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국가] 제국주의 선교와 아프리카의 독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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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제국주의 선교와 아프리카의 독립교회
1. 들어가며
사하라 사막은 아프리카를 남북으로 갈라놓는다. 그리스도교 전통을 논할 때도 사하라 사막 이북의 고대 아프리카 문화권 속에서 발전한 그리스도교 전통과 사하라 사막 이남의 식민지 이후시대의 그리스도교 전통을 구분한다. 일반적으로 아프리카의 신학이라고 하면 1950년대 이후, 사하라 이남에서 발전한 신학을 의미한다. 현대 아프리카의 기독교는 서구의 식민지 확장 세력과 결탁되면서 확대 발전하여 갔다. 그 후 아프리카에서 기독교는 중요한 종교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본 발제에서는 19세기 식민지 확장과 더불어 아프리카에 유입된 기독교가 아프리카 민족 안에서 어떤 갈등을 겪은 후, 아프리카 독립교회가 생성했는지를 일고찰 해 보고자 한다.
2. 제국주의 선교와 기독교의 아프리카 전래
15세기부터 시작된 유럽의 아프리카에 대한 노예무역은 1772년 영국의 노예폐지법을 시작으로 하여 약 백 여 년이 지나 종지부를 찍었고, 필리스 마틴, 패트릭 오메아라 편저; 김윤진, 김광수 공역, 『아프리카』 (서울: 다해, 2002), 166; 서구 열강이 도덕적 차원에서 노예제를 폐지한 소수의 의견이 있었으나 중요한 이유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아프리카에 새로운 경제적 임무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후 아프리카 대륙에 향한 본격적인 식민시대가 시작되었다. 1854년에서 1885년 사이에 열린 베를린 회의(Berlin Conference)에서는 아프리카 쟁탈을 합법화했고 유럽의 열강들이 아프리카 대륙 분할을 공식적으로 비준했다. 필리스 마틴, 『아프리카』, 181.
아프리카의 분할은 유럽 외교관들이 연필과 자로 지도상 대부분 흑인거주 내륙지역에 직선 국경을 그어버린 식민 열강세력의 정치 놀음이었다. 롤랜드 올리버 지음; 배기동, 유종현 옮김, 『아프리카: 500만 년의 역사와 문화』 (서울: 여강출판사, 2001), 275.
원주민의 지리적 환경이나 인종과 문화를 무시하고 나눈 분계선은 70년 이상 유지되었고, 아프리카 독립 후에도 대륙내의 전쟁의 불씨였다.
식민지 시대 아프리카의 모든 자원(금, 은, 동, 코발트, 철, 석탄 등)은 유럽의 부를 위하여 존재하였다. 백인들은 아프리카의 귀중한 자원과 흑인 노동력을 이용했고 이 지역을 시장화하여 이윤을 독점하였다. 19세기 중엽까지 유럽의 열강들은 자국에 유리한 대로 아프리카를 점령했는데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독일, 벨기에 등이 여기에 참여했다. 1957년 가나의 독립을 선두로 하여 1990년 3월 21일 나미비아의 독립으로 지금까지 53개국에 달하는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이 독립했다. 서창원, “아프리카신학의 동향(Ⅰ),” 「기독교사상」, 390(1991. 6), 169.
19세기 아프리카와 유럽의 보다 깊은 관계로의 변화는 근대의 선교 운동을 들 수 있다. 18세기와 19세기 초의 폭발적인 종교부흥운동, 식민지시대의 개막에 따른 대대적인 개신교 선교운동은 현대 아프리카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던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가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 항구적으로 이식된 것은 바로 이 시기였으며, 19세기 중반 이후 아프리카 신학이 형성된 곳도 이 지역이었다. 그리스도교적 열성과 상업의 결합은 식민지시대 선교의 전체적 특징을 이루고 있다. 이 시기 대부분의 선교 사업은 유럽인과 미국인에 의해 수행되었다. G. H. 무조레와; 조동호 옮김. 『아프리카 신학』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7), 44~45; 무조레와는 이러한 사실들이 기독교가 식민지 이주자들과 상인들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아프리카에 전래했음을 인식하도록 해주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선교사의 선교의도와 식민주의자의 의도 사이에 혼란이 발생하는 근거가 되었다고 한다( 무조레와, 『아프리카 신학』, 47).
선교사들은 유럽의 영향력을 확산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들은 새로운 식민지의 국경 안에 사는 아프리카 인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행정구역을 넘어서서 개척적인 성격의 접촉을 하기도 하였고, 서구의 교육을 소개하고 유럽인들의 가치를 가르쳤다. 필리스 마틴, 『아프리카』, 168.
선교단체들은 이교도의 복음화라는 공통된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토착민들을 영적으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였다. 무조레와; 조동호 옮김. 『아프리카 신학』,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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