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담백한 그러나 싱겁지 않은 남정일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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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소박한, 담백한, 그러나 싱겁지 않은 - 남정일헌(南貞一軒)
Ⅰ. 서론
1. 남정일헌의 생애에 관한 짧은 이야기
남정일헌(南貞一軒)은 조선조 헌종 6년인 1840년에 태어나서 일제 강점기인 1922년 세상을 떠났다. 본관이 의령으로 숙종 때의 학자이며 정치가였던 약천(藥泉)의 남구만(南九萬)의 7대손 남세원(南世原)의 딸이다. 정일헌은 세 살 때 한들을 깨우치고 할아버지에게서 매일 한자를 배웠는데 한 번 배우면 곧 암송했고 경사(經史)도 꿰뚫어 알았다고 한다.
나이 겨우 세살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을 깨우치니, 왕고(王考 : 조부를 가리킴)린 군수공(郡守公)이 그 재주를 사랑하여 날마다 한자(漢字)수십 자를 써서 벽에 걸고 일과(日菓)를 삼게 하였는데, 한 번 보면 곧 외웠다. 경서(經書)와 사서(史書)에 이르러도 꿰뚫지 못한 것이 없었으며 바느질하고 음식을 만드는 것을 손에 따라 익혔다. 貞一軒 , 『貞一軒詩集』, 牛溪文化財團 (서울,1997) : 성태영,「선고비 합장 묘지」80쪽
정일헌은 나이 16세에 그보다 한살 많은 성대호(成大鎬)의 부인이 되었다. 그러던 중 정일헌이 20살이 되던 해에 남편을 여의고 그 후 족형인 진호(縉鎬)의 아들 태영(台永)을 데려다가 뒤를 잇게 하였다. 정일헌은 양자를 키움에 있어서 그 정성이 친어머니 못지 않았으니 그리하여 모자가 사랑과 효도로 서로를 대했다.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은 정일헌은 순절하려고 했으나 시부모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평생 부덕을 지키며 살았다.
나이 스물에 우리 부군의 상을 만나 지하(地下)로 따르려는 뜻을 두었으나 집안 식구들이 그 뜻을 알고는 항상 철저히 살폈다. 하루는 마침 사람이 없고 밤이 깊자, 집 뒤의 나무섶을 쌓아놓은 가운데 투신하고 불을 붙여 태웠다. 이 때 우리 조비(祖)께서 발견하시고는 불길을 무릅쓰고 끌어내어 서로 안고 울며 말씀하기를, “네가 죽으면 내가 어떻게 살겠는가? 시어미와 며느리가 서로 의지하여 여년(餘年)을 마치는 것이 바로 너의 효도이다(중략) 이에 마침내 그 가르침에 감동되어 억지로 힘써 몸을 보전하였다. 이후로는 집안을 다스리는 여가에 서책을 보아 스스로 즐기고 거처하는 집에 편액(扁額)을 써 붙이기를 정일헌(貞一軒 )이라 하였다. 앞의 책, 81쪽
가사를 돌보는 사이에 시를 썼으나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했으며 갑오년에 난이 일어났을 때 모두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풍담(風痰) 풍담(風痰) : ■한의학■ 풍증을 일으키는 담병. 또는 풍으로 생기는 담병.
의 병세로 여러 달 병석에 누워 지내다가 결국 정일헌은 83세의 나이로 별세하여 부군의 묘소에 부장되었다. 현재 묘는 아산군 농은리에 있는 효정공의 부인 묘소 아래인 임좌(壬坐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2. 『貞一軒詩集』
현재 남아 있는 『정일헌시집』은 아들 성태영이 남은 작품을 모아서 편찬한 것으로 1923년에 출간 되었다. 그 후 1997년에 성백효 (成百曉)에 의해 국문 번역으로 재 창간되었다.
여가에 혹 시(詩)를 읊어 감정을 서술하였으나 깊이 숨기고 남들이 보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다가 갑오년(1894) 동학(東學)난리가 일어나자, 급히 초고(草藁)를 취하여 불태웠다. 태영이 마침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 이것을 알고는 매우 애통해 하며 옛날 초고 중에 남은 것을 거두어 ‘정일헌시집(貞一軒 詩集)’한 권을 편집하였다. 앞의 책, 이건방(李建芳), 「묘표(墓表)」 87쪽
이 시집에는 정일선이 쓴 것으로는 한시 57편, 제문 1편이 수록되어있고 그 외 정일헌에 대한 묘지(墓誌)등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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