 국가로-
1. 내용 요약
와다 하루키는 본 저서에서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에 걸쳐 성립한 유격대국가가 어떠한 것인지 살펴보고 김일성 사후 김정일에 의해 ‘정규군국가’로의 이행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북조선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저자는 역사적인 접근 방법을 취하였으며 그 시작은 만주항일전쟁이다. 저자는 김일성의 만주항일전쟁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사상과 이데올로기의 알파이며 오메가라고 설명하였다. 역사가 순화, 미화되어 신화가 되었고 이는 북조선 사람들의 삶에 일종의 나침반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1931년 9월 일본의 만주 침략이 시작되었고 김일성은 1932년 봄 안투에서 조선인 무장대를 조직하였으며 이는 최초의 김일성부대였다. 이 시기 김일성은 개성을 가진 역량 있는 간부로서 주목받고 있었다. 1937년 6월 4일에는 보천보 공격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김일성은 전국에 알려져 조선인의 반일 의기를 높였다. 그러나 1938년부터 유격대에 대한 진압 작전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김일성은 1938년 11월부터 1939년 3월까지 일본군의 추적을 따돌리며 소위 ‘고난의 행군’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김일성 부대는 1930년 3월 25일 일본 토벌 붇인 마에다 중대를 전멸시키는 전과를 거두었다. 고난의 행군은 소련이라는 안전지대로 들어가는 것으로 귀착되었고 1941년 4월 일소 중립조약이 맺어지면서 만주의 유격대 활동도 중지되었다. 그러나 1942년 8월 소련 측이 저우빠오중에게 제안하여 동북항일연군 부대가 88특별저격여단에 편성되었고 여기서 김일성은 부서기로 선출되었다. 최용건, 김책, 김일성이 88특별여단의 대표적인 조선인 지도자였는데 김일성은 인지도가 높았을 뿐 아니라 유능하였다. 일본이 항복한 후 김일성은 조선에서 공작이 예정되어 있던 제2극동방면군 88특별여단 제1대대원으로서 훗날 만주파의 중핵을 이루게 될 사람들과 함께 북한으로 돌아왔다. 일본의 가혹한 토벌작전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조국으로 돌아온 것은 김일성의 비범함을 보여준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한 결과 조선은 일제의 통치로부터 해방되었는데 소련은 조선 점령에 대한 준비를 거의 하지 않았다. 북조선 점령 방침에 관한 스탈린의 지령을 보면 북조선에서 소비에트 권력기관을 만들지 말고 소비에트적 질서를 도입하지 말 것을 지시하고 있다. 또한 소련이 점령한 북조선에 정권을 세우되 공산당이 참가하는 정부여야 한다고 지시하고 있다. 북조선만의 정권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민위원회적인 조직을 인정하고 연합체제를 만드는 것이 필요했고 그 결과 5도 행정국이 만들어졌다. 해방 후 공산주의자들은 정치 무대의 전면에 등장하였으며 국내계를 주력으로 하고 소련군과 함께 온 소련계 사람들과 만주파 간부 등이 모여 북조선 공산당조직 중앙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1945년 12월 17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가 열려 김일성이 책임비서로 취임하면서 소련계와 연안계가 김일성을 정상으로 밀어올린 당의 모습이 드러났다.
1946년부터 김일성은 자신의 이름하에 개혁을 시행해나가는데 1946년 2월 8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최초로 실시한 것이 토지개혁이었다. 김일성 주도 하에 강하게 이루어진 토지개혁으로 농민은 토지를 얻고 지주소작 관계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대신 농업현물세를 납부하였다. 토지개혁 후 김일성과 공산당의 권위는 현저하게 높아졌으며 김일성 개인숭배는 더욱 고취되어갔다. 1946년 8월 북조선로동당이 생겼으며 당과는 따로 군이 창설되었다. 그리고 김일성을 정점으로 하여 당무와 정무는 소련계, 연안계, 국내계 사람들이 담당하고 군무는 만주파를 중심으로 연안계가 가담하며 맡게 되었다. 한편 북조선은 당과 정부 지도로 경제 건설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 시기 미소공동위원회가 교착되면서 북조선은 1948년 2월 조선인민군 설치를 발표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안을 발표하였다. 1948년 9월 9일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성립되어 수상에는 김일성이 취임하였고 부수상 겸 외상에는 박헌영이 선출되어 김일성과 박헌영의 결속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중핵에 놓이게 되었다.
1948년 두 개의 조선이 태어나면서 ‘국토 완정’의 실현을 지향한 북조선의 지도자는 중국 혁명과 국공내전에서 자극을 받았다. 스탈린은 애치슨 선언 이후 1950년 1월 슈티코프에 전보를 보내 전쟁을 원조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으며 마오쩌둥도 김일성과 박헌영의 무력통일 방침을 지지하였다. 결국 1950년 6월 25일 조선전쟁이 개전되었는데 미국과 중국이 개입하면서 미중전쟁의 양상을 띠었다. 소련은 미국이 전쟁을 확대하여 소련을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전회담 개시를 추진하였다. 북조선은 정전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분위기였지만 김일성은 제반 정세를 생각하여 정전회담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1952년 7월 김일성은 마오쩌둥에게 미국 안을 받아들여 정전 교섭을 타결할 것을 제안하였다. 결국 조선전쟁은 통일을 가져오지 못하고 실패하였고 전쟁 결과 남북의 철저한 이질화가 진행되었다. 전쟁은 김일성의 군사적 실패였지만 결과는 김일성의 정치적 승리였다. 전쟁 후 숙청을 통해 연안계, 소련계, 국내계 우두머리는 밀려나고 김일성의 힘은 한층 강화되었다.
북조선 체제는 역사적, 단계적으로 형성되어 왔으며, 다른 사회주의국가와 공통된 토대 위에 북조선 독자의 구조가 겹쳐 쌓였다. 우선 제1단계로 1961년까지 국가사회주의가 성립하였다. 전후 파괴로부터 신속한 부흥을 이룩하기 위해 사회주의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실현된 것이다. 한편 정치 부문에서는 당내 투쟁이 일어나 김일성의 만주파와 갑산계가 당정부를 완전히 장악하였다. 1957년부터는 인민경제발전 1차 5개년 계획이 시작되었고 농업 협동화율은 1958년 100%에 달하여 북조선의 국가 사회주의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만주파와 갑산계가 당정군을 통일적으로 운영하는 정치에서의 일원화가 완성되었다. 그런데 사회주의가 성립한 북조선에게 1960년대는 냉엄한 국제환경이 출현한 시기였다. 특히 1960년대 후반의 북조선에는 국가사회주의체제 위해 새로운 구조가 2차적으로 만들어졌다. 이를 필자는 ‘유격대국가’로 지칭하고 있다. 이 시기 북조선은 전 인민을 수령의 전사화라는 기치 하에 유일사상체계에서의 핵은 유일혁명 전통이며 혁명전통은 김일성 전통뿐이라는 사고방식을 강조하였다. 이리하여 1970년 무렵에는 유격대를 모델로 하여 이것을 전 국가로 확대하며 김일성을 사령관으로 하여 전 인민이 받드는 유격대국가가 성립되었다. 이 구조는 국가사회주의체제 위에 구축된 2차적 형성물이다. 남조선혁명을 위해 군사행동도 불사한다는 자세 속에 구축된 유격대국가는 남북회담, 남북대화라는 변화된 환경 속에서 제도적으로 완성되었는데 이것이 1972년 신헌법 제정이다.
북조선의 정치문화를 살펴보면 대단히 실용주의적인 절충주의 문화다. 한일합방으로 조선이 식민지가 되면서 일본 문화의 침투가 본격화되었고 해방 이후에 북조선에는 소련 문화가 들어왔다. 한편 연안계가 들여온 중국 혁명문화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각 국 공산당에는 한 사람의 지도자가 있다는 지도자론이었다. 김정일은 영화, 연극, 무용 등 종합무대예술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영화 제작은 유격대식 전투에 비유되어 구상, 실천되었다. 최초로 이루어진 것은 유격대국가를 정식화하는 것이었는데 김정일은 1974년 정치국원에 선출되면서 곧바로 김일성주의를 제창하여 유일사상체계의 재 정식화를 제안하였다. 이는 1980년대 중반부터 주체사상으로 일원화되었다. 이 시기 가족국가론도 등장하였으며 1986년에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이 제기되었다. 그 다음으로는 전통적 국가론이 등장하였는데 이는 일심단결과 충효일심이 결합해서 생긴 유교적 국가관이다. 이렇듯 북조선은 국가 위에 걸쳐진 간판을 바꾸어갔다.
유격대국가는 1960년대 후반의 국내적국제적 조건에 대한 대응으로 형성되었다. 존립 자체가 강력한 적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대외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1955년 ‘주체’의 제기는 소련에 대해 자주성을 확립하는 동시에 중국을 겨냥한 것이기도 했다. 1960년에는 중소분쟁이 시작되었는데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비판에 대해 김일성은 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브레즈네프 정권이 들어서고 북조선이 소련과 관계를 개선하자 중국과의 관계는 냉각되었다. 무엇보다 북조선이 최대의 관심을 둔 곳은 베트남이었으며 베트남에 호응하여 남조선혁명을 추진하는 것이 유격대국가 형성의 동기였다. 1968년 1월 북조선은 유격대를 남파하지만 실패하였다. 1983년 10월 랭군 폭탄테러 사건을 계기로 3자회담 제안이 이루어졌지만 답보 상태는 계속되었다. 북조선은 이 시기 대중대소 관계 조정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개선된 대중, 대소 관계를 전제로 북조선은 한국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여 처음으로 남북 이산가족 상호방문을 실현하였다. 그러나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시작하면서 사회주의 국가들의 운명과 국제관계를 극적으로 바꾸었다. 1989년 가을 소련과 한국의 관계 확대가 급속히 진행되고 소련과 한국이 영사관계를 수립하면서 북조선은 충격을 받았다.
1990년 6월 한국과 소련이 국교를 수립하면서 북한은 소련의 핵우산 하에 있었으나 앞으로 여기서 제외된다면 미국과 한국의 핵에 대항해 자신들의 핵을 보유할 것이라고 암시적으로 위협하였다. 1991년 신년사에서 김일성은 아시아의 단결을 호소했다. 일본과의 화해 추진은 미국에 대한 대항의 의미였다. 이후 8차례의 조일 교섭에도 불구하고 북조선은 일본이 핵 문제를 제기하자 북조선은 회담 결렬을 선언했다. 북조선은 핵카드를 사용해 조미 대화를 하고자 하였고 1차 고위급 회담에서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2차 고위급 회담에서는 북조선이 핵개발을 중지하는 대신 원자력 발전장치를 제공받는 거래를 성사시켰다. 그러나 이후 북조선은 IAEA 사찰 전에 핵 연료봉을 교체하였고 결국 IAEA 탈퇴를 선언하면서 결정적 위기에 돌입하였다. 이후 카터가 방북하여 김일성과의 회담에서 북조선의 핵 개발 동결이 확인된다면 조미간의 3차 회담 개최가 가능하다고 밝혔고 김일성은 남북 정상회담 개최 의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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